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제주도는 조국해방의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도민들의 자주적인 독립의지는 '건국준비위원회'의 활동으로 나타났고, 자치 자활의 의지는 치안대의 조직과 활동 그리고 들불같이 번지는 민족교육 열기로 구결되었다.

이 영화의 주무대인 조천면 북촌리 작은 마을에서도 공립 소학교의 교육과 야학활동이 크게 일어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말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했던 한글 교육에 순이를 비롯한 쇠테우리, 불미대장 등 마을 주민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참가한다.

이명준은 소학교 교사로서 낮에는 학교 교육과 밤에는 야학활동에 전념한다. 명준을 남모르게 흠모하는 제주읍 출신의 장지은 선생은 그를 도와 주민들 교육에 헌신한다.

이명준의 절친한 친구들인 윤상필과 고동일은 각각 우익청년단과 경찰에서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은근히 장지은 선생을 마음에 두지만 장지은의 마음은 오로지 이명준에게만 향한다. 하지만 이명준은 이미 결혼을 한 두 아이의 아버지, 지은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이다.

윤상필은 일제시대 면장을 지낸 부친의 경력 때문에 해방 이후에는 다소 기가 죽어지낸다. 고동일은 '억울한 자를 보살피고 약한 자를 돌봐주는' 경찰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한편 마을에서는 제주 전래의 공동체 정신인 '수놀음'으로 초가지붕을 협심하여 새로 일기로 하고 멸치잡이에도 함께 힘을 보태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다. 서로 한 가족처럼 인정을 나누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북촌리. 이명준의 처 양혜선과 윤상필의 처 고영숙 그리고 순이와 과부 빨래기아지망 등도 물질을 같이 하며 의좋게 살아간다. 그러나 이런 평화도 잠시뿐….

1947년 3월 1일, 제28주년 3.1절 기념식 이후의 상황은 거대한 해일과 같은 기세로 섬마을을 덮친다. '기미년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이어받아 통일된 독립국가를 수립하자'는 3.1절 기념식은 한 순간 경찰의 무차별한 발포로 말미암아 무고한 양민 6명이 사망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된다.

기념식에 참가했던 순이와 약혼자인 생돌이는 가까스로 몸을 피하지만 이명준은 경찰들에게 연행된다. 혜선과 동일은 명준의 구명을 위해 정신 없이 뛰어다니고 장지은 역시 남몰래 명준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쓴다. 걷잡을 수 없는 충돌사태는 점차 피로 얼룩지고 이에 분노한 제주도민들은 유사 이래에 처음 보는 관민 총파업으로 대응하지만 경찰 측에서는 오히려 대규모 검거선풍으로 맞선다.

제주에 급파된 조병옥 경무부장은 제주사태를 신속히 제압하기 위해 모종의 결심을 한다. 드디어 엄청난 수의 서북청년단원들이 제주에 입도하여 빨갱이 소탕을 명분으로 무고한 도민들에 대한 잔인한 테러를 자행한다. 어느 날, 명준의 제자인 점생이가 서청들에게 고문치사 당하고.

물질을 하던 순이의 눈앞에 떠오르는 점생이의 참혹한 시신, 미군정의 유화책으로 석방된 명준은 제자의 죽음 앞에 결국 입산을 결심하고 가족들과 작별하고 한라산으로 향한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 무장대 지도부에 의해 결정된 무장봉기가 도내 11개 지서에 대한 습격으로부터 촉발된다. 경찰관들과 우익 요원들이 차례로 살해되고. 이 와중에 무장대에게 부친을 희생당한 윤상필은 이를 명준의 소행으로 알고 복수심을 불태운다. 제주도의 각 마을에서 이어지는 서청들에 의한 잔인한 보복극. 드디어 북촌국민학교에까지 난입한 서청들의 횡포를 동일과 경찰에 투신한 상필이 막는다. 의기양양해진 윤상필이 장지은에게 추근되지만 오히려 지은에게 무안만 당한다. 지은의 안위를 걱정하는 동일의 마음을 알게 되는 지은, 다만 미소로만 답할 뿐이다.

한편, 4월 28일 사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토벌대와 무장대 측의 평화협상이 대정면 구억국민학교에서 마련된다. 토벌대 측의 김익렬 연대장과 무장대 측의 김달삼 유격대사령관 간의 협상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입산자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하산행렬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한 경찰 측의 음모에 의해 사태는 다시 긴박한 양상으로 바뀌며 대토벌의 전조가 된다. 경찰의 총탄을 맞고 사망한 불미대장의 시신을 묻는 이명준의 손이 바르르 떨린다. 평화협상을 주도했던 김익렬은 조병옥에 의해 파면되고 강경파인 박진경 중령이 새로운 연대장으로 부임한다.

5.10선거가 다가오고, 단선단정 반대 유인물을 제작하던 장지은은 경찰들에게 발각되어 목에 '나는 빨갱이다'라는 팻말을 걸고 묶인 채 마을길을 돌다가 유치장에 수감된다. 5월 10일 선거가 치러지지만 주민들은 이미 선거를 거부하여 산으로 올라가 버려 투표율이 극히 부진하다. 결국 제주도의 3개 선거구 가운데 2개가 선거인수 미달로 무효가 된다. 이때 이명준 휘하의 무장대는 투표소를 급습하여 투표함을 불태워버리고 조천 지서를 습격해서 갇혀있던 장지은을 구해낸다. 반갑게 명준을 바라보는 장지은의 운가에 한없는 이슬이 맺힌다.

선거 무효에 불만인 이승만은 제주도에 대한 강력한 토벌작전을 조병옥에게 시달하는데, 6월 18일 박진경 연대장이 부하 장병에게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드디어 군경의 대규모 합동 토벌작전이 개시되고….

명준의 부모도 토벌대에게 끌려가 함덕 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총살당한다. 피울음을 울며 시신들을 수습한 양혜선이 정한수를 떠놓고 이명준의 안위를 빈다. 음으로 양으로 명준의 가족을 보살피던 동일이 다가올 위험을 피해 혜선과 지은에게 일본으로 도피밀항을 권유하지만 두 사람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남북인민대표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김달삼 일행이 떠나면서 명준이 인민유격대 총사령관을 맡는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북에서 김일성이 인민공화국 수반으로 추대되자, 군경 토벌대에 의한 전면적인 제주도 초토화 작전을 개시한다. 윤상필에 의해 명준의 처 혜선마저 아이들과 함께 처참하게 학살된다. 이 사실을 명준에게 알리는 장지은. 윤상필의 처 고영숙은 남편의 행동에 자책감을 못 이겨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만다. 오히려 처의 자살을 무장대의 소행으로 여기는 윤상필의 복수심은 극에 달한다. 결국 임신한 순이까지 연행해서 생돌과 명준의 아지트를 알아내려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성고문까지 자행한다. 이 사실은 안 생돌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산을 내려오다가 마침 대토벌을 시작하는 토벌대의 매복에 걸려 사살 당하고 만다. 만신창이로 풀려난 순이는 생돌이의 꿈을 꾸고 생돌이가 죽었음을 직감하여 통곡한다.

1949년 1월 17일 끔찍한 북촌리 대학살이 자행된다. 전날 군인 2명이 북촌리 근방에서 무장대에게 사살당한 데 대한 보복극이다. 1천여 명의 주민들이 북촌국민학교에 영문도 모른 채 집결된다. 만삭의 몸으로 걸음을 옮기기도 힘이 드는 순이의 모습도 보인다. 흥분한 군인들에 의해 주민들은 차례로 옴탕밭으로 끌려나간다. 이유도 모른 채 무차별 총격에 의해 쓰러지는 힘없는 주민들, 그 잔인한 학살에 4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관총에 의해 죽어간다.

지옥과 같은 아비규환 속에 자행되는 대학살-.

어디선가 시체더미 속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거의 실성한 순이가 비틀거리며 몸을 세운다. 온통 피범벅인 몸을 일으켜 탯줄을 이빨로 끊는다. 핏덩이 새 생명을 안은 채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는 순이, 허청허청 어디론가 사라진다.

한라산에서는 토벌대의 동계 대토벌에 무장대는 거의 궤멸직전에 이르고, 토벌대에게 붙잡힌 장지은이 토벌대장에게 겁탈 당하려는 찰나에 토벌대에 차출되어 나와 있던 동일이 뛰어들어 구해준다. 명준과 합류한 두 사람은 뒤를 쫓는 윤성필과 토벌대들에게 발각된다. 결사적으로 달아나는 명준 일행 앞에 나타나는 막다른 절벽.

뒤돌아 볼 여유도 없이 절벽 아래로 뛰어드는 이명준, 장지은, 고동일….

악착같이 추격하던 윤상필은 오히려 쇠테우리의 매복에 걸려 살해된다.

그러나 절벽 아래에서 숨을 거둔 장지은의 시신을 들쳐 업고 오열하는 동일, 얼굴에 피눈물이 흐른다.

토벌대의 포위망은 더욱 좁혀 오고, 최후까지 남은 유격대원들을 피신시킨 명준은 결국…. 몸통 채 떨어지는 붉은 동백꽃이 설원을 붉게 물들인다. 제주읍 관덕정에 내걸려 전시된 이명준의 시체를 바라보는 순이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가슴속에 안겨있는 아기의 빰을 타고 흐른다. 아기의 해맑은 얼굴에는 이 참혹한 역사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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