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충민의 사람사는 세상] 온가족이 같이 하면 즐겁기만 한 명절준비

"아빠! 명절 우울증이 뭐야?"

딸 지운이를 어린이집 차에 태워 보내고 다시 집에 돌아오니 원재가 저에게 묻습니다.
아침에 배달된 신문에서 그 단어를 봤답니다.

각시는 제가 지운이를 데리고 나간 사이 서둘러 출근을 하고 없었고 원재는 저와 같이 학교까지 걸어가려고 기다리고 있던 중 이었습니다.

저는 서둘러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으며 원재의 물음에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추석이지. 추석이나 설날을 명절이라고 하는 것은 알지? 그런 명절때는 제사지내려고 음식을 만들잖아. 그런데 엄마들이 그 음식을 만들고 치우려면 힘드니까 그것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대. 그래서 그걸 명절우울증이라고 하는 거야."

요즘 운동회 연습 때문에 학교에 빨리 가고 싶다고 했던 터라 식탁위에서 서두르며 얘기를 했는데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할 즈음 다시 묻습니다.

"왜 힘 드는데?"

"혼자 하니까..."

"왜 혼자 하는데?"

"다른 집에서는 엄마 혼자서 하는 데가 꽤 많나봐."

이 말을 하고 원재를 슬쩍 보니 특유의 놀란 눈을 하고 "지인짜?...." 합니다.

늘상 집에서 자기에게 밥을 챙겨주고 부엌일을 하는 아빠를 봐 와서 인지 그게 이해가 안되나 봅니다.

하긴 어린이집 다닐 때에도 원재는 주말이 끝나고 선생님이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해줬어?"라고 물었을 때도 "아빠가 해 줬는데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이제 추석 쇨 준비를 서서히 해야 합니다.

제수용 옥돔은 지난 제주시 오일장에서 미리 구입했고 돼지고기, 쇠고기는 사무실근처 소형마트내의 평소 단골인 정육점에서 구입하면 됩니다. 야채거리는 추석 전날 서귀포 신효 집으로 가면서 서귀포 오일장을 이용하면 되고... 이젠 모든 것이 머릿속과 손에 익어 그리 어렵거나 두렵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 벌초갔을때 아버지와 원재입니다. 제주도는 추석전 음력8월1일을 전후로 하여 꼭 벌초를 합니다. 이날 원재는 새벽 다섯시에 같이 일어나 벌초를 갔습니다. 눈이 부었다고 모자를 꾹 눌러쓰고 찍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 참 보기 좋습니다. ⓒ 강충민
사실 원재의 의문에서처럼 우리 집은 명절우울증이 없습니다.(적어도 제 생각엔...)

어머니 건강이 안 좋으셔서 결혼하고 바로 명절 준비를 전적으로 우리 부부가 하게 되었는데 함께 준비를 하다 보니 오히려 재미있다는 생각까지 느껴지더군요.

하나하나 같이 배워나가면서 깔깔 거리면서 웃기도 하고 애들하고도 같이 하니 오히려 즐거운 명절준비라고나 할까요.

차례를 지내는 서귀포 집에 가면 먼저 마루에 신문지를 깝니다. 그리고는 온 가족이 둘러앉습니다.

원재와 지운이도 자기에게 배당된 일을 하라고 시킵니다. 사실 명절 음식준비를 하게 되면 방해되는 애들인데 오히려 우리 집에서는 담당을 정해 하게 합니다.

원재에게는 전을 부칠 때  '깻잎에 밀가루 묻히는 사람' 혹은 '동태포에 밀가루 묻히고 계란물 입히는 사람' 등을 시키는데 올해 설음식 준비 때에는 자신의 담당이 너무 보잘 것 없다고 느꼈는지 '전 뒤집는 사람'과 바꾸자고 대학생인 자기 고모와 타협을 보더군요.

▲ 오일장에서 미리 옥돔을 샀습니다. 제주도 제삿상에는 꼭 옥돔이 올라갑니다. 저희 집 냉동실이 워낙 좁아서 회사냉장고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 강충민
네살 지운이게는 명절 음식준비가 소꿉놀이나 다름없습니다. 지운이 몫으로 밀가루나 쌀가루를 반죽하여 실컷 만지고 놀게 합니다.  전을 지질 때 지운이가 만든 웃긴 모양의 반죽을 같이 지져줘서 완성품이라고 하면 "내가 만들었어." 하며 자랑하기도 하고요.

우리 부부,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여동생 이렇게 넷이서 준비하는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넉넉잡고 서너 시간이면 거의 끝나니까요.

잡채나 나물무침은 명절 새벽에 각시와 제가 같이 일어나 재빨리 무치면 되기 때문에 씻어서 비닐팩에 잘 보관하면 되고 국거리도 미리 준비만 하고 끓이기만 하면 되니까요.

예전에는 빙떡도 집에서 손수 만들곤 했는데 떡집에서 맞추는 것으로 합의를 본 것이 시간절약의 주요 요인인 것도 같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 고기산적은 미리  제주시 저희 집에서 양념에 재어놓고 밀폐용기에 담아 갑니다. 전기프라이팬에 지지기만 하면 되지요.

미리 사 둔 동그랑땡용 갈은 고기나 동태포도 서귀포 가기 전 날 저녁 냉동실에서 냉장실로 옮겨 놓으면 요리하기 알맞게 딱 조절이 되더군요.

이렇게 명절음식 만들기를 끝내고 산적 귀퉁이들, 전 부치다 남은 것 등으로 우리 각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짬뽕찌게를 끓여 먹고는 과일 깎아 먹고 온가족이 늘어지게 낮잠을 잡니다. 당근 각시두요. 그러다보니 우리 집은 명절우울증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이들도 음식 만드는 것을 많이 좋아하고요.

음식준비를 같이 하다 보니 우리 각시도 결혼 초보다는 많이 솜씨가 늘었고 옥돔 굽기는 제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경지에 올랐습니다. (고기양념은 지금도 못하지만...)

올해에는 전을 조금 더 넉넉하게 하자고 각시하고 얘기했습니다. 집안 차례가 끝나고 처갓집 가시리에 갈 때 갖고 가자고요.

물론 처갓집은 종손집이어서 음식을 우리 집보다 훨씬 더 많이 하지만 당신 막내딸 부부가 만든 것이라면 더 각별할 테니까요.

아파트를 나와 원재와 손을 잡고 학교까지 걸어가는데 묻습니다.

"아빠 이번 추석 때 신효 가서, .... 음식 만들 때 있잖아..."

무언가 부탁이 있을 때 원재는 꼭 어미를 길게 늘어뜨립니다.

"뭔데 말해봐..."

"나 있잖아. 처음부터 전 뒤집는 사람 하면 안 돼?"

"좋아 그 대신 아빠도 원재에게 부탁이 있어. 하루에 꼭 물 다섯 컵 이상 마시기 어때?"

제 거래에 원재는 꼭 잡은 제 손을 놓고는 주먹을 꼭 쥐며 "아싸..." 합니다.

교문 안으로 들어서는 원재에게 저녁에 보자고 손을 흔들며 회사까지 걸어가는데 올해 전은 많이 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추석명절이라고 선물들이 사무실에 있습니다. 거래처에서 온 것들인데 이중에서는 저는 참기름이 탐이 납니다. ⓒ 강충민
덧붙이는 글 | 제가 사는 제주도에 수해피해가 많이 났습니다.
추석차례상도 올리지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힘겨워하시는 분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도움부탁드립니다. 특히 제주시 재래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평소에도 재래시장 꾸준히 이용하는 것이 그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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