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21개월 된 딸 업고 1169m 어승생악 오른 이유는?

▲ 출발은 같은 데... 어승생악을 오르는 아내, 아들 강민, 엄마등의 딸 지민. 출발은 같다.  ⓒ 홍용석
삼다도 제주는 여자가 많은 섬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제주에서 7년째 살고 있는데, 실제로도 여자가 많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제주는 여자가 장수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제주의 할머니들은 대개 오래 사신다. 게다가 제주 시골의 할머니들은 나이가 들어도 무척 건강하시다. 노령에도 여전히 밭에 나가 일을 하신다. 심지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바다에 나가 물질(해녀의 일)을 하시는 경우도 있다. 가끔 일을 한다는 것과 장수한다는 것이 서로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제주의 여자는 생활력 강하고 억척스럽기로도 이름 나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것 같다. 제주 여자와 결혼해서 7년간 살아오면서 종종 이를 실감하고 있다.

이 번 추석 연휴 때 육지에 있는 고향엘 다녀왔다. 연휴 초반에 갔다가 추석날(25일) 제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26일)은 일가족 4명이서 한라산 기슭의 어승생악을 오르기로 했다. 어승생악을 오르자는 것은 아내의 아이디어였다. 아내가 학창시절에 몇 번 가보았는데 길이 험하지도 않고 높이도 적당하다는 것이다.

참고로 어승생악은 한라산 주변에 분포해 있는 여러 오름 중의 하나로 높이가 해발 1169m이다. 휴게소까지는 차가 들어갈 수 있고 또 오르는 길이 평탄해서 가족단위의 등산객이 많이 찾는다. 초등학교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무난하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 뒤쳐지는 엄마 지민이를 등에 업은 엄마가 자꾸만 뒤쳐진다. 말은 안해도 많이 힘든 모양이다.  ⓒ 홍용석

우리 식구는 아내와 나 그리고 일곱 살짜리 아들과 21개월 된 딸 이렇게 넷이다. 아들 강민이는 또래에 비해 어리고 좀 약하지만 어승생악 등반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딸 지민이가 문제다. 21개월 된 지민이가 산을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민이 때문에 갈 수 있겠느냐는 내 말에, 지민이는 자신이 맡겠다고 했다. 남편인 내가 다리가 불편한 관계로 아이를 자기가 맡겠다는 것이다. 적당한 지점에서 아내와 지민이가 중도 하산하겠구나 생각하고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승생악에 오르는 길은 첫 부분이 힘들다. 처음 올라가는 부분은 길이 계단식이어서 아이들이 걷기가 좀 불편하다. 그래도 일곱 살 난 아들 강민이가 걷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는 모양이다. 강민이는 벌써 저만치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생후 21개월 된 지민이는 몇 걸음 떼더니 더 이상 전진을 못하고 그 자리를 맴돌고 있다. 아내가 이리저리 애를 써 보지만 별 도움이 안 되는 모양이다. 두 모녀가 한참 애를 쓰더니 결국 아내가 지민이를 등에 업는다. 아내는 지민이를 등에 업고 산을 오를 태세다. 

▲ 직접 걸어서 정상을 밟는 지민이 어승생악 정상에 이르러는 지민이가 엄마 등에서 내려 걸어서 올라간다.  ⓒ 홍용석
 

그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안되면 말지 아이를 업고 산을 오를 생각을 하다니…' 아내가 너무 무리한다 싶어서 말렸다.

"나하고 강민이만 갔다 올 테니까 지민이 데리고 그만 내려가."

그러나 아내는 요지부동이다.

"괜찮아요. 그냥 가요."

아내는 끝까지 가겠다고 한다. 평소에도 아내가 억척스럽고 인내심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아내의 의지대로 어승생악 등반은 계속되었고 한 시간 남짓 후에 우리가족은 드디어 어승생악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야호, 다 왔다!"

아들과 내가 소리 지르며 정상등반을 기뻐하고 있는데, 조금 늦게 올라온 아내가 한 마디 했다.

"휴~, 숨이 멎는 줄 알았네."

정상에 다 와서야 아내는 힘들다는 말을 했다. 오는 도중에 쓰러지는 줄 알았단다. 참 어지간한 사람이다. 그렇게 힘들면 웬만한 사람 같으면 중간에 포기 할 텐데, 최소한 힘들다고 엄살이라도 좀 부릴 텐데, 꾹 참았다가 정상에 올라서야 비로소 힘들었다고 말하는 아내. 제주 여자 무서운 줄 오늘 또 한 번 느꼈다.

"아, 그러게 그냥 내려가라니까 뭐한다고 끝까지 올라와? 그러다가 큰 일 나려고!"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구나 싶어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가 한 마디 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아내의 대답이 걸작이다.

"정상에서 먹는 김밥이 얼마나 맛있는데요."

산 정상에서 먹는 김밥의 맛을 포기할 수 없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끝까지 완주한 아내. 그리고 아내의 괜찮다는 말에 별 일 없겠지 하고 먼저 산을 올라와 버린 나. 우리는 참 단순 용감한 엽기적인 부부다.

"강민 엄마, 우리 호모 사피엔스 맞아? 우리도 앞으로는 생각 좀 하면서 살게."  

▲ 정상을 정복한 지민이 1169m 어승생악 정상을 정복한 지민이  ⓒ 홍용석

어승생악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숨을 돌린 후 준비해 간 김밥을 먹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우리 아이들은 단순, 용감한 부모 덕택에 어승생악 정상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둘째 지민이는 엄마의 억척과 인내 덕분에 21월의 어린 나이로 어승생악 정상을 정복하는 기록도 남기게 되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아내가 다음번에는 오름이 아니라 직접 한라산 등반을 해 보자고 한다. 나는 반사적으로 좋다고 했다. 내친김에 한라산까지 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다음번에는 한라산이라… 좋지!'

그런데 휴게소에 도착해 아내 등에 업혀있던 지민이를 내리면서 문득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는 지민이 몸무게가 더 늘어나 있을 텐데….'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