[인터뷰] 대선후보 유시민 부인 한경혜, 제주토박이로 낳고 자라79년 예비고사 제주도 전체수석 '수재'..."역사 되돌리지 않는 민주정부 수립됐으면..."

오는 12월 '대통령 꿈'을 위한 대선 주자들의 제주행보가 잇따르고 있다. 대선 후보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자연스럽게 배우자의 모습에도 시선이 쏠리기 마련. 이를 통해 후보를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관망법이다.

특히 대통합민주신당 9룡 후보 가운데 최근 제주를 방문한 유시민 후보(49)의 부인 한경혜씨(46)는 제주출신이란 사실이 점차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었다.

지난 26일 제주를 찾아 공식 출마선언을 한 유 후보는 부인 한씨와 4.3 평화공원을 방문, 나란히 참배를 올린 내용이 인터넷에 소개되면서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 제주시 남문통에서 낳고 자란 한경혜씨는 대학시절 만났던 유시민 후보와 88년 인연을 맺었다. 이후 정치적 후견인으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 씨는 아버지 본적이 제주시 조천읍일 뿐 어릴적 부터 낳고 자란 남문로터리 제주의료원(옛 도립병원)근처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초.중.고를 다녔다.

결혼 후 경기도 일산에 둥지를 튼 그는 지금도 제주에 올 때마다 제주여중.고 동창생을 만나 '수다'를 나눌 정도로 고향 벗들과 두터운 정분을 나누고 있다.

한 씨의 일가 친인척엔 유명한 공직자들이 적지 않은 내력을 갖고 있다. 현재 조천 비석거리에  이름이 올려진 독립유공자 한만숙옹을 비롯해 외가에는 초대 제주지방법원장을 지낸 최원순씨가 있다. 60~70대 사람들에게 '최판사집'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초대 농업고등학교장을 지낸 최계순씨가 외할아버지며, 초대교육감이자 신성여중.고 설립자인 최정숙 교육감은 이모뻘이다.

   
 
 
79년 예비고사 당시 제주도 전체수석을 했을 정도로 '수재'였던 그다. 서울대 수학교육가를 졸업, 92년부터 2000년까지 독일 마인츠 요하네스구텐베르크 대학에서 수학사를 전공한 '수학박사'이다.

수학사는 국내 대학에는 흔치 않은 학문으로 역사와 철학, 수학의 접경에 있는 학문분야다. 현재 인하대와 순천향대에서 '대우교수' 직함을 갖고 강의를 나가고 있다.

그의 중.고등학교의 한 친구는 "중학교때까지 활발했었는데 이후 말수는 줄었던 것 같다"며 "공부만큼은 지독해 책 12권을 쌓아놓고 한꺼번에 읽은 적도 있다"고 기억했다.

열 한살 터울로 1남 1녀(고 1학년과  초등교 1학년)를 둔 그는 언뜻 평범해 보였지만 한 때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일했을 정도로 어두웠던 시대에 맞선 '뜨거운 젊은 여성' 중 한 명이다.

유 후보의 대선 행보로 인해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그를 만나, 자신의 이야기와 아내가 보는 대선후보 유시민에 대해 들어봤다.

유 후보와 부인 한씨는 3살차. 학번으로는 78학번과 80학번으로 입합하자 마자 광주항쟁이 터져 모든 학생들이 집회에 참석하고, '새시대가 오지 않을까하'는 강렬한 희망을 갖고 있던 학생 중 한 명 이었다고 기억한다. 여고시절에는 학도호국단 당시 단지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연대장'을 맡았던 기억도 새롭다.

▲ 지난 26일 오후 제주강연회때 유 후보와 나란히 자리를 한 한경혜씨.
-아내가 보는 남편 유시민은 어떤 사람인가?

"보기와는 다르다. 원칙적이고 딱딱하게 보이지만 (누구나 집안에선 그렇듯이)누구보다 부드럽고 가정적이다. 시간이 날때마다 설거지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침밥은 물론 아이들 돌보는 것도 몸에 배어 있다.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날도 아침에 깨끗히 설거지가 돼 있던 적도 많아 가끔 놀라기도 한다. 뭐랄까, 아마 집안 내력인 것 같다. 남편은 2남 4녀를 둔 가정에 태어나 '여성적'인 감수성이 풍부한 반면 오히려 저는 4남 2녀 중 5섯 번째로 '남성적'인 스타일이 강하다. 그래서 서로가 보완되는 측면이 많다. 특히 가정환경에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아들딸을 차별없이 똑 같이 대하는' 풍토에서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몸이 밴 것 같다."

-언제 유 후보를 만났나. 유 후보 여동생의 친구라고 하던데..

"당시 학생 유시민은 서클 친구의 오빠였다. 당시 서울대 대의원 의장으로 멀리서만 봤다. 마르지 않은 체격에 다소 건장해 보였다(실제 유 후보의 키는 174cm다. 목이 길어 TV화면에선 작아보인다고 한다). 그 무렵 유 후보는 시위하다 잡혀 보안사에 갖혔다가  군대를 갔다오기도 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창립회원으로 활동했던 그를 만나 그후 88년 11월에 결혼했다. 시대적 상황에서 볼 때 유신시대의 민주화 운동은 민주주의 의식만을 갖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만난 남편은 다소 이념적으로 경도된 이들과는 달랐다고나 할 까. 좀 더 현실적이고 균형감각이 있는 면을 갖고 있었다. 그게 다른 사람과는 다른 점으로 보였다. 그게 매력의 전부는 아니지만...(웃음)"

   
 
 
-그 때 당시의 대학생활은 어땠나, 지금 되돌아 본다면

"20대에서는 누구나 그렇듯 흔쾌한 기억들을 갖고 있지 못하다. 뭔가 주위에 죄를 짓고 있다는 기분이랄까. 그런 생각들이 지배했던 시대였던 것 같다. 그 때 강렬한 시대를 만났던, 모두가 시대에 빚을 든 느낌이었을 것이다. (밝히고 싶지 않지만) 결혼전에는 전태일기념 사업회에서 조금 일을 했다. 시대의 진 빛을 갚으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던 흔적들이다."

-언제부터 유 후보가 정치적인 길로 들어선 것인가?

"그는 성향으로만 본다면 정치적 성향은 아니다. 호불호가 강해서 정치를 제대로 해낼까라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소신이 강한데다 대중을 이해하려는 힘이 누구보다 강했다. 어쩌면 그가 걸어온 길에서 나타나듯이 시대적 여건 속에서 떠밀리는 상황이 되면서 오늘날까지 오지 않았나 한다.

(유 후보는 결혼하기 직전인 1988년 9월부터 이해찬 국회의원의 보좌관을 했다가 결혼 후 1991년 2월경에 그만뒀다. 이후 92년 함께 독일 유학을 떠났다. 각각 수학사와 경제학을 전공으로 했던 그들은 한 씨는 박사학위까지 유 후보는 석사만 마치고 2년간 한겨레신문 국제부 해외통신원(독일)을 하다가 돌아왔다. 그후 독일에서 돌아와서 일산에서 둥지를 틀었다.)

-정치인의 길로 들어선 남편에 대해 아쉬움도 있을 것 같다

"상대방(남편)도 만찬가지겠지만 서로 취향이 다르다. 보기와 다르게 축구와 낚시, 당구도 좋아한다. 전 음악을 좋아하고 공연관람을 즐기는데  서로 다르다. 그는 제주도 올 때마다 낚시를 할 정도로 '낚시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인인 만큼  같이 보내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다소 아쉬운 부분이지만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다른 후보와 달리 경조사를 돌아보는 성격은 아니다. 그래서 정치활동에 애로도 있다. 하지만 지역구가 비교적 넓지은데다 젊은 유권자 층을 비롯해 내용을 갖고 평가해주는 유권자들이 많아 두번이나 당선된 것 같다. 물론 매스컴의 주목이 많은 도움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유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과 너무 닯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제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국정운영에 직접 참가하면서 이전에 원칙만 강조했던 부분에서 현실과 어떻게 절충하고 타협하느냐의 문제가 현재 비쳐지는 변화의 모습이 된 것 같다. 노 대통령과의 문제는 조직의 수장으로서 결정을 따라줘야 한다는 입장일 것이다. (유 후보는) 실존적인 측면에서 자유주의의적인 입장이 있다. 가령 FTA, 이라크 파병문제 등 대통령의 고충을 헤아리는 과장에서 입장 변화가 생기지 않았나 한다."

-제주에는 가끔 오는 편인가, 유 후보는 제주나 경주에서 살고 싶다고 애기했는데..

"어려웠던 유학시절에도 1년에 한 두차례 제주도를 꾸준히 찾았다. 단 한번도 제주도를 잊어본적이 없다. 지금도 제주에서 부부동반으로 만나는 고교친구들이 10여명이 있다.(이날 기자와 만나는 한 씨는 고교 동창 3명과 함께 나왔다). 유 후보와 선거 관련한 동행은 처음이다. 이제 막 걸음을 떼려 하고 있다. 고향이어서 반겨주는 사람이 많아 편안한 기분으로 내려왔다."

-그래도 남편이 대선 후보다. 어떤 자세로 임했으면 하는가?

"저도 그렇듯이, 일단 수구보수적인 성향인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깊이 있었을 것이다. 역사의 반동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일상 곳곳에 남아있는 수구적이고 보수적인 모습들을 조금 변화시키고, 약간의 힘만 실어준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선거라는게 꼴지도 당선될 것 같은 환상이 있고 그게 동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동안은 역사를 뒤로 돌리지 않는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우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혈연과 동창회, 인척을 갖고 말하기 보다 공약과 정책, 비전을 갖고 말했으면 한다. 그게 들리고 통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남편과 함께 4.3평화공원을  방문했는데 첫 느낌은 어땠나

"사실 4.3평화공원은 처음 방문했다. 문득 광주를 역사적 사실로만 여긴 채 먼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4.3도 그랬다. 처음 4.3평화공원을 방문해 조형물만을 봤을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이후 위패봉안소에 마련된 빼곡히 적힌 명패를 봤더니 무언가 모를 '전율'을 느꼈다. 결코 먼 옛날의 사건이 아닌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 있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상투적이지만 다시는 이런 아픔이 되풀이 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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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제주시 삼도1동 출생
1968. 3 ~ 1974. 2 제주 남초등학교
1974. 3 ~ 1977. 2 제주여자중학교
1977. 3 ~ 1980. 2 제주여자고등학교
1980. 3 ~ 1984. 2 서울대 수학교육과 졸업
1988.11. 유시민과 결혼
1992.10 ~ 1997. 6 독일 마인츠 요하네스구텐베르크대학(석사)
1997. 7 ~ 2000. 6 독일 마인츠 요하네스구텐베르크대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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