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영의 뉴욕통신] "모든 것을 물쓰듯하라(?)"

물, 물, 물.....
제주 성내가 온통 물에 잠겨 버린 듯 하다.
2007년 9월 16일. 태풍 '나리'는 제주섬을 강타했다. 인명 피해 13명.
1959년 9월 16일, 만 48년전 같은 날에 태풍 '사라'가 제주섬을 강타했던 날이다. 인명 피해 11명.

어떻게 이렇게도 닮았을까?
외관상으로는 닮은 듯한데, 그러나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나리'와 '사라'는 사뭇 다르다. '사라'는 '천재' (natural disaster)였다면 '나리'는 '인재'(human error)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자연'을 무시한 무작정 개발이 불러온 인간실수에 의한 재앙이 이번 ‘물사태’라고 보고 있다.

   
 
 
   
 
 
나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약 2년반 동안 중문 하원리에 소재한 탐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짬만 나면 학교 근처 계곡들을 탐색하면서 다녔다. 모든 광경들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았다.

1998년 11월로 기억한다. 라디오 방송에서 일기예보를 들으니 한라산에 300mm 폭우가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나의 가슴을 고동치게 했다.

나는 계곡을 누비면서 상상하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계곡에다 물을 가득 부으면 어떤 장관을 이룰 것인가? 바로 그 상상이 현실로 이뤄지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어서 흥분했다. 내가 우산과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계곡으로 간다니까 동료들과 학생들이 말렸다. 너무도 위험하다는 것이다.

'아니야, 나는 그 연출을 오늘 비디오에 담아야 해', 작심하고는 곧장 인근 계곡으로 달려갔다. 이미 비는 장대같이 퍼붓고 있었다. 순식간에 깊은 계곡은 물로 덮였다. 그 깊은 계곡이 가득차고 솟구치고 달음질치고 부딪치고...장관을 이뤘다. 낭떠리지에서는 폭포를 이루었다.

내가 저 물속으로 뛰어 든다면 초고속으로 금방 강정천 하구에 다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계곡의 아름다운 자태는 모두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날이 개이고 뒷날 다시 그 계곡을 찾았을 때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태연하게 계곡은 거의 비어 있었다. 말끔하게 씻기운 것 말고는 그냥 그대로였다. 이런 장관을 관광상품화하면 괜찮겠다 싶었다.

나의 할아버지(이성철)는 어릴 적 우리 형제에게 좌우명으로 늘 이런 말씀을 주었다: "모든 것을 물 쓰듯 하라."

 얼듯 듣기에는 이상한 소리로 들린다. 마치 모든 것을 물처럼 헤프게 쓰라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말처럼 어려운 것도 드물다. 자라나면서 곰곰이 새겨보고, 오늘 또 제주성내 물사태를 보면서 되새김해 보는 것은 "모든 것을 물처럼 잘 다스려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진다.

그래서, 옛날부터 '정치'(政治)한다고 했나 보다. '치(治') 자에 보면 '물'을 다스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즉, '물을 관리하는 것처럼 사람을 다스리라'는 철학이 들어 있는가 보다. 결코 '지배'하라는 것이 아니리라.

물은 너무 많아도 탈(홍수), 너무 없어도 탈(가뭄)이다.

   
 
 
   
 
 
나의 할아버지는 세수를 할 때 세수대야에 물을 하나 가득 받아서 쓰는 일이 없다. 항상 반 정도 이하다. 그 물로 세수하고 발 씻고 그리고 나서는 여름에는 호박에다 준다. 호박은 그 물을 먹고 초가지붕위로 넝쿨이 되어 올라간다. 늦가을이 되면 호박이 지붕위에서 무르익는다. 할아버지는 그 호박넝쿨이 마르기 전에 밑둥치를 잘라서 유리병에다 꽂아 놓는다. 그러면 거기에 호박수액이 고인다. 할아버지는 이 물을 마시면 겨울철에 감기에 안 걸린다면서 마셨다.  철저하게, 요샛말로 '리사이클'(recycle)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가 애지중지 키우던 말 14마리와 소 5마리는 어느 해 여름 내내 가뭄으로 인해서 먹일 물조차 구할 수가 없어서 헐값에 처분하고 말았다. 안덕면 서광리  곶자왈 속에서 방목되고 있었다. 요즘처럼 급수차가 있거나 우물물이 있던 때가 아니었다.

태풍 '나리'로 제주성내를 관통하는 하천이 모두 범람하고 도시가 폐허처럼 되고 말았다. 나는 제주에 머무는 동안 천지연 하구, 강정천 하구, 천제연 하구 등도 면밀히 관찰하여 보았다. 모두 동일 한 현상은 시멘트로 발라서 자연그대로 두지 않았다. 거의 모든 하천들이 인위적으로 가공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서 바다물과 민물을 오가면서 생식하고 성장하는 여러 종의 생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그 뿐만 아니다. 이번과 같은 물사태를 만났을 때 토사들은 바로 바다로 쏟아내고 만다.

소식에 의하면, 제주성내 주요 하천들은 모두 다 콩크리트와 철근으로 덮게를 씌워서 물사태를 악화시켰다고 한다. 소위 난개발이 불러일으킨 '인재'다. 즉, 인간의 실수에 의한 재앙이란 말이다.

늦었지만, 산지천 하구처럼 모두 열어서 원상태로 돌려놓지 않고 또 미봉책으로 얼렁뚱땅 눈 가리고 아옹하고 넘어가면 이런 재앙은 다시 발생한다.

내가 태어난 모슬포 조그만 갯벌도 동네 사람들이 썩어서 냄새난다고 매립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위에다가 아마도 건물들을 지을 것이다. 문제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해일에 견디기 어렵다. '사라' 때도 모슬포 축항 일대 저지대는 모두 해일로 덮쳐서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을 벌린 적이 있다. 축항 입구 현대여관 내 친구는 그 때 상황을 이렇게 전해 주었다: "부엌에 솥단지가 배처럼 둥둥 떠 다녔다. 우린 모두 작은 아버지네 집으로 피신했다."

노자는 "무위자연"(자연으로 돌아가라), 잔작 루소는 "신은 모든 것을 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람의 손이 모든 것을 악하게 만든다"고 경고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천재'보다는 '인재'에 의한 재앙이 더 크다고 하겠다. 인재는 바로 자연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자연을 함부로 하거나 자연을 정복하겠다는 인간의 욕심이나 욕망에서 초래되는 것이라고 보겠다. 불보다 무서운 것이 물이다. 불은 물로 끌 수가 있는데, 물은 불로 끌 수가 없구나.

사후 약방문, 아니면 소 잃고 울타리 고치는 격이 될지 모르지만,  복구계획은 단순한 복구가 아니라 개발 이전으로 완전한 복귀여야 하리라 믿는다.

수재를 당하여 참담한 가운데 있는 분들께 송구하고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태평양 건너 물 구경하고 있는 것 같아서 괴롭기 한량없습니다. /이국만리에서 이도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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