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선기 휘날리던 배는 어디로 갔을까?
만선기 휘날리던 배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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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의 제주를 걷다 ②] 성산일출봉을 보기 위해 광치기에 서다

   
 
▲ 성산포에서 바라본 우도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아침을 맞이하는 말들과 우도  ⓒ 김민수
 

 
2007년 9월 30일 일요일 오전
 
새벽녘에 눈을 뜨고 창문을 열어보니 여전히 하늘은 구름이 깔려있다. 아예 해돋이의 기운조차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하늘은 심통을 부렸다. 제주에서 일출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얼마 만에 찾아온 제주인데' 하는 마음에 서운하기만 하다.
 
'걷기에는 좋은 날씨네.' 스스로 위로하며 냉수 한 모금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숙소를 나섰다. 숙소를 나서자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과 소를 닮은 섬 우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성산일출봉에 올라가도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것 같다. 먼발치서라도 한라산 백록담을 바라볼 수 있다면 올라가겠는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성산포의 골목길들을 걸어 성산일출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광치기로 발걸음을 옮긴다. 

   
 
▲ 해녀탈의실 성산포 해녀탈의실  ⓒ 김민수
 

 
걸려진 태왁에는 제주 해녀들의 숨결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하다. 바다가 흐려서인지 아직 물질시간이 안되어서인지 미역을 말리는 할망의 손길만 분주할 뿐 성산포의 해녀탈의실은 고즈넉했다.
 
잔잔한 바다.
 
태풍 끝인데다가 날씨까지 우중충해서인지 제주 특유의 빛깔을 내지 못하고 있다. 청잣빛의 그 바다를 보고 싶은데…. 보고 싶다고 다 볼 수 있다면 그리움도 없겠지. 

   
 
▲ 성산포와 우도 종일 날씨가 흐릴 것만 같다.  ⓒ 김민수
 

 
그래도 제주의 검은 화산석만큼은 더욱더 검은빛을 내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분위기를 멋지게 연출해 낸다. 멋진 해돋이가 없었어도 하루가 시작된 것, 오랜만에 만난 제주를 걷기로 하고 광치기에서 바라보는 성산일출봉을 보기 위해 고성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성산일출봉 광치기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 김민수
 


드디어 광치기 바닷가에 섰다. 마침 물이 들어오고 있어서 내가 서서 사진을 담고 싶은 곳은 갈 수가 없었다. 그곳도 태풍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전에 있었던 식당도 온데간데없고, 간이식 화장실도 없어졌다. 모두 바람에 날려갔는가? 아니면 내가 다른 곳에 서 있는가? 굴착기가 아침부터 굉음을 울리며 분주하게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새벽 혹은 아침에 이곳에 오면 파도소리와 갈매기 소리, 간혹 들려오는 말들의 울음소리가 고작이었는데 기계의 소음소리가 바다의 소리들을 잡아먹는다. 

   
 
▲ 갯쑥부쟁이 가을꽃 중에서는 그만 외로이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 김민수
 

 
그곳에도 꽃은 피어 있었다. 고마울 따름이다. 태풍 뒤 피어난 꽃이라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게 피어났다.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아는가 보다. 그러니 먼저 피어났던 꽃송이와 꽃대를 다 잃어버리고도 절망하지 않고 피어날 것이다.  

   
 
▲ 폐허 방치되어있던 건물이 이번 태풍에 무너져 내렸다.  ⓒ 김민수
 

 
광치기에서 나와 동남 혹은 섭지코지로 발길을 돌릴까 하다가 다시 성산포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젯밤에 지나쳐온 성산항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밤에 걸으며 바라본 성산항은 을씨년스러워 보였고, 희미한 불빛에 앙상한 뼈대만 남은 배들이 성산항 저편에 있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만 탐하는 여행, 그것은 깊이가 없다. 성산포를 지나 오조리바다를 바라보니 기름띠가 무지갯빛으로 빛나고 있다. 태풍 뒤 있었다던 성산항의 선박화재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간다. 성산포의 끝자락, 몇 년간 버려졌던 창고가 이번 태풍으로 온전히 무너져 내렸다. 

   
 
▲ 성산항 물결 잔잔한 성산항의 아침  ⓒ 김민수
 


성산항, 그곳은 평온했다. 그러나 기름띠가 간간이 보이고, 만선기 펄럭이는 깃발은 보이질 않는다.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곳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을 보려면 새벽 어시장에 나와야 한다. 이미 한 차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는 쉬고 있는 중이니 조금 쓸쓸하게 보이면서도 평온하게 보인다.

   
 
▲ 다 타버리고 뼈대만 남은 선박 선박화재로 뼈대만 남은 선박너머로 성산일출봉이 슬퍼보인다.  ⓒ 김민수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배들을 쌓아놓은 부두로 향했다. 눈으로 보는 곳에 다다르기 위한 걸음걸이는 느리기만 하다. 마음 같아서는 그곳을 향하는 차라도 얻어타고 가고 싶은데, 천천히 걸어가는 걸음걸이가 힘은 들어도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뿌듯하고 천천히 걸어가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볼 수 있으니 그렇게 걷는다.
 
몇 날이 지났어도 매캐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어젯밤 내 코를 자극했던 그 냄새다.
 
얼마나 아팠을까…. 화재로 인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배들을 모아놓은 곳에 '제발, 우리 가족을 살려주세요'라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계속)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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