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추석과 해군기지] 선원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 변해야한다.

▲ 해경은 지난해 6월 최신예 3000톤급 경비함정인 태평양 6호를 비롯 헬기, 특공대 등을 인도양 및 말라카해협 현지에 파견했다.
내가 어렸을 때 내 이웃 대부분이 형편이 넉넉지 못했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 집은 유난히도 가난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양대학에 다니던 동네 형이 "해양대학은 수업료나 기숙사비용을 내지 않고도 학교를 다닐 수 있고, 졸업하면 취업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내 희망은 '선장'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계획대로 해양대학에 진학했고 졸업해서 상선의 항해사가 되어 세계 여러 나라를 구경할 기회를 얻었다. 서른 즈음에 만학을 꿈꾸며 대학에 다시 입학하는 바람에 선장이 되어보지는 못했지만, 난 항해사 생활이 가져다준 여러 기억들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고, 거기에서 얻은 경험들은 삶에 귀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

내가 항해사 시절의 경험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해서 그 시절에 내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상생활 속에서 날마다 위험을 대면해야 했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사는 삶이 가져오는 극심한 고립감을 극복해야 했다.

게다가 배가 한국에 입항할 때는 세관이나 보건복지부 검역관들,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입국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그때마다 사회적 약자들을 갈취하던 대한민국 공직자들의 부패한 모습을 직접 확인할 기회까지 얻었다.

▲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강정마을ⓒ장태욱
내가 항해사 시절에 경험한 여러 가지 어려움 중 가장 두려운 것은 태풍의 위협이었다. 배는 바다를 이동하는 중에 육지의 주민들보다 훨씬 자주 태풍에 노출된다. 선박이 바다에서 태풍을 만나게 되면 육지에서처럼 대피할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조난이 되어도 구조해줄 119대원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선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태풍이 자신의 항로를 비켜가길 바라는 것 밖에 없는 실정이다.

빙산도 배와 선원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되었다. 빙산이 선박에 큰 위협이 되는 이유는 그 큰 덩어리가 대부분 바다에 잠겨있어서 실체가 눈이나 레이더로 잘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낮에는 그 일부가 바다와 색깔이 다르므로 그 존재가 일부 눈으로 확인 가능하지만 밤에 빙산이 떠다니는 바다를 항해할 때는 지뢰밭을 눈감고 걸어 다니는 정도의 긴장을 동반해야 했다.

과거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해적이 선박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에 놀라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해적도 선박과 선원의 안전을 위협하는 현존하는 요인 중 중요한 한 가지다. 내 경험으로도 인도네시아 연안이나 말라카 해협을 지날 때는 선원들이 해적의 공격에 대비해서 잠을 새 가며 당직을 서야했다.

배가 군사적 공격의 목표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일은 주로 전쟁이 발생한 지역에서 상선이 전쟁 당사자국의 물자를 수출입할 때 일어난다. 과거 중동전이 한창일 때 다른 나라 선박들이 전쟁 지역을 운항하는 것을 기피하자, 우리나라 해운회사들이 전쟁터로 자사의 상선을 보내 폭격을 당한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해운회사의 입장에서는 배가 폭격을 당하지 않으면 평상시의 세배 이상의 높은 운임수익을 얻는 것이고, 폭격을 당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유혹을 한국의 기업가들이 쉽게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은 사퇴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권의 대선후보였던 유시민 의원이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제주는 대양을 향해 넓게 뻗어나갈 때 발전한 가능성이 확고해지는 섬'이며, '제주해군기지는 연안방어뿐만 아니라 대양진출을 위해, 물동량을 지켜주는 안전함을 위해서 필요하며 그 규모 또한 현재 계획한 규모보다 더 크게 할 필요가 있다'는 요지의 강의를 했다.

그의 주장대로 연안방어와 물동량을 지키는 일, 항로를 확보하는 일은 모두가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해군기지를 크게 지어야 한다는 말은 상황을 잘 몰랐기 때문이거나 국민을 속이려는 의도에서 하는 말로 들렸다.

▲ 지난해 6월 제주해경이 해적행위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함께 국제합동훈련을 벌일 말라카 해협.
작년에 말라카해협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해상에서 배와 선원들의 안전이 어떻게 확보되는 지 알려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서 소개하려 한다. 말라카 해협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과 말레이시아 서부 사이의 길이 900㎞의 좁은 바다다. 좁은 해협이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폴의 공동인접 지역이므로 국제법상 공해로 간주되어 한 나라의 배타적 통제를 받지 않는다.

이곳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 에너지 공급량의 80%가 통과하는 중요 항로이고 연간 5만 척 이상의 선박이 세계 무역량의 40%를 실어 나르는 해양 교통의 요충지다. 98년 이후 인도네시아 경제 사정이 악화한 데다 아체 반군이 활동을 강화하면서 '해적 출몰 지역'으로 악명을 얻었다. 국제법상 공해로 간주되기 때문에 한 국가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아 아프리카 동북부 소말리아 해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항로로 꼽혀왔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말라카 해협에서의 해적 행위가 크게 줄어들어 영국 보험회사 로이즈는 "말라카 해협의 치안이 상당히 개선됐다고 인정해 전쟁 위험지역 지정을 해제하게 됐다"고 밝혔다.

말라카해협에서 해적의 위협이 감소한 배경에는 지난해 3월 2일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된 '아시아 해상치안기관장회의' 시 채택된 '말라카해협 연안국과 이용국간의 상호협력'이라는 결의안이 있었다. 이 결의안에 따라 말라카해협과 인도양에서의 선박 안전을 강화하기 위하여 지난해 6월과 7월에는 '말라카 인도양 해적대응 합동훈련'이 실시 되었다. 이 훈련에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싱가폴의 코스크가드가 참가함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해경도 3000천 톤급 경비함 태평양 6호를 참가시켰다.

이 사례는 자국 배의 안전항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잘 훈련된 해경과 더불어 안전항로를 위협하는 국제사회의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려는 적극적인 외교활동이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자가 안전항로와 물동량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의 군사기지를 짓겠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나, 이런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스스로를 '개혁'이라 부르는 정치 패거리들의 내용없는 의리를 생각하면 한심한 생각만 남는다.

지난 5월 15일 소말리아에서 피랍된 원양어선 마부노호와 거기에 탑승한 한국인 선원들이 억류된 지 4개월이 넘도록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추석이 되어 가족들은 가장을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정부는 피랍선원들의 생사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렇듯 평상시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군사기지 지을 때 배의 안전항로를 들먹거리려니 미안하지도 않았을까? 선원들도 국민인지라 정부는 쓸데없는 말하지말고 지금이라도 속히 선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펼쳐야 한다.

▲ 장태욱 시민기자
문득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의 일이 기억난다. 당시 바다에서 TV시청을 할 수 없었던 우리는 올림픽 경기가 끝난 지 한 달쯤 후 회사에서 보내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황영조 선수가 달리는 장면을 보면서 대한민국을 응원하였다.

이렇듯 선원들은 많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누리는 문화적 혜택도 포기하고 살아가면서도, 늘 고국을 그리워하며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다음 정부 하에서는 선원들에 대한 국가의  배려가 좀더 섬세하고 풍부해졌으면 좋겠다.

추석이 다가온다. 먼 곳에서 고국을 그리워할 이들과 따뜻한 위로와 반가운 소식을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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