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 개장한 '노루생태관찰원' 방문기

여름을 보낸 지 며칠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날씨가 쌀쌀하다. 만추에 이슬비까지 더하니 겨울이 성큼 코앞에 다가온 느낌이었다. 이른 아침 '야생노루관찰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유치원가는 대신에 아빠와 노루를 구경하겠다고 나서는 딸은 두꺼운 옷을 걸치고 가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직 유치원생인데도 벌써 옷맵시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봉개 마을과 명도암 마을을 지나 야생노루관찰원을 가는 길은 온통 가을로 뒤덮여 있었다. 길가 과원에 노랗게 익은 귤과 들판에 너울거리는 억새가 행인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가을 들녘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한 폭의 풍경화로 다가왔다.  
  

   
 
▲ 식사 중인 노루들 상시관찰원에서 노루들이 식사 중인 모습이다. 노루는 위가 작은 반면 활동량이 많아서 하루 여러 차례 식사를 해야한다.  ⓒ 장태욱 
 

노루의 식사

오전 9시가 조금 넘어서 야생노루관찰원에 도착했는데, 마침 상시관찰원에서 생활하는 노루들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상시관찰원은 거친오름 주변에 조성된 관찰로에서 노루를 만나지 못한 방문객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노루 우리다.

일하는 직원이 우리에게 ‘운이 참 좋다’고 했다. 노루들은 성격이 워낙 소심해서 먹을 때가 아니면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에게는 더욱 낯을 가린다는 것이다.

노루들은 활동량이 많지만 위가 적어서 소화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조금씩 여러 번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노루들의 음식은 직원들이 직접 산에서 채취하고 있었다. 노루는 초식동물로 대부분 식물을 먹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송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 송악 담쟁이처럼 뿌리가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식물이다. 노루가 가장 좋아하는 식물인데, 내가 어릴 적에 그 열매를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았다.  ⓒ 장태욱
 

송악은 뿌리가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담쟁이와 비슷한 식물인데, 제주도와 남해안에 주로 서식한다. 송악의 열매는 직경이 모나미볼펜의 내경과 비슷하기 때문에 어릴 적에 모나미볼펜으로 딱총을 만들어 놀던 시절 딱총의 실탄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내가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던 식물이 노루의 주식이라고 하니 노루와 더욱 친숙해진 느낌이 들었다.
  

   
 
▲ 노루 수컷의 뿔 겨울철에 수컷의 머리에서 뿔이 떨어지고 봄이 되면 새로운 것이 돋아난다.  ⓒ 장태욱
 

상시관찰원에서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일들이 꽤 많다고 했다. 작업하던 문성호 계장이 신기한 물건 하나를 들고 왔다. 노루의 뿔이었다. 노루 수컷은 뿔이 있어서 1년에 한 번 뿔 갈이를 한다. 겨울에 뿔이 떨어지고 봄에 새로운 뿔이 돋아나는데, 겨울이 다가오니 수컷의 머리에서 뿔이 저절로 떨어져 나온 것이라고 한다.

전시실에서 노루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사실들

문성호 계장의 안내로 관리동으로 들어갔다. 150평 규모의 관리동에는 전시실과 사무실 치료실 등이 갖춰져 있었다. 시내 어린이 집에서 이곳을 방문해서 유아들이 전시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시실에는 노루에 대한 정보가 사진과 비디오를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 전시실에서 만난 어린이들 시내 어린이집 아이들이 이곳을 견학했다.  ⓒ 장태욱 
 

전시관에서 제주의 노루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었다. 한반도에서는 고산지역을 중심으로 노루가 분포하고 있으나, 그 서식밀도가 높지 않다. 하지만 제주도에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개체수가 크게 증가하여 현재 약 2천 마리 이상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때 멸종위기에 놓여 있는 한라산 노루의 개체수가 이렇게 증가하게 된 배경에는 겨울철 한라산의 적설량이 감소한 것과 더불어 겨울철 먹이주기 운동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 야생노루 한라산에 노루 개체수가 크게 증가했다.  ⓒ 장태욱 
 

노루는 일부일처제 동물로 알려졌으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일부다처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수컷들 간의 서열다툼이 3월에서 8월까지 치열하게 전개된다. 그리고 8월에서 10월이 발정기간에 해당하는데 이때는 개체 간 다툼이 한층 치열해진다.

노루의 서열은 나이가 많을수록, 뿔이 클수록, 몸집이 클수록 높다. 발정기간이 지나면 노루 간 서열이 없어지고, 싸움도 사라진다. 노루의 짝짓기 기간은 9월 말에서 10월 말에 해당하며, 암컷의 임신기간은 약 290일 정도다.  
  

   
 
▲ 문성호 계장 이곳의 책임자인데, 인상이 자연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장태욱
 

이 관찰원에는 총 7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겨울에는 할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일손이 다소 부족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이곳에서 수의사로 근무하는 고진아씨는 수의사라는 직함이 무색하게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방문객이 오면 안내를 해야 하고, 식사 횟수가 하루 5회 이상 되는 노루들에게 음식도 자주 챙겨줘야 한다고 했다.

딸과 둘이서 거친오름 주변의 관찰로를 거닐다

문성호 계장은 이곳 상시관찰원보다는 거친오름 주위를 도는 2.6Km 관찰로가 볼 만하다고 했다. 산책 삼아 관찰로를 돌면서 눈앞에 펼쳐진 제주시가지를 조망하는 것도 여간 운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자랑했다.  
  

   
 
▲ 관찰로 거친오름 주변을 도는 2.6km의 관찰로  ⓒ 장태욱
 

오전이라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산책로를 딸과 둘이서 걷기로 했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해서 사무실에서 하나 빌려 썼다. 거친오름 주변 벌판은 말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억새가 춤을 추는 평화로운 광경을 연출하였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 아래 멀리 펼쳐진 들판 너머에 시가지가 보이고, 그 건너편에 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 진주 옷을 가볍게 입고 와서 아빠의 점퍼를 입었다. 멀리 펼쳐진 들판이 장관이었다.  ⓒ 장태욱
 

내려오는 길 울타리는 4·3평화공원과 경계가 맞닿아 있었다. 역사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죽어간 이들을 위로하는 옆에서 노루들이 왕성한 활동력으로 생명을 과시하는 것을 보면서 '죽음의 장소에서 노루가 상징하는 생명과 평화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자'는 듯한 암시가 느껴졌다.
  

   
 
▲ 관찰로에서 바라본 4·3평화공원 관찰로의 울타리는 4·3평화공원과 경계가 맞닿아 있다.  ⓒ 장태욱 
 

15만평 규모의 임야에 국비와 도비를 합해 50억여 원의 거액이 투입된 노루생태관찰원은 제주의 생태환경이 관광자원으로서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는지 보여줄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을 할 것이다.

개장한 지 2개월 남짓 한데 벌써 하루 2-300명이 다녀가고 어떤 날은 주차장이 비좁아 차를 댈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좋은 관광지로 각광받는 곳이 되어서 제주 관광에 새로운 이정표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노루생태관찰원 전화번호 : 064-728-3611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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