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이중섭세미나 6일 서귀포칼호텔 "미술사에서 이중섭 위치 되찾아야"

   
 
 
화가 이중섭으로서, 한국 미술사에 있어 그의 위치는 어느 정도일까?

미술평론가 조은정씨(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그간 신화적 존재로서의 '이중섭'에 매몰되지 말고 한국의 작가 중 하나인 이중섭의 위치를 되찾아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6일 오후 4시 서귀포칼호텔에서 열린 '이중섭과 서귀포'를 주제로 한 이중섭세미나에서 그는 '이중섭 평가에 대한 연구'를 통해 '미술사에서 이중섭의 제자리 찾기'를 주장했다.

▲ 이중섭 제자리 찾기 '필요'

▲ 조은정 미술평론가
한마디로 이중섭을 한국미술사에 존재하는 작가로서 위상을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이다.

현재 이중섭에 대한 평가는 다층적이고 다면적이라는 그는 "이중섭에 대한 평가는 학술적이든 대중적이든 ‘신화’라는 개념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상태에서 작가에 접근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지난해 이중섭 원화에 대한 위작 시비를 상기시키며 "작가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작품의 진위 문제가 항상 따르는 작가가 되어버려 작품 소장에 대한 관심은 차치해서라도, 이제 작가로서 이중섭이나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는 정체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함께 "이중섭에 대한 관심은 화가의 인격과 작품을 동일시하는 동양 전통의 정서와 일치한다"며 "신화화한 이중섭에 대한 평가는 바로 ‘광인≒천재’라는 공식에서 발원한 것이기에 작가로서 작품에 대한 면밀한 분석보다 인격에 치중하여 연구되어 왔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1980년대 들어 이중섭은 인격과 그 비극성보다 작품을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이 일어났다"는 점도 주목했다.

▲ 이중섭이 살던 초가에 걸려 있다. 소설가 현길언 한양대 교수의 형인 현길호씨가 썼다.
하지만 "대규모 전시를 통해 대중은 이중섭의 신화를 확인했지만 이러한 대중적 인기는 정작 그의 작품세계가 구체적으로 분석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배경이 됐다"며 한계를 분명히 했다.

특히 "소재의 특이성과 표현 등 당대를 바탕으로 한 특징은 현재, 그리고 세계미술사 속에서 이중섭이라는 작가를 평가하기에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면으로 흐를 소지를 안게 되는 것이다"이라고 경계했다.

조 평론가는 "현재 수많은 대가의 작품들이 오가는 미술시장에서 이중섭의 작품은 거래되지 않고 있다"며 "우선 작가 사망으로 인한 작품의 수가 한정된 탓이 크겠지만 그보다는 진위문제의 공방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현재의 문제로 화살을 돌렸다.

이어 "이러한 문제 발생은 이중섭의 작품에 대한 학술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보다는 그이 천재성과 광기에 관심이 집중된 탓"이라며 "작가적 특성에 대해 연구자가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가 인지도와 인기만 급성장한 결과도 무관치 않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가장 인기있는 한국의 작가 중 하나인 이중섭의 위치를 미술사에서 되찾고 그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기 위하여 이중섭에 대한 관심은 보다 체계있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 아이들을 통해 꿈꾸었던 '지상의 유토피아' 찾기

▲ 발제하는 오광수 명예관장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전쟁으로 피폐화된 인간 마음에 평화와 영생을 희구한 자신의 독특한 주제를 구현했고 한때의 단란한 가족과 재회를 꿈꾸는 염원을 화폭에 새겨 넣었습니다"

‘이중섭 예술과 유토피아 의식’에 대해 발제한 이중섭미술관 오광수 명예관장(미술평론가)은 "해방 전의 이중섭의 작품상에 나타난 주제의식은 목가적 설정의 실낙원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구현한 것이라면, 월남 이후 그의 작품상에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주제는 가족과 아이들과 게와 물고기가 어우러진 것"이라고 작품 흐름을 설명했다.

▲ 오광수 이중섭미술관명예관장(미술평론가)

따라서 "이중섭의 유토피아 의식은 피난길을 담은 ‘길 떠나는 가족’에서 처음 구현된다”며 “그것은 피난이 아니라 낙원을 찾아가는 행복한 나들이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먼저 그는 "이중섭은 문화학원 재학 중인 1938년 자유미술가 협회에 출품함으로써 미술가로서 첫발을 내딛게 됐다"며 "이중섭의 전체적인 작품의 소재 의식은 향토적인 정서에 연계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방 전후를 통한 원산시대의 작품 역시 소와 닭과 같은 농경생활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이중섭의 작품상에서 주제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6, 25동란과 월남이란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에 말미암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오 관장은 “서귀포에 도착한 이중섭은 유토피아 의식의 현실화로서 ‘서귀포의 환상’을 낳았다”며 “화면이 하늘, 바다, 모래사장 등으로 3등분된 가운데 천진난만한 아이 8명이 등장하는 이 그림은, 꿈에 그리던 낙원에 도착한 이중섭이 감격적인 정감의 술회를 직관적으로 구현했음을 헤아릴 수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비둘기와 천도에 못지않게 지상의 낙원을 연상케 하는 것은 아이들과 게와 물고기의 어우러짐"이라는 그는 " 인간과 동물이 대등한 위상에서 어우러진다는 것은 낙원에서만 있을 수 있는 범신적인 설정으로 아이들의 세계야말로 현실적 이해가 끼어들 수 없는 낙원의 그것임이 분명하다. "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중섭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통해 자신이 꿈꾸어왔던 지상의 유토피아를 비로소 찾을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며 " 고대 중국의 진시황의 명령을 받아 불로불사약을 구하기 위해 제주 서귀포에 온 서복의 기록은 일찍이 이 곳 서귀포가 지상의 낙원이었음을 시사하는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오 관장은 "이 지상의 낙원을 훨씬 훗날 이중섭이 찾아왔다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다"며 "그는 이곳에서 전쟁으로 인해 피폐화된 인간들의 마음에 평화와 영생을 꿈꾸게 하는 자신의 독특한 주제를 구현시켰으며 한 때의 단란한 가족과의 재회를 꿈꾸는 수많은 염원을 화폭에 새겨 넣었다"고 강조했다.

▲ 2002년 이중섭 전시관으로 개관한 후 1종 박물관인 이중섭미술관으로 승격됐다.

<이중섭 李仲 燮(1916-1956) 연보>

19164월 10일 평안남도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에서 유복자로 태어남.

1931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에 입학

이 오산학교에서 미술학도와 화가로의 꿈을 다진다. 작가 생애 중 큰 비중을 차지한 황소 연작도 오산학교에서 상급반 때부터 이중섭을 사로잡은 소재였다고 한다.

1936동경으로 건너가 제국미술학교에 입학.

이듬해 제국미술학교보다 진취적이고 자유분방한 분위기인 문화학원 미술과에 다시 입학한다. 이 곳에는 유영국, 문학수, 김병기가 상급반에 있었다.

1940동경에 체류하면서 미술창작가협회(자유미술가협회의 개칭)에 참가.

이중섭은 이해에 처음으로 <소와 소녀> 등의 작품을 출품한다. 협회상 수상.

1942서울 화신백화점에서 제 2회 신미술가협회전에 출품

1943미술창작가협회전과 신미술가협회전에 참여

19516.25 동란으로 인해 제주도 서귀포에서 해초와 게를 주식으로 삼는 피난 생활이 시작된다.

1952친구들의 주선으로 종군화가가 되어 약간의 생활의 안정을 찾는다. 이 무렵 양담배갑 속의 자그마한 은종이에 철촉을 눌러 선을 긋고 암갈색 혹은 흑색의 유채를 밀어 넣어 미묘한 효과를 거두는 유명한 은지화를 착안했다. 이해 12월 부산 르네상스 다방에서 동인전을 가졌다.

1953한남동, 성림다방에서 병영 일원의 사생화풍을 주로 한 유화개인전을 가졌다.

시인 구상 등이 동경으로 보내줘 아내와 아들들을 극적으로 만났으나 1주일만에 돌아왔다.

1954진주에서 박생광의 도움으로 개인전을 가짐.

6월 경복궁 국립미술관에서 개최된 6.25 4주년 기념 대한미술전에 <닭> 2점과 <소>를 출품한다. 7월 천일백화점 개관기념 현대미술작가전에 출품

1955미도파 백화점에서 의회보사 주최, 문화예술사 후원으로 개인전을 가진다.

<길 떠나는 가족>, <소와 아동>, <흰소>, <가족과 비 둘기>, <도원>,<싸우는 소>,<닭> 등 45점 전시. 이때 은지화도 발표한다. 7월 정신착란을 일으켜 입원한다.

1956영양실조와 간장염으로 인해 9월 6일 숨을 거둔다. 무연고자로 취급되어 3일간이나 시체실에 방치되었다가 뒤늦게 친지들에 의해 화장되어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히다.

1957차근호 조각의 묘비가 세워짐.

1972서울 현대화랑에서 15주기 유작전 및 작품집이 간행

1978건국 30주년 기념훈장이 추서

1986호암갤러리에서 30주기 회고전 및 화집이 간행

1997가나아트 주최 제주신라호텔에서 이중섭 특별전 개최. 서귀포에 이중섭 거리 제정

2002서귀포시 이중섭전시관 개관

2003특별전 <이중섭과 친구(親舊)들>전 개최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