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아쉬운 제주지검, "사후 압수영장만 받았더라면..."

검찰이 김태환 제주지사를 공직선거법위반(선거기획) 혐의로 기소할지, 말지를 놓고 한창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지난 2006년 8월 18일 황인정 차장 검사는 매우 흥미있는 말을 했다.

황인정 차장검사는 제주지검 공보관 역할을 맡아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각종 사건에 대한 대언론 창구였다. 황 차장검사는 김 지사 사건과 관련한 숱한 ‘말...말...말...’을 남겼다.

“지난 4월 27일 제주도청 비서실(특보실)과 기획관리실을 압수수색하던 중 우연찮게 선거관련 문건을 입수하게 됐다”며 “원래 거기에 있어야 할 문건이 아닌데...문건이 발이 달려 온 것 같았다...”라고 묘한 말을 했다.

‘문건이 발이 달려 온 것 같았다(?)’ 이 뜻 모를 이야기를 듣고 가장 가슴 쓰렸던 쪽은 김태환 제주지사와 그 비서관이었다.

제주도선관위 수사의뢰를 받은 검찰은 문제의 4월 27일 오전10시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고 제주도청 정책특보실과 기획관실, 이들의 자택과 도지사관사 등을 덮쳤다.

압수수색영장을 들도 제주도지사 특보실(비서실장실)에 들어온 이시원 검사는 영장에 적힌 특보실에서 김○○ 특보 책상에 있던 서류 몇 장, 박○○비서실장의 PC하드를 압수했다. 막상 압수수색을 했지만 예상했던 성과는 없었고, 특보실(비서실장실)에서 머뭇거릴 즈음 전혀 예상치 않았던 김 지사 비서관이 서류 한 뭉치를 갖고 들어왔다. 김 지사에게 1심과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한 결정적 증거였다.

법정에서 김 지사 비서관은 “지사님 책상위에 서류가 쌓여 있어 정리하기 위해 비서실장실에 갖던 것”이라고 밝힌 반면, 검찰은 “선거관련 문건을 숨기려다 압수수색을 벌이던 특보실로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황 차장검사 말처럼 문건이 발이 달려 제 발로 들어온 셈이다.

압수문건을 분석한 검찰은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TV토론 사전준비 혐의에 무게를 뒀지만, 문건은 김태환 제주지사와 고위 공무원들이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움직일 수 없는’ 문건이었다.

이 때부터 황 차장 목소리가 커졌다. “공무원 줄 세우기 관행 바꾸겠다.” “유명인사가 소환될 경우 언론에 공개하겠다.” “충성서약 문건도 있다.” “최종수사결과 도민들도 이해할 것.” “단 한명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장수와 포로 목을 둘 다 칠지 고민 중이다.”

연일 도민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의 입이 열릴 때마다 제주도는 긴장에 휩싸였다.

아니나 다를까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문건은 1심과 2심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비록 압수수색과정의 절차적 문제점에 대해선 논란도 있었지만 재판부는 1968년 이후 일관되게  유지돼 온 ‘형상불변론’을 들어 김 지사에게 당선무효형인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또 현○○ 등 공무원 4명에게는 벌금 1백만원 이상을, 오○○ 등 2명에게는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문건은 1등 공신이었다.

그러나 대법원 상고심에선 문제가 달랐다.

문건은 분명 제 발로 걸어들어 왔지만 이를 압수하는 과정에서 검찰은 영장주의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던 게 문제가 됐다.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형사소송법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골자였다.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되지 않은 물건압수, 영장제시 절차 누락, 압수목록 작성 교부를 지연 등이 논란이 핵심이다. 당시 압수수색을 집행한, 현재 미국 듀크대에 연수중인 이시원 검사는 “영장을 제시하고 압수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비서관은 “영장제시 없이 위압적으로 압수했다.”고 맞서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만약 이시원 검사가 대법관이 공개변론에서 지적 했던 것처럼 미비한 부분에 대해 ‘사후 영장’을 받았더라면 김 지사의 운명은 달았다는 게 중론이다.

절차상 논란이 있는 압수수색이 결국은 제발로 걸어 들어온 증거를 내쫒아 버린 셈이 됐다. <제주의소리>

<이재홍 기자/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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