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혁우동맹원등 추가 5명 유공자 신청(2보)

자칫 역사 속에 묻힐뻔한 사회주의자들의 항일 독립 투쟁이 국가보훈처의 혁우동맹원 유공자 인정으로 빛을 보고 있다.

제주해녀항쟁기념사업회에서는 이번 유공자 신청에 탈락한 신재홍 옹등 5명과 함께 내년에 추가로 신청할 5명의 명단을 본지에 공개했다.

우선 김옥련 옹, 부춘화 옹과 함께 해녀항쟁을 주도했던 ▲부덕량 옹, 혁우동맹원 ▲최재오 옹 ▲한문옥 옹 ▲김여찬 옹 ▲부승림 옹 등 이상 5명이다.

따라서 내년초 독립 유공자 신청 명단은 신재홍 옹등 5명과 해녀 주동자 부덕량 옹과 추가 신청할 5명을 합해 총 10명선이다.

이중에서 부덕량 옹은 국가보훈처에서도 독립 유공자 신청을 요구할만큼 항일 독립 투쟁 공적이 인정 받고 있어 내년도 독립유공자 선정이 확실시되고 있다.

부덕량 옹은 하도리 출생으로 해녀항쟁을 주도했으며 이후 '폭력행위'혐의로 일제의 재판소에서 기소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동안 부덕량 옹의 후손이 없어 자료를 구하기가 힘들었으나 국가보훈처에서는 이를 어느정도 참작하기로 구두약속했다.

최재오 옹은 종달리 태생으로 혁우동맹원이며 10개월의 형을 살았다. 한문옥·김여찬·부승림 옹은 하도리 태생이며 세분 모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혁우동맹원 4명은 모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사망했기 때문에 이번에 탈락했던 신재홍 옹등 5명보다 호적상의 문제가 없어 선정이 더 확실한 편이다.

김전근 해녀항쟁기념사업회 위원장은 "모두 다가 고향에서 색안경을 끼고 대했기 때문에 고생이 많았지만 최재오 옹은 눈봉사가돼 돌아가셨기 때문에 주위를 더 안타갑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동안 사회주의 활동했다는 이유로 항일 행정 인정이 미뤄졌었던 유공자들과 아직 인정 받지 못한 혁우동맹원들에 대해서도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실정이다.

해녀항쟁 항일운동 인정, 김옥련 옹등 4명(1보)

"구좌면과 성산면 잠녀 천여명이 해녀복 차림으로 세화리와 하도리 사이에 집결하였다.

[우리를 착취하는 일본 상인들을 몰아내라. 잠녀조합은 잠녀의 권익을 옹호하라.]

해녀들은 구호를 외치며 새로 부임한 도사를 예워쌓다."

1932년 1월 12일 발생한 제주해녀항일운동의 서막이다. 당시에는 해녀어업조합 조합장을 제주도사(島司)가 겸직하였다.

그러나 도사는 잠녀 편에서 있지 않고 오히려 일본인 상인들과 결탁해 잠녀들의 이권을 뺏앗고 이들의 생존권마저 위협했다.

그러던 와중 새 도사가 부임하는 날 해녀들은 그동안 받아왔던 착취와 울분을 시위로써 표현했다.

국가보훈처는 해녀항일운동을 정식 인정하여 이를 주도했던 김옥련 옹과, 부춘화 옹을 독립운동 유공자 건국포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이와함께 해녀항일운동 신재홍 옹이 주도한「혁우청년동맹」(후에 민중운동협의회) 소속 문원택옹과 한원택옹에게도 애족장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그러나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김전근)가 신청하였던, 신재홍 옹, 강관순 옹, 김성오 옹, 한향택 옹, 김순종 옹은 독립운동유공자 포상신청에서 탈락하여 아쉬움을 주고 있다.

이들은 모두 문도배 옹, 한원택 옹과 함께 혁우동맹을 통해 해녀항일 운동을 지원하였다.

이들이 탈락한 이유로는 호적상 사망신고가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다.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위원회는 2003년 2월 포상재신청 사유서를 제출하며 이들 모두가 "사회주의 노선을 한 방편으로 한 항일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고 밝혔다.

또한 "제주도에서 인정하는 3대 항일 운동에 제주해녀항일운동도 있다"며 항일운동 불명확성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위원회 김전근 위원장은 "문도배 옹, 한원택 옹과 마찬가지로 나머지 인물들에게도 당연히 유공자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전근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이번 유공자 인정에 많은 노력을 했다는데?
2001년부터 독립 유공자인정 인정을 위해 주민서명도하고 국회청원서도 제출하고 당시 신문 자료등을 찾아가며 희망을 갖고 노력해왔다. 그동안 2001년에 탈락하고 2002년에는 주민서명도 받았다. 이때 국회청원서를 체출했는데 아직까지도 회신이 않왔다. 그리고 서울도 올라가 자료도 수집하고 박찬식 선생의 조언을 들으며 준비해왔다.

▲지금까지 계속 신청이 반려된 이유는?
사회주의 모임에 가입했다는 이유와 제주해녀항일운동이 항일운동인지 불분명하다는 이유였다.

▲올해 포상 신청 때는 사유서를 작성하여 국가보훈처의 주장을 반박했다는데?
그렇다. 혁우동맹은 대한민국 국가 건립 이전 조직이었다. 건립 전 민족운동의 한 방편으로 찾았던 사회주의를 지금의 잣대로 재선 안된다. 또한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생존권을 담보한 항일 운동이다.

▲이번 신청으로서 독립운동유공자가 된 분들을 소개한다면?
우선 문도배 옹은 구좌면 세화리에서 태어났다. 신재홍 옹과 함께 혁우동맹에 참여하였고 해방후 인민위원회 제주도당부위원장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또 1946년에는 김시탁 옹과 함께 입법의원에 당선됐었다.
한원택 옹은 구좌읍 종달리 태생이며 혁우동맹 활동하며 농촌 대중과 해녀들에게 민족의식을 파급시킨 인물이다.

▲그동안 혁우동맹에 참여했던 분들은 물론 그 후손들도 피해를 많이 받았을텐데?
그렇다. 그 분들이야 생전 당시 옥고도 치르고 고문도 당했겠지만 그 후손들도 연좌제의 올가미가 씌워져 직업 선택에도 제한됐었을 것이다. 또한 주위에 따가운 오해와 경찰들의 감시를 받아야했다.

▲이번 선정과정에서 탈락된 분들은?
다른 분들 모두 문도배 옹과 한원택 옹과 마찬가지로 혁우동맹 활동을 하였다. 그중에서 신재홍 옹은 조선공산당 당원이며 실질적인 혁우동맹을 조직하고 이끌었으며 이중에서 나이도 가장 많다.

▲탈락된 분들의 사유는?
아직 국가보훈처에서 통지문이 오지 않았지만 다른 문제라기 보다는 호적상의 문제, 그러니까 사망신고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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