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지만 꼿꼿한 '산비장이'
부드럽지만 꼿꼿한 '산비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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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의 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42)
가을 들판에 서면 억새가 무성합니다.
그 억새풀의 큰 키를 훌쩍 넘어서 간혹 보랏빛을로 피어나는 꽃이 있는데 모양새는 가시엉겅퀴를 닮았지만 이파리에도 몸에도 가시가 없는 꽃이 있습니다. 그런 꽃을 만나셨다면 '산비장이'라고 이름을 불러주시면 거의 틀림없을 것입니다.

▲ ⓒ김민수
가시엉겅퀴가 제주에는 많습니다.
가시엉겅퀴는 봄형과 가을형이 있는데 가을형은 때때로 오름의 분화구 양지바른 곳에서 한 겨울에도 만나는 꽃입니다. 가시엉겅퀴가 가을자락을 붙잡고 막 피어나기 시작할 때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피어났던 산비장이들은 흐드러지게 피어있거나 또 내년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산비장이와 가시엉겅퀴의 꽃은 흡사하지만 산비장이에게는 가시가 없습니다. 이파리도 많지 않고 둥글둥글하니 부드럽습니다.

가시도 자기를 지키기 위한 것이니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가시가 있는 꽃들을 좋아합니다. 그들 나름대로 들려주는 삶의 소리가 있기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부르러운 꽃들이 주는 삶의 소리도 좋습니다.
가시는 없지만 그 강인함으로 보면 가시엉겅퀴보다 더 꼿꼿하게 서서 가을 들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억새풀 사이에서 자란 것들은 키가 억새보다 더 큽니다. 그러나 억새풀밭이 아닌 곳에서 자란 것들은 키가 작습니다. 자기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땅에서 꽃을 피우기 위한 작용일 것입니다.

▲ ⓒ김민수
여기서 우리는 무슨 소리를 듣습니까?

꽃들은 자기의 색깔, 자기의 모습으로 늘 피고 집니다. 남을 닮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꽃동산을 만들어 갑니다. 가장 자기다운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자기 안에 있는 자기를 만들어가기 보다는 남을 닮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개성이 없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누구나 보아도 그 사람이 그 사람같습니다.

▲ ⓒ김민수
꽃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터전, 그 상황을 불평하지 않습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자기가 꽃을 피울만한 자신으로 만들어 가고, 꽃을 피울 수 있으면 그것으로 자족할 줄 압니다. 억새풀밭에서 핀 산비장이의 키는 족히 1m가 넘지만 들에서 자란 산비장이는 고작해야 30Cm를 넘지 않습니다. 이미 충분한데도 계속 쌓아둠으로 자기 뿐만 아니라 이웃들까지도 상처받게 하는 사람들의 삶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 11일 집중폭우로 제주 동부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절망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분주한 이들 사이에서 한가로이(?) 꽃여행을 한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 같아서 한동안 작은 텃밭에 붙어 살았습니다. 작은 텃밭도 같은 피해를 입어서 농민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고맙습니다.

다시 밭을 갈아엎고 파종을 하는 농민들에서 부터 남은 것들을 세워주는 농민들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힘들 터인데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그들이 바로 들꽃을 닮은 사람들이구나 감동하게 됩니다. 들꽃을 닮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고맙기만 합니다.

▲ ⓒ김민수

산비장이의 줄기는 얇지만 아주 단단합니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습니다. 꽃을 바쳐들고도 꼿꼿합니다. 어떤 자존심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 사람도 익으면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나 권력이나 금력 같은 것에 굽신거리는 것은 비굴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고개를 숙여야 할 곳과 꼿꼿하게 살아가야 할 곳을 잘 구분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산비장이.
어느 곳에 피어있어도 예쁘고 의미있고 아름답지만 오름의 정상에서 보는 산비장이가 역시 제 멋인 것 같습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을 맞이하여 육지로 나갔던 친지들이 추석을 보내러 올 것이고, 성묘를 갈 것입니다. 그 길에 풀섶에 한 번 눈을 주시는 것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풀섶에 눈을 주시면 우리 주변에 이렇게 많은 꽃들이 있었구나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요즘 제주의 들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꽃들은 오이풀, 뚝깔, 둥골나물, 이질풀, 야고, 산비장이, 나비나물, 섬잔대, 층층잔대, 개민들레, 억새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그들과 한번 눈맞춤을 하면 제주를 더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 ⓒ김민수

※ 김민수님은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을 즐겨 합니다. 자연산문집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 '을 방문하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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