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임의 오름기행] 생태계 전시관 느지리오름

▲ 왕고들빼기꽃 느지리 오름정상에 핀 왕고들빼기가 만추를 느끼게 한다.
ⓒ 김강임

 가을 야생화 전시관

시뻘건 스코리아(화산쇄설물) 언덕에는 9월을 기다려 온 보랏빛 야생화가 가득했다. 이질풀, 층층이 꽃, 해녀 콩.

소곤대는 꽃잎 위로 가을 햇빛이 내려앉았다. 종(種)은 달라도 같은 계절에 피어나는 야생화들은 서로 친구를 만난 듯 다정해 보인다. 자연이나 인간이나 서로가 생명을 나눌 때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 야생화의 향연. 표고 225m 느지리오름은 야생화 전시관 같았다.
 

▲ 오름 중턱 느지리오름 중턱을 오르는 오르미들
ⓒ 김강임

9월 2일 오전 11시, 제주시 한경읍 저지리 닥모르 오름에서 내려온 우리 일행은 한림읍 상명리 중산간 도로 삼거리에 자동차를 세웠다. 농촌에서는 차 다니는 길까지 농부들의 터가 된다. 느지리오름 앞 차도에서는 이제 막 익은 참깨를 털고 있는 농부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그래서 일까? 제주시한림읍 상명리 삼거리를 지키고 서 있는 느지리오름 표지석 크기가 너무 커 보였다.

"10분이면 정상까지 오를 수 있겠지요?"

아침을 먹지 않았다는 오르미 한분이 배가 고픈지 발걸음을 재촉한다. 제주오름 중 10분만에 오를 수 있는 오름이 어디 있을까? 

▲ 층층이꽃 오름자락에는 가을야생화가 지천을 이룬다.
ⓒ 김강임

청미래덩쿨과 찔레나무 길을 막아

느지리오름 가는 길은 무성한 소나무 길부터 시작됐다. 상수리나무와 보리수나무가 깊 섶을 가로 막았다. 소나무 사이에는 자연스레 작은 길이 형성됐다. 여름햇빛을 받고 자란 잡초들이 마지막 짙푸른 녹음을 자랑한다.

가파른 등산로를 지나자, 길이 막혔다. 여름내 하얀 꽃 이파리로 나비와 벌을 유인했던 찔레나무와 청미래 넝쿨이 얽혀 길을 가로 막았던 것이다.

▲ 양지꽃 오름 입구까지 마중나온 노란 양지꽃이 가을을 초대했다.
ⓒ 김강임
▲ 이질꽃 보랏빛 이질꽃이 군락을 이뤘다.
ⓒ 김강임
나무뿌리와 돌 틈에 자라면서 영양분을 흡수하는 식물도 자신이 좋아하는 땅이 있나 보다.등성이에는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린 고사리 과의 양치식물들이 지천을 이뤘다. 초록으로 어우러진 양치식불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왁자지껄하게 토해내는 듯하다.
▲ 수월봉과 당오름 정상에서 서면 사방이 확트여 멀리 수월봉과 당오름이 보인다
ⓒ 김강임
▲ 산방산 하늘아래 산방산이 아스라히 떠 있다.
ⓒ 김강임

조망권으로 마음 사로잡는 정상

11시 30분, 표고가 그리 높지 않은 오름이지만 정상가는 길은 더뎠다. 느지리 오름자락에 펼쳐진 생태계의 조화에 빠지다 보니 말이다. 정상을 지키는 산불감시 초소 옆에는 하얀 깃발이 나풀거렸다.

11시 30분, 표고가 그리 높지 않은 오름이지만 정상가는 길은 더뎠다. 느지리 오름자락에 펼쳐진 생태계의 조화에 빠지다 보니 말이다. 정상을 지키는 산불감시 초소 옆에는 하얀 깃발이 나풀거렸다.

사면이 확-터진 정상에서는 산과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조망이 일품이다. 한림 앞바다와 차귀도 앞바다, 안덕면 사계리의 앞바다까지 눈을 시원스럽게 만든다. 산방산과 용머리, 송악산, 차귀도 근처의 당오름과 수월봉이 구름 속에 잠겨 있었다.  

▲ 닥모루오름(저지오름) 느지리오름 정상에서 본 닥모루오름
ⓒ 김강임

동행했던 오르미들은 모두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풍경에 빠져 넋을 잃은 듯 서 있을뿐. 정상에는 가을바람이 불었다. 이쯤해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하얗게 피어있는 왕고들빼기. 하얀 꽃잎 주위를 맴돌던 벌들도 신이 났다.

▲ 고사리과 식물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 고사리과 식물
ⓒ 김강임

척박한 땅에 둥지를 트는 생태계

이렇듯 제주오름은 생태계의 휴식처와 서식지이다. 구르는 돌 틈에는 콩짜게 난이 서식하고, 이끼 낀 곳에서는 여지없이 습지식물이 둥지를 튼다. 야생화의 달콤함을 먹고 자라는 곤충들이 있는가하면, 무성한 잡초 속은 아지트를 이룬 메뚜기와 여치도 있다.

두 개의 분화구를 가지고 있는 느지리오름은 망오름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 만조봉수를 설치, 동쪽과 서쪽으로 연결했다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상은 잡초가 너무 무성하여 깊이 78.2m의 원형분화구와 용암 유출과 쇄설물로 침식된 분화구의 모습을 식별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침을 굶었던 오르미들도 배고픔을 잊었다.

구비구비 굽은 산길과 이어지는 비탈길을 따라 하산이 시작됐다. 올라갈 때 오르막길에서 느꼈던 고달픔도 하산 길에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역정과도 같다. 그래서 제주 오름 속에 들어가 보면 아무리 평탄한 길이라도 숨고르기를 하게 된다.   느지리오름 자락에는 왕고들빼기가  가을속에 출렁대고 있었다.

조망권이 아름다운 느지리오름
 
 
▲ 느지리오름 표지석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 삼거리에 서 있는 느지리오름 표지석
ⓒ 김강임
느지리 오름은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 45번지에 있다. 오름의 유래는 왜적의 침입을 망보는 봉수대가 오름 꼭대기에 있어서 망오름이라 한다.
 표고 225m, 비고 35m로 오름 특징은 정상에 2개의 원형 분화구가 있다는 것. 남쪽은 정상봉이며 타원형 분화구가 있고, 남동쪽으로 소봉 작은 원형 분화가 가려있다. 정상봉의 분화구 둘레 800m, 깊이 73m. 작은 분화구는 300m, 깊이 40m 정도.
 분화구에는 소나무,상수리나무,보리수나무,초피나무,자귀나무,청미래덩굴,찔레덩굴 등이 분포한다. 굼부리에는 타래난초, 소나무, 고삼, 고사리 등 상록활엽수림과 초지식물이 분포한다.

☞ 찾아가는 길-제주시-평화로-한림 상명리(삼거리)-느지리오름으로 오름표지석이 있다.
    오름을 오르는 시간은 왕복 40분 정도.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김강임의 제주테마여행>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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