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제주 하도리 마을

제주에서 성산포 방향으로 뻗어 있는 12번 국도는 함덕을 지나면서부터는 바다 멀리까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가을날 높고 푸른 하늘 아래 멀리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차를 운전하는 것은 이 길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는 제주시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36km쯤 되는 거리에 있다. 일주도로(12번 국도)를 따라 운전해보니 45분 정도 소요되었다. 

▲ 하도리 리사무소 ⓒ 장태욱
  
신석기 유적부터 해녀항일투쟁까지, 하도리의 흔적들

이 마을에서 신석기 유적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보면, 아주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하도리 마을이 언제 형성되었는지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구전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 제주 고(高)씨, 제주 부(夫)씨, 양천 허(許)씨 등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마을과 관련된 기록으로는 성종 12년(1418)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에 마을의 동쪽 바닷가에 있는 토끼섬 일대를 '도의여개'로 표기하였고, 마을 이름도 포구의 이름을 따서 '도의여' 마을이라 불렀다.  

▲ 해녀박물관 3층에서 바라본 하도리 마을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마을의 규모가 커지자, 상·하로 나누어 '알도의여(하도)'와 '웃도의여(상도)'로 나누어 불렀고, 18세기에 들어서자 '상도의리'와 '하도의리'로 불렀다. 그러다 19세기 중반에는 한 때 '상도의리', '하도의리', '벨방리', '별방포', '별방진' 등으로 섞어서 부르기도 했는데, 20세기에 들어서자 상도리(上道里)와 하도리(下道里)로 불렀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1932년에 일대에서 일어났던 해녀들의 항일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상도리와 하도리 인접 지역에 세워진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인근에는 제주 해녀의 문화와 역사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건립된 해녀박물관이 있다.

하도리 해안도로, 자연이 선사한 최상의 야외박물관

하도리의 해안도로는 해녀박물관에서 창흥동 철새도래지까지 이어진다. 이 해안도로를 지나다 보면 마치 자연과 역사를 테마로 조성된 야외박물관에 온 듯 같은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해안 절경에 빠지게 된다.  

▲ 별방진성, 조선시대 우도에 왜구가 침투하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최근에 복원되었다. ⓒ 장태욱
  
해녀박물관을 지나 동쪽으로 푸른 바다를 끼고 가다 보면 길 오른쪽에서 복원된 옛 별방진성을 볼 수 있다. 별방진은 조선 초기에 우도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자, 이에 대비하기 위해 중중 5년(1510) 장림 목사가 김녕방호소를 지금의 하도리 해안으로 옮겨 지은 것이었다. 별방진은 ‘특별방어진지’의 줄임말인데, 이곳은 당시 제주목 동부 지역에서 가장 큰 군사기지였다고 한다.

별방진성에서 동쪽으로 1km쯤 되는 위치에서 해안가를 보면 작은 섬이 보이는데, 문주란 자생지로 잘 알려진 토끼섬이다. 문주란을 정확히 관찰하기 위해 바위 위를 걸어서 근처까지 가보니 문주란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바닷물이 가로막고 있어서 아쉽게도 섬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 토끼섬 문주란의 자생지이다. ⓒ 장태욱

  
그곳을 지나면 해안선의 모양을 따라 해안도로는 남쪽으로 굽어진다. 그 길이 안내하는 방향대로 가면 창흥동 철새도래지에 이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철새들이 한가로이 따뜻한 가을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이 철새 도래지는 바다가 내륙 깊숙이 들어와 있는 만으로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곳이어서 새의 먹이가 풍부하다. 게다가 그 일대에서 자라는 갈대숲이 새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담당한다.

▲ 창흥동 철새도래지에 겨울이 가까워지니 철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 장태욱
  
겨울이 되면 이곳에 28종, 3천여 마리의 철새가 도래하여 겨울을 난다. 대표적인 종으로는 세계적으로 희귀종인 저어새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랑부리 저어새, 큰고니 및 멸종위기종인 큰기러기, 물수리, 말동가리 등이 있다.

희망을 가꾸려는 비전과 노력들

이 마을에는 현재 847세대에 약 2070여 명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밭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제주의 해안 마을이다. 토질과 기후가 적합하지 않아 귤은 재배되지 않고, 농민들은 주로 당근, 감자, 마늘, 무 등을 재배된다.

오철규 하도리 이장을 만났다. 오 이장은 하도리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그로 인해 생겨난 독특한 생활문화와 역사를 자랑했다.

“우리 마을은 마을 전체가 해발 40미터 이내의 평지로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6.5km에 이르는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지대이기 때문에 온도는 비교적 높은 데 바람은 강하고, 토질은 척박합니다. 하도리의 독특한 생활문화는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 해안도로, 검은 현무암 돌담과 푸른 바다가 대비되어 아름답게 보였다. ⓒ 장태욱
  
이 마을이 토질이 척박한 대신 해안선이 길어서 해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기 때문에 일찍이 이곳에 해녀문화가 싹텄다고 한다.

오철규 이장은 제주도에서 해녀 물질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 하도리일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하도리에는 47세에서 82세까지 다양한 연령에 해녀 5백여 명의 해녀들이 물질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해녀들이 배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공회당에서 야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 야학당을 기반으로 1921년에 제주 최초의 사립초등학교인 하도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1932년 이 일대 해녀들이 중심이 되어 일경을 벌벌 떨게 했던 제주해녀항일운동의 배경에 하도리의 높은 교육열이 있었다.

▲ 해녀박물관 내에 전시된 해녀들의 모형 ⓒ 장태욱
  
오 이장은 농촌 이장으로써 마을에 대한 사명감이 남달라 보였고, 마을의 장래에 대해 나름대로 확고한 비전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면담 도중 주민들로부터 ‘이장님’을 찾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왔다. 주로 “먹을 것이 생겼으니 와서 드시고 가라”는 내용인 듯했다.

“농산물 수입개방하면 하도리 당근이 중국산 당근과 경쟁해야 하는데,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가능한 것부터 하려고 합니다. 요즘 도시 주부들 번거로운 거 싫어하잖습니까? 그래서 당근을 도시주부들의 취향에 맞게 전부 세척해서 판매할 수 있도록 공동세척장을 지을 예정입니다.”

▲ 하도리 마을 오철규 이장 ⓒ 장태욱
  
마을에 4계절 관광객들이 찾아올 수 있게 테마상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도 했다. 봄에는 유채꽃으로 마을을 치장할 것이고, 여름에는 960m에 이르는 백사장을 활용하면 피서객들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간조 때 펼쳐지는 해안 대지 위에서 고동잡이 행사도 펼치고, 겨울에는 철새와 겨울파도가 어우러져 연출하는 장관이 관광객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지금도 마을에서는 외부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해마다 1월 1일이 되면 해맞이를 보기 위해 이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과 마을 주민들이 치어방생 행사를 한다고 했다. 이 마을 출신으로서 인근에서 양식장을 운영하는 조운삼 사장이 기증한 치어를 관광객들과 주민들이 소원을 빌면서 바다로 방생하는 이벤트인데, 관광객들로부터 좋은 평을 듣고 있다고 했다.

▲ 하도리 해안가에 서면 우도가 훤히 내다보인다. ⓒ 장태욱
  
마지막으로 오 이장은 독특한 구상 한 가지를 내 놓았다. 이 마을에는 과거 논농사를 짓던 시절의 흔적으로 수원지가 남아 있는데, 현재 쓰임이 없어서 거의 방치된 상태라고 했다. 농촌공사 소유로 되어 있는데, 마을 주민들 간에 이 수원지 내에 철갑상어 양식장을 조성하자는 의견이 모였다고 한다.

수원지가 수로를 통해 바다와 연결되어 있어서 수원지 내에서 담수와 해수가 혼합되는데,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본 결과 철갑상어 서식에 적합한 환경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생태계에도 별문제를 일으키니 않을 것이라는 자문도 들었다고 했다. 마을의 이름으로 농촌공사에 수원지에 대해 임대 신청서를 냈는데, 차일피일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사는 마을의 경쟁력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는 노력들이 좋아 보였다. 오 이장과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노력해서 뜻하는 데로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하도리 리사무소 064-783-3073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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