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걷다 3] 성산항에서 종달리까지

   
 
▲ 성산포항에 세워진 자전거 한 걸음씩 걷는 여행을 통해 느릿느릿 자건거가 얼마나 빠른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 김민수  
 

2007년 9월 30일(일) 오전에서 오후 사이

발로 걷는 길은 생각보다 느렸다.

광치기에서 성산항방파제까지 거의 한 시간여를 걸어야만 했다. 차로 휭하니 돌아볼 때에는 10분이 채 안걸리던 거리였는데 그렇게 먼 거리였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랬다. 눈 앞에 보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길이 없어 돌고 돌아갈 수밖에 없는 길이었던 것이다.

성격이 급한 탓인지 여기서 저기까지는 한 걸음에 달려가고 싶은데 오로지 한 걸음씩 뿐이라는 생각을 하니 느릿느릿의 삶을 좋아한다고 했던 자신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성산항 방파제에 세워진 자전거, 자전거를 타면 한 걸음씩 걷는 길보다는 조금 더 빠를 것이다. 그 빠름 대신 천천히 걸어갈 때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할 터이고, 빠름 대신 천천히 걸어가느라 미처 걷지 못한 길에 있는 것을 보기도 할 것이다.

종달리는 대략 12시 10분쯤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제 성산포로 오는 길에 잠시 종달리에 들렀다가 나를 기억하고 있는 동네꼬마들을 만난 덕분에 인사를 드리지 않으면 안될 이들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눈대중으로 거리를 가늠해 보니 천천히 걸어도 1시간여만 걸으면 될 것 같다. 

   
 
▲ 돌담과 우도 돌담너머로 보이는 우도, 아련하다.  ⓒ 김민수
 

한 시간이라, 조금 천천히 걸어도 충분한 길이다.
 
그런데 새벽부터 걸어서인지 배가 고프다. 아침을 거의 거르고도 점심이 되기 전까지 배고픔을 모르고 살았는데 배가 고프다는 것도 신선한 느낌이다.
 
낚시하는 이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한 시간여 낚시꾼들이 던져놓은 찌를 바라보았는데 서너 명만 손맛을 보았다. 그들도 배가 고픈지 핸드폰으로 자장면을 시킨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 잠시 후 도착한 자장면과 방금 잡은 고기로 회를 떠놓고는 소주를 한 잔씩 돌린다. 자기 일행이 아니라도 그 곳에 있는 이들 모두 가족처럼 여겨지는지 와서 소주 한 잔하라고 재촉을 한다.
 
"아저씨예, 여그 와서 회하고 쇠주 한 잔 합써."
"아직 아침 전이라 소주는 그렇고 회나 몇 점 먹겠습니다."
"서울서 왔수꽈?"
"저기 종달리에서 한 6년 살다가 육지로 나갔수다게."
"기? 반갑수다게. 한 잔 합써."  

▲ 모래채집장과 지미봉 모래채집장 너머의 바다와 지미봉  ⓒ 김민수

회를 서너점 얻어 먹었더니 금방 배고픔이 가신다. 그 간사한 배고픔이라니….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종달리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그전에 그렇게 많이 다니면서도 보지 못했던 사구둑들이 꽤나 많다.
 
그리고 바람이 센 날이면 유독 모래가 쌓이던 그 곳에 잔모래가 많이 쌓여있었다. 대나무로 울타리처럼 촘촘하게 세워둔 그 곳은 '모래채집장'이었다. 울타리처럼 쳐놓은 대나무 사이로 잔모래들만 통과돼 쌓이게 되는가 보다.
 
언젠가 이 곳을 지나다가 불룩하게 새겨진 '사랑해'라는 손가락 글씨를 찍은 적이 있었다. 그냥 별생각 없이 찍은 것인데 누군가 포토샵으로 합성을 했다고 한다. 뭔일인가 봤더니 손가락으로 썼다면 오목해야할 글씨가 불룩하다는 것이다. 본래는 그랬는데 바람이 만든 마술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도 그 곳에 '사랑해'라고 썼다.

   
 
▲ 준치 종달리해안도로에서 만난 준치, 아침전이라 참 맛나 보인다.  ⓒ 김민수
 

그때에도 줄곧 준치가 해안도로에 걸려있었다.
 
저 멀리 내가 걸어온 곳들이 보인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서귀포시가 끝나고 종달리가 시작될 것이다. 두어 마리 사서 걷는 길에 씹으면 좋을 것 같아 가게에 들어갔지만 주인이 없다. 그냥 돈을 놓고 두어 마리 집어 갈까 하다가 빈 손으로 나왔다. 오징어와 한치와 준치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준치를 집어간답시고 더 비싼 것을 집어가면 주인이 손해를 볼 터이니….

   
 
▲ 종달리해안도로 표지석 서귀포시가 끝나는 지점, 종달리의 시작이다.  ⓒ 김민수
 

조금은 남다르다.
 
그 길이 그 길인데, 이어져 있는 길인데 서귀포시와 제주시가 나뉘어진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길에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분단의 상징인 분단선을 넘어가는 대통령을 보았다. 그것보다야 상징성이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종달리가 시작되는 그 길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 지미봉과 종달리 예전에 소금밭이었던 곳에는 갈대가 무성하고  ⓒ 김민수
 

예전에는 소금밭이었던 그 곳, 나중에는 벼를 심는 논으로 변했다가 후에는 논농사도 짓지 않고 방치된 땅으로 잡초만 우거져 있었다. 그 연유는 잘 모른다. 단지 농사를 짓는 것보다 농사를 짓지 않고 보상금을 받는 편이 더 유리했기 때문에 그리 되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만약, 저 곳이 지금도 소금밭이라면 제주의 좋은 명물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아쉬워하지 말자고 했다. 지금 이 모습을 지켜가기에도 버거운 게 현실이니.  
  

   
 
▲ 태풍피해를 입은 밭 당근싹으로 푸릇해야 할 밭이 황량하기만 하다.  ⓒ 김민수 
 

당근의 푸른싹으로 푸른 물결이 출렁여야 할 밭은 다 휩쓸려내려가고 말았다. 다시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려면 흙을 새로 깔고 갈아야만 한단다. 이번 물난리로 바다로 유실된 흙의 양이 엄청나다고 한다. 화산섬인 제주, 이전에도 돌투성이던 밭이었으니 흙이 떠내려간 밭들은 농작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기에 충분한 흙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아플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들풀같다. 다시 일어서려는 몸짓들을 멈추지 않았다.
 
바닷가 근처의 억새들은 모두 모가지가 잘려나갔다. 태풍 '나리'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 풀들이 다시 일어서고, 다시 상채기 하나없는 꽃들을 피워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신비이듯, 제주도도 다시 일어설 것이다.  
  

   
 
▲ 다시 희망을 심는 사람들 그래도 다시 희망을 심는 종달리 사람들  ⓒ 김민수  
 

태풍으로 날아가 버린 지붕과 다시금 밭을 일구러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이들이 대조적이다. 그러나 머지 않아 이렇게 대조적인 풍경이 아니라 하나 되어 아름다움을 만드는 풍광을 보게 될 것이다.
 
12시 10분, 마지막에는 거의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빠른 걸음을 걸어야만 했다. 다행히 시간에 맞춰 종달리 목적지에 도착했고 만나야 할 사람들과 정겨운 인사를 나누었다. 동네 꼬마들이 이미 소문을 내어놓는 바람에 국수나 한 그릇 얻어먹고 갈 참이었는데 돼지족발까지 나와 아침을 거른 속이 탐식을 하며 배를 채웠다.
 
걷는 이에게 배가 부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중에야 알았다. 결국 종달리에서 제주시까지 걸어야겠다는 계획은 바꿔야 했다. 몸도 몸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을 두고 그냥 훌쩍 떠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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