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섬 속 상생의 길] '에누리와 덤'나누는 제주시민속오일시장

▲ 제주시민속오일장에 걸려 있는 추석빔 추석빔을 보니 추석 때마다 시어머님께서 준비하셨던 양말이 생각났다.
ⓒ 김강임

이맘때면 어머님께서는 추석빔을 준비하셨습니다. 지금에야 작은 시골마을에까지 대형마트가 들어섰지만, 예전에 유일하게 추석빔을 살 수 있는 곳은 닷새마다 한 번씩 장이 서는 오일장뿐이었습니다. 그때는 자동차도 없어 먼 길을 걸어서 다녔었지요.

 등에 구덕을 짊어지고 시장을 보러 가셨던 어머니. 그때 나는 육지에서 갓 시집온 새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도 어머님의 모습이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때 어머님께서 사 오신 추석빔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천원에 한 켤레 하는 양말이었지요. 하지만 식구들 숫자대로 양말을 준비하셨으니 양말 값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고기며 과일, 야채 등을 담은 구덕 밑에는 어머님께서 사 오신 양말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지금에야 흔하고 흔한 게 양말입니다만, 그때 어머니께서 준비하신 양말은 참으로 귀했습니다.

  "에미야, 추석빔이다"라며 추석날 아침이면 장롱 속에서 새 양말을 꺼내 주시는 어머님이 그 때는 마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같았습니다.

 풍요로움 나누는 재래시장

▲ 재해시장 풍경 재래시장은 태풍과 대형마트 출현으로 슬픔에 잠겨있다.
ⓒ 김강임

 지루했던 장마와 제주를 초토화시켰던 태풍. 지난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그리고 참담했습니다. 하지만 절기는 여지없이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제주도 하천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물벼락은 큰 슬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새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추석은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드는 우리민족의 고유 명절이지요. 이날만은 모든 사람들이 슬픔도 잠재우고 미움도 떨쳐버리고 풍요와 사랑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추석엔 나도 20여 년 전 어머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오일장에 나가보았습니다. 원스톱으로 원하는 것을 한꺼번에 다 구입할 수 있는 대형마트도 있지만 태풍으로 피해를 본 시장 사람들의 마을을 헤아려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장마와 태풍 속에 잘 익은 과일

▲ 과일 코너에서 만추 느껴 태풍과 장마에도 끄덕 없이 잘 익은 과일들.
ⓒ 김강임

 제주시에서 일주도로를 타고 10분쯤 가다 보면 우측에 전통이 숨 쉬고 있는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이 있습니다. 이곳 오일시장은 매월 2일, 7일, 12일 순으로 5일 간격으로 장이 섭니다.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은 1만 5천 평 규모에 1천여 상인들이 운집해 있는 대형 재래시장입니다. 없는 것이 없는 만물상이지요. 각종 특산물과 농수산물·한약재·가축·의류·포목·공구 등 실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품목들이 펼쳐져 있어 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추석을 앞둔 오일시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태풍 속에서도 탐스럽게 익은 과일에서 만추를 느낍니다. 유난히 비가 많았던 장마 속에서도 빨갛게 익은 사과와 복숭아, 포도를 보니 농부의 땀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사과 1개에 1500원, 배 1개에 2000원. 조금은 비싼 생각이 들지만, 농부들의 시름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재래시장에는 추억이 있다

▲ 만원에 운동화 1켤레 어릴 때는 추석빔으로 운동화를 기다렸었지요.
ⓒ 김강임

 포목점과 옷가게 앞에는 추석빔을 준비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흥정을 합니다. 에누리와 덤의 인정이 오고갑니다. 일곱 색깔 무지개로 만든 색동옷을 보니 초등학교까지 색동옷을 입고 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1만원에 한 켤레 하는 운동화 앞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예전에 우리 자랄 때는 추석빔으로 운동화 한 켤레 얻어 신으려고 얼마나 엄마 아빠를 졸랐던가요. 어쩌다 운동화  얻어 신는 추석에는 펄쩍펄쩍 운동장을 몇 바퀴 뛰어다녔던지...

▲ 싱싱한 생선들도 선보여 태풍에 조업이 힘들었을 테지만, 싱싱한 생선들이 추석을 기다린다.
ⓒ 김강임

 생선 시장에도 조기와 도미, 오징어가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조기와 도미는 살이 통통 합니다. 추석 상에 올리기엔 딱 안성맞춤입니다. 생선을 유난히 잘 드셨던 어머님 생각이 납니다. 물론 밥상에 생선이 올라오면 꼬리와 머리만 먼저 잡수셨던 어머님. 우리들의 어머니는 늘 그러하셨습니다.

 옷을 파는 가게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집안 식구들 내의를 준비하기 위해 나온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가격만 물어보며 흥정만 합니다. 경제가 어렵다보니 타산이 맞지 않나봅니다.

 '에누리와 덤' 인정 살아나는 제주시민속오일시장

▲ 흥정 하는 아주머니
ⓒ 김강임

 제일 손님이 많은 곳은 역시 과일시장과 야채시장입니다. 텃밭을 일구어 열매를 따온 아주머니들의 그을린 얼굴이 건강해 보입니다. 파, 애호박, 깻잎 등을 샀습니다. 가을비가 내리는 1만5천 평의 재래시장을 다 돌아보지 못함이 아쉽습니다. 물론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원스톱 쇼핑에 비하면 재래시장의 형편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 물씬 풍기며 에누리의 문화가 숨 쉬는 곳이 바로 재래시장이지요.

 추석빔 사러 다니다가 허기가 지면 먹거리 장터에 들려 순대며 국수, 꼬치로 허기를 때우기도 합니다. 사투리 어우러진 시골 인심에 여유를 느껴보기도 하고 태풍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훈훈하게 해주는 인정이 살아있는 곳.

  "아직 추석빔을 준비하지 않으셨나요? 지금 바로 재래시장으로 가 보세요! 당신의 마음이 풍요로워 질 것입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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