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의 전제조건(2)... '특별자치도' = '시범자치도'

홍콩과 같은 자치구?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0월 31일, 제2회 제주평화포럼 참석을 계기로 가진 '제주도민과의 대화'에서, "제주도민들이 의견을 모을 경우 제주도를 특별자치도로 지정하고 정부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와 같은 노대통령의 얘기가 있은 후, 제주도(제주특별자치도 추진기획단)를 비롯한 도내 일부 언론과 학계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에 대한 기본방향을 '홍콩특별구' 혹은 '미국의 주정부 수준'의 자치권으로 이해하거나 설정하고 있다.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자치권한을 갖는 '1국가 2체제'의 도입도 가능하다는 해석까지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올바른가? 이를 따져보기 위해 노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자치도 발언 전문>

제주도는 나름대로 손발 맞춰 독특하고 특수한 발전 전망을 잡을 수 있다... 제주는 다른 도시보다 특별한 자기 방향이 있기 때문에 그 방향을 잡아야 한다. (제주도) 내부적으로 토론을 통해 결정하고, 결정한 것은 정부에 과감하게 던져주면 수용하겠다. 속도를 내려면 내부의견 조율이 잘 돼야 한다. 특별히 유념해서 토론으로 자기 의견을 물러나서 양보할 줄 알고, 그렇게 추진하면 중앙정부도 밀어드린다. 돈도 밀어 드리고, 돈을 주는 방법을 하나 하나 용도를 지정해 주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 쓸 수 있도록 자율성의 방향으로 바꾼다. 특히 제주도에 대해서만 따로 말씀드린다. 제주도 스스로 자기 발전 방향을 스스로 추슬러 나가면 제 임기 안에 '제주도특별자치도'로 그렇게 한번 지원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것이 무조건 이익을 가져다 줄 지는 모르겠다. 도민의 의견을 따라서, 창의적인 방향 설정에 따라 중앙정부의 간섭을 배제할 수 있다. 된다 싶으면 집중지원이 가능하다. 이것은 제주 발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수준을 높이는 모델케이스가 될 수 있다. 중앙정부와 협의하자. 권한을 대강 넘겨주는 수준이 아니라 세금을 따로 부과할 수 있고 깎아줄 수도 있고, 그밖에 행정규제도 스스로 판단해 할 수 있도록 대폭적인 권한이양을 하면서 '자치도'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을 만큼의 복안을 갖고 있다. 여러분이 방향을 잡아서 제안하면 힘껏 도와드리겠다. 큰 건 하나 하자.(제주일보, 2003년 11월 3일)

"특별자치도는 한국지방자치의 모델케이스"

이상의 발언을 통해 대통령의 생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편에서도 강조했듯이, 제주도 내의 의견조율(도민합의)이 특별자치의 전제라는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특별자치와 관련한 내용을 얘기하면서 노대통령은, "내부적으로 토론을 통해서 결정하면", "속도를 내려면 내부의견 조율이 잘돼야", "특별히 유념해서 토론으로", "도민의 의견을 따라서" 등 무려 네 번씩이나 도민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했음은 물론, '특별히 유념'하라는 당부까지 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이미 언급한 내용이지만... 제주도는 눈과 귀 크게 열고 이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

둘째, 특별자치도는 "제주 발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수준을 높이는 모델케이스"라는 발언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이다.

즉 노대통령은 제주특별자치가 현재 제주도나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홍콩 등과 같은 시스템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지방자치의 모델케이스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1국 2체제론 등은 한참 번지수를 잘못 찾은 비현실적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대통령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시범자치지역'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지난 대선 이후(인수위 시절) 당선자 신분으로 제주에 온 노대통령이 언급했던 '분권시범도' 라는 개념과도 유사하다(또한 홍콩과 같은 1국 2체제론은 우리나라 체제에서는 초헌법적 발상으로 대통령이라 해도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이런 전제 하에 자율적인 과세권과 자율적인 행정규제도 용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한 것이다.

“권한을 대강 넘겨주는 수준이 아니라 세금도 따라 부과할 수 있고 깎아줄 수도 있고, 그밖에 행정규제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대폭적인 권한 이양을 하면서 ‘자치도’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만큼의 복안을 갖고 있다”는 발언이 바로 그것이다.

'희극'의 단초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제주도와 일부 언론은 바로 이 대목만을 중시하여 대통령이 제주도를 홍콩과 같은 자치구까지 고려하고 있다며 흥분하고 나선 것이다. 심지어 홍콩식이냐 미국식이냐가 현재 논의의 중심 주제라고까지 강변할 정도니...

(이 배경에는 제주도의 분리주의적 전통적 정서를 교묘히 이용하려는 전략이 깔려 있다고 본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국제자유도시와 연결시키려는 제주도의 습관적 자폐증이 문제라면 문제라 할 수 있다. 홍콩을 국제자유도시의 전형으로 보고 있는 제주도로서는 그럴 만도...)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이야기

대통령의 권한 이양 발언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며 특별한 것도 아니다. 이미 지방분권 로드맵에 제시돼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지방분권로드맵이 제시하고 있는 '지방분권 추진 기본방향과 주요과제'에서는, 중앙과 지방정부간 권한 재배분을 들면서 그 내용으로 중앙권한의 획기적 지방이양, 지방교육자치제도 개선, 지방자치경찰제도 도입, 특별지방행정기관 정비 등을 들고 있으며,

또한 획기적 재정분권의 추진을 위해 지방재정력 확충 및 불균형 완화, 지방세정제도 개선, 지방재정의 자율성 강화 등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노대통령의 발언이 이보다 조금 더 나가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 하는 표현이 있다고도 할 수 있으나 전체적 맥락에서는 이 기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본다.

한편, 지방분권로드맵에는 '특별지방자치제도 도입 검토'라는 항목이 있으며, '지방분권특별법' 제9조(특별지방행정기관의 정비 등) ⑤항에도 "국가는... 특정 지방자치단체에 대하여 이를 시범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는 내용이 이미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특별자치도 구상이 이미 국가적 차원에서 예정돼 있었다는 것이며, 특별하게 이번에 노대통령이 결정한 내용이거나, 제주 만을 위하여 나온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노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는 수준이 '시범자치지역'이라면, 우리가 이렇게 흥분할 일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반문할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그렇지 않다. 다음 편에서 구체적으로 살펴 볼 것이지만 매우 중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필자가 현 시점에서 특별자치도 논의를 매우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이를 계기로 제주사회가 민주화되고 올바른 자치 기반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나아가 진정한 도민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답이 나와있는 특별자치도 실현 전략

그렇다면 제주가 특별자치도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은 무엇인가?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비싼 돈 들여 용역을 발주하거나, 이번 기회에 이른바 선진외국 시찰 운운하며 잔머리 굴릴 필요도 없다. 답은 이미 나와 있기 때문이다. 제주가 시범자치지역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참여정부의 지방분권로드맵 중 전국적으로 시행이 유보된 정책을 앞장 서 시행하면 된다.

제주도는 이와 관련 도내외 전문가들을 위촉하여 특별자치도 연구자문단을 조직하려 하는 것 같지만, 참여정부의 지방분권로드맵 작성에 참여한 연구진이야말로 국내에서 가장 내노라하는 전문가들이며 이들이 작성한 로드맵에는 제주에 적용가능한 풍부한 정책이 녹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전에, 참여 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이라도 치밀하게 분석해라).

이 로드맵 중, 정부가 현재 시점에서 '검토' 중이라고 적시되어 있는 제 정책(주민소송제, 주민소환제 도입 등)과 2005년 이후 실시 예정으로 되어 있는 정책(교육자치, 자치경찰제, 복식부기제 전면 실시 등)을 먼저 시행하겠다고 나서면 되는 일이다.

이 외에 제주만의 특별한 경우라면 '지방행정구조 개편'일 터, 이 또한 민주성과 효율성을 적절히 검토하여 신중하게 선택하면 될 일이다.

마지막으로 노대통령이 잠깐 언급한 대로 '자치재정' 분야만 하더라도 지역에 이득이 될 것인지 심각히 고려해야 할 예민한 대목이긴 하지만, 이 또한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구와 경제규모가 협소한 모든 자치단체의 분권추진 과정에 적용되는 일반적 문제이다. 이런 시각에서 접근하여, 제주가 시범지역이니 만큼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적절히 요구하면 될 것이다.

전제는 대통령이 누차 강조한 대로, 주민합의가 우선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이 제주특별자치도 추진의 기본전략이다. 문제는 제주도가 현재 이러한 정책을 먼저 시행하겠다고 나설만한 자세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여부일 것이다.(계속)

<이지훈의 쓴소리 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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