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충민의 사람사는세상] 새벽 6시, 아들의 현장학습 도시락을 싸다

"아빠! 누드김밥 만들 수 있어?"

지난 수요일(24일) 원재가 저녁 식사 후 혼자 샤워를 하고 와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응 김에 밥 펼친 걸 뒤집어서 말면 되지… 왜 누드김밥으로 만들어 줄까?"

그러고 보니 아들 원재가 완전 누드였습니다. 그리고는 한 마디 했습니다. "지금 니가 누드야"

▲ 원재의 도시락을 싸려고 새벽 6시에 일어났습니다.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났습니다. 전날 재료를 미리 준비해 두어서 그리 분주하지는 않았습니다. ⓒ강충민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 원재가 금요일(26일) 가을 현장학습을 갑니다. 그래서 어떤 도시락을 쌀까 고민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유치원까지는 원재가 워낙 주먹밥 도시락을 좋아해서 그걸로 싸서 보냈습니다. 초등학생이 되면서는 김밥이 친구들과 나눠 먹기에도 좋을 것 같아 김밥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원재가 누드김밥 얘기를 꺼내 이번 도시락은 누드김밥으로 정했습니다. 메추리알을 넣은 스카치에그도 하기로 했습니다.

뭐 대충 아무렇게나 김밥 둘둘 말아 보내면 되지만, 제가 먹는 것만큼은 워낙 밝히는(?) 편이라 사서 고생을 자주합니다. 중요한 건 이런 것이 제가 즐거우니까 하는 거라는 것이죠.

퇴근 후 김밥과 스카치 에그 재료를 샀습니다. 평소에 자주 이용하는 사무실 근처 소형마트에서 구입했습니다. 그곳의 정육코너는 단골이라 항상 저울가격보다 넉넉하게 주거든요. 김밥 속에 돼지고기도 같이 넣을 요량으로 통살코기도 3000원 어치 샀습니다.

▲ 전날 메추리알을 삶았습니다. 온 가족이 껍질을 깠습니다. 세판을 삶았는데 지운이가 많이 먹었습니다. 실온에 보관되어 있던 메추리알을 터지지 않게 삶는 게 포인트입니다. 소금도 약간 넣고…. ⓒ강충민
스카치에그의 재료로 갈은 돼지고기, 메추리알 3판을 샀습니다. 김밥의 재료로는 밥보다 속이 더 푸짐하게 단무지, 우엉, 당근, 참치, 맛살, 어묵, 돼지고기, 햄을 샀습니다. 계란과 김은 집에 있는 것을 사용하면 되니까요.

저녁을 먹고 내일 아침에 바로 익히기만 하면 되게 구입한 재료들을 미리 썰어 밀폐용기에 담아 두었습니다. 갈은 돼지고기에는 후추와 소금, 마늘을 넣어 밑간을 하고 손으로 여러 번 치대어 냉장실에 두었습니다. 당근도 잘게 다져서 같이 넣었고 돼지냄새가 가시라고 우유도 조금 넣었고 빵가루도 조금 넣었고요.

무엇보다 삶은 메추리알을 까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저와 각시, 원재 셋이 함께 하니 금방 되었습니다. 딸 지운이가 옆에서 재미있는 놀이거리를 찾았다고 생각했는지 자꾸 훼방을 놓긴 했지만…. 하긴 이제 만 36개월이 채 안 된 녀석이 상황파악을 한다면 외려 이상한 게지요. 까는 것 보다 자기 입에 들어 간 게 더 많았습니다.

이렇게 준비를 마치고 원재의 현장학습 아침, 평소보다 1시간정도 일찍 일어났습니다.

각시는 평상시처럼 운동을 하러 가면서 저를 깨우더군요. 제가 계획했던 일이라 각시에게는 차마 운동가지 말라고 못하겠더군요. 그 대신 나중에 스카치에그 튀기는 것은 도와주겠답니다.

▲ 김밥에는 미리 재어둔 돼지고기를 같이 넣으면 맛있습니다. 씹는 감촉도 있고. 당근도 데쳐 넣고 우엉도 넣고... 속재료가 아홉가지나 됐습니다. 스카치에그재료에는 갈은 돼지고기와 다진 당근이 주로 들어갔습니다. 재료비 1만3천원가량 들었습니다. 참치, 어묵, 당근, 계란, 김은 집에 있던 것입니다. ⓒ강충민
길게 썰어 놓은 당근을 소금물에 데치고 계란 지단을 부치고 햄을 찌고(기름을 덜 사용하려고….) 양념된 돼지고기를 약한 불에 익히고 하여 재료들을 김밥에 올려놓기 쉽게 정돈을 했습니다. 미리 치대 냉장실에 두었던 갈은 돼지고기를 꺼내서 메추리알을 넣고 둥글게 빚기 시작했습니다. 원재가 어느 틈에 깨 저를 도왔습니다. 몹시 설렜던 모양이지요.

평소 김밥을 말 때 김발은 사용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누드김밥을 만든다고 깨끗이 씻어 말려 놓았습니다. 그것을 꺼내 하나씩 김밥을 말기 시작했습니다.

김발 위에 참기름을 바르거나 랩을 씌워 놓고 밥을 펴 바른 김을 뒤집어 말면 되는 게 누드 김밥이지요. 밥알이 위로 가느냐, 김이 위로 가느냐의 차이니까요. 김에 밥알을 펼 때 끝에 여분을 남긴 부분을 가슴 쪽으로 오게 해서 재료를 올려 놓고 마는 것이 좋은 모양을 내기 위한 포인트고요. 저는 이번에 김발에다 올리브유를 바르고 말았습니다. 참기름을 바르면 밥알의 색이 곱질 않더군요.

"이야 정말 쉽네…"

원재가 제가 밥알을 편 김을 뒤집어 간단히 누드김밥 마는 것을 보고는 탄성을 지릅니다.

"그래! 정말 쉬워. 모를 때는 당연히 어렵고… 그치? 아빠도 첨엔 어렵더라고…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까 별거 아니더라고…"

그 와중에도 이런 당연한 이치에 '옳다구나' 싶어 조금 길게 얘기했습니다. 원재가 스카치에그를 제법 빚은 덕분에 한결 수월했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각시가 후다닥 샤워를 하고 원재가 빚은 그것을 살살 굴려가며 튀겨 냈고 저는 누드김밥 말은 것을 예쁘게 칼로 썰었습니다. 이렇게 김밥을 말고 보니 누드김밥 일곱 줄, 그냥 김밥 다섯줄…. 원재 현장학습에 김밥잔치를 할 판이 되었습니다. 아침도 이걸로 먹고 각시와 저의 점심도시락으로 넉넉하게 싸가면 좋을 것입니다. 직원들과도 나눠 먹고요.

▲ 이렇게 도시락을 싸서 챙겨 보냈습니다. 그 덕에 우리집 식구 김밥과 스카치에그로 포식을 했습니다. 저와 각시의 점심도시락도 이것이었고요. 이렇게 찍고 보니 냉동된 홍시가 앙증맞습니다. ⓒ강충민
원재의 도시락에는 밑에는 그냥 김밥, 위에는 누드 김밥을 넉넉하게 담았습니다. 친구들과 충분히 나눠 먹을 수 있게요. 그리고 튀겨낸 스카치에그를 반으로 썰어서 다른 도시락에 담았습니다. 과일은 전날 냉동실에 넣어 얼려 둔 홍시를 통째로 넣었습니다. 아마 점심 무렵에는 원재가 먹기 좋게 자연 해동될 테니까요.

그나저나 이렇게 만들긴 잘 만들었는데 설거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도시락을 만들어 보내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저녁에 "아빠 엄청 맛있게 먹었어. 애들도 맛있대…" 이 한마디에 입이 헤 벌어질 저도 어쩔 수 없는 부모가 되었나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원재의 초등학교 현장학습은 금요일(10월26일)이었습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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