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린이도서연구회 제주지부 김미영 '제2회 제주 책 축제를 다녀와서...'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에서 주최하는 책 축제가 2회째를 맞았다.

제주 책 축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비롯한 도민들에게 독서 교육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좀 더 튼실한 독서 문화를 창조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비롯되었다고 필자는 알고 있다.

이에 보다 나은 책 축제의 청사진을 모색하기 위해 책 축제에 다녀온 소감을 얘기하고자 한다.

우선 책 축제의 프로그램들이 의도했던 취지와 잘 부합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책 축제에 '책'을 매개로 한 프로그램을 넣으려는 시도는 가장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일반적 생각이다.

이번 책 축제에서도 그런 시도가 많았는데 가장 눈에 띠는 프로그램은 '독서 골든벨'이었다.

▲ 독서 골든벨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미리 선정된 30권의 책을 읽게 하고 책 속의 내용을 단답식의 문제로 내어 화이트보드에 그 답을 쓰는 형식으로 진행 되었다.

예를 들면 '로빈슨 크루소'에 나오는 흑인 소년의 이름은 무엇인지, '어린왕자'가 조종사에게 그려 달라고 했던 그림은 무엇인지 따위를 묻는 것이다.

이런 단편적인 문제는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이 주는 정보만으로도 풀 수 있는 문제이며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외우면서 공부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물음도 아니다.

책을 통해 간접체험을 하고 마음의 양식을 얻는다는 독서의 본질에도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은 '책'이 매개가 되었다는 명분만 있을 뿐 필연적으로 경쟁을 유발한다.

아이들은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30권이라는 버거운 양의 책을 미처 다 읽을 수 없어 요약본을 만들고 예상 문제를 뽑아 몇날 며칠을 그 '공부'를 위해 매달렸을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뽑아낸 예상문제와 대강의 줄거리, 작가 정보 등이 깨알 같이 적힌 종이쪽지들이 중요하다는 걸 밝히기 위해 빨간펜과 형광펜으로 도배된 채 행사장 곳곳에서 눈에 띠었다.

행사 직전까지 아이들은 수험생의 심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그 날 스산했던 날씨만큼이나 마음도 스산했다.

책 축제는 '축제'여야 한다.

책이 주는 즐거움을 알고 책을 매개로 한 재미있는 활동이 있으며 책과 관련된 강연을 들을 수도 있는 매우 유익하고 즐거운 축제의 장이어야 한다.

그러나 '독서 골든벨'은 독서를 권장하는 방편이 아니라 독서도 공부와 훈련의 한 갈래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 프로그램에 참석했던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참가 대상을 고려하지 않은 책 목록(여러분은 '햄릿', '노인과 바다', '갈매기의 꿈', '몽테크리스토 백작', '제인 에어' 등을 초등학생 때 읽으셨는가?)으로 짐스러운 책읽기를 했을 아이들에게 '다리가 불편해서'가 정답인데 '장애가 있어서'라고 써서, '쥐'가 정답인데'생쥐'라고 써서, '거인국'이 정답인데 '대인국'이라 써서, '에드몽 단테스'를 '아드몽 단테스'라고 써서 오답 처리된 그래서 탈락한 아이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보낸다.

"얘들아! 너희들이 그 책을 읽고 재미있었으면 그리고 감동을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대가를 받은 것이니 실망하지 말렴. 네가 책 속에서 그런 것을 얻었다면 그것은 바로 보물은 얻은 것과 다름 없단다"

수상한 아이의 영광 뒤에 가려진 많은 아이들의 실망과 좌절을 적어도 책 축제에서 만큼은 보고 싶지 않다.

이번 책 축제가 독서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새로운 책 문화를 창조하는 일환으로 기획되었다면 그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우선 행사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교육청과 책축제추진위원들은 책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독서 교육은 어떤 형식으로 취해져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정확히 설정하고 공유했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독서 골든벨'이라는 프로그램은 결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다른 행사와 뚜렷이 대별되는 '책축제'만의 차별성이 있었는지 살펴보겠다.

문학 특강은 아이들이 동원된 티가 역력했다.

그나마도 동원된 아이들이 성의껏 강의에 임하지 못해 강연자도 아이들도 힘든 시간처럼 보였다.

책 축제에 참여하는 다수의 인원은 부모 손잡고 오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이다.

이런 참가 인원의 눈높이를 감안하는 강연이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의미있게 다가간 작품을 쓴 인지도 있는 어린이 책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좀 더 쉽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지역적 특성 때문에 쉽게 보지 못하는 공연 프로그램도 있었으면 좋았겠다.

요즘은 어린이책을 기본 골조로 삼은 좋은 공연들도 참 많다.

체험 마당의 활동들은 대동소이해 큰 이목을 끌지 못했다.

백화점식으로 나열해 놓은 활동을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참여하기는 하나 그 성과물들이 대부분 조악해 행사장을 나서면 바로 버려지는 게 아깝고 안타까웠다.

많은 체험활동 보다 수준 있는 체험활동을 고민해 아이들에게 공들여 만든 작품을 소중히 품고 가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려면 각 단체가 연계해 방법을 모색해 보는 것도 좋겠다.

수목원에서의 '책읽기' 프로그램도 보완해야 하겠다.

물론 숲 속에서의 책 읽기는 그 상상만으로도 여유로움이 묻어나며 그만큼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 곳은 어차피 행사장이기에 부산스럽고 바쁘다.

그러므로 책을 읽을 적합한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공간, 아늑한 공간을 좋아한다.

그들이 책에 집중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 내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나무 밑 벤치, 상자로 만든 집, 울타리 쳐진 내 자리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자리도 마련해 주면 좋았을 것이다.

이렇게 책 축제를 둘러본 소감을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진행상의 미숙함이라든가 사소한 실수는 어느 행사나 따라다니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기에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온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축제를 준비한 많은 이들에게 가혹하게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책 축제가 어떤 취지에서 진행되는지 그 취지에 맞게 프로그램이 운영되었는지는 근본적인 물음이기에 꼭 살펴보아야했다.

애정 어린 비판은 발전의 모태이다.

보다 나은 성숙한 우리 모두의 책 축제를 만들기 위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아주길 바란다.

[ 어린이도서연구회 제주지부 김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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