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역대급 비호감 선거 신중하게 결정해야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오늘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스무 번째 대통령이 결정된다. 축제가 되어야 할 선거가 진흙탕 싸움이 되고 말았다. 20대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였다. 그동안 각 진영에서 상대방 흠집 내기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바람에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느끼고 있다. 여론이 초박빙이다 보니 사전투표를 마친 유권자들도 전체 36.9퍼센트나 된다. 하지만 후보자들이 마음에 안 들어 투표를 포기하겠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우리 미래를 팽개쳐서는 안 된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그마저 불가능하다면 최악을 막기 위해서는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앞으로 5년간 나라를 책임질 통치자를 내 손으로 뽑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 새삼 35년 전 뜨거웠던 젊은 날들이 떠오른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것이 지금에야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군부독재 시절에는 어용조직을 통해 체육관에서 99퍼센트 지지로 대통령을 뽑은 적도 있었다.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는 참으로 많은 희생 속에 얻어진 것이다.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해 1987년 당시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의 가열찬 항쟁이 있었다. 그해 내 나이 스물여덟이었고, 그때야 처음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치렀다.

오늘 뽑히는 대통령이 무지하고 무능해서 우리 앞에 산적한 과제들에 대해 5년간 속수무책으로 수수방관한다면, 당장 국민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청년과 후손들에게 큰 죄를 짓는 일이다. 오늘 우리는 흠결이 많은 12명의 후보가 적힌 투표용지를 쥐고 있다. 우리에게 최악을 피하고 그 가운데 좀 더 나은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 어려운 책무가 주어져 있다. ⓒ제주의소리
오늘 뽑히는 대통령이 무지하고 무능해서 우리 앞에 산적한 과제들에 대해 5년간 속수무책으로 수수방관한다면, 당장 국민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청년과 후손들에게 큰 죄를 짓는 일이다. 오늘 우리는 흠결이 많은 12명의 후보가 적힌 투표용지를 쥐고 있다. 우리에게 최악을 피하고 그 가운데 좀 더 나은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 어려운 책무가 주어져 있다. ⓒ제주의소리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이 있다. 젊은 세대도 언젠가는 그 사회의 주축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 현역에서 물러나 먼발치서 역사의 흐름을 지켜보기도 한다. 우리는 해방 이후 미군정기, 제주4.3,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 정보화라는 수많은 격변기를 겪었다. 그 와중에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으니 전 세계가 놀랄 만도 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비정한 사회로 되면서 사회적 안전망과 공동체가 깨지고 자연생태계는 더 이상 회복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젊은 시절에 겪은 체험과 경험은 평생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지배하기 십상이다. 그러기에 세대 간에 정치적 신념이 다른 경우가 많다. 전쟁과 독재, 가난과 개발의 시대를 살았던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 사이에 정치적 견해가 다른 경우가 많다. 젊은 시절 제주4.3과 한국전쟁을 겪었던 세대는 그 이후 세대와 군부독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민주화를 위해 열정을 바쳤던 세대는 나머지 다른 세대들과 정치를 바라보는 입장이 다르다. 그리고 오늘날 극심한 양극화와 여러 가지 사회적 불평등을 자각하는 세대는 부모 세대와 인권과 공정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이번 대선에서 세대 간에 지지율이 뚜렷한 것은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시대가 다르면 풀어야 할 현안과 과제도 달라진다. 일제강점과 미군정기에는 자주독립국가 건설이, 전쟁 시기에는 목숨을 부지하고 배고픔을 면하는 것이, 독재정권 시기에는 민주정부 수립이, 산업화 시기에는 경제개발과 성장이 화두였다. 남북간 군사적 대립이 심할 땐 평화체제를 이루고,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한 시기에는 빈부차를 줄여 보다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야 하며, 경제성장과 대규모 개발로 자연환경이 파괴되었다면 생태보전에 힘써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결여된 부분을 채우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 가야 한다.

2022년 현재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는 수없이 많다. 우선 지난 2년 동안 온 국민이 겪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당하는 고통을 치유하고, 집 없는 서민과 청년들의 주거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인구감소와 초고령사회에 대한 안전망 구축, 4차산업혁명으로 줄어드는 일자리 대책, 심각한 양극화와 불평등 완화, 여전히 기울어진 성차별과 소수자 인권 개선, 복지와 의료 사각지대에 대한 안전망 구축,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육성, 교육환경 변화에 제도 개선 등도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뿐만 아니라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대방 흠집내기로 정권을 잡는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 승자독식의 낡은 정치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통합정치로 나아가기 위해선 앞으로 대통령 선거에서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남북갈등 종식을 위해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하고, 미중갈등 속에서 국익을 위한 현명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현재 유력한 두 후보는 이러한 과제들에 대해 정반대의 길을 갈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오늘날 1년 변화가 과거 10년 변화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감안할 때, 앞으로 5년을 통치할 지도자를 뽑는 것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플라톤은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그 나라의 통치자가 되든가 그 나라의 통치자가 지혜롭고 현명하지 못하다면 그 나라의 불행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통치자의 첫째 덕목은 유능함이요, 최고 악덕은 무능함이다. 오늘 뽑히는 대통령이 무지하고 무능해서 우리 앞에 산적한 과제들에 대해 5년간 속수무책으로 수수방관한다면, 당장 국민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청년과 후손들에게 큰 죄를 짓는 일이다. 오늘 우리는 흠결이 많은 12명의 후보가 적힌 투표용지를 쥐고 있다. 우리에게 최악을 피하고 그 가운데 좀 더 나은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 어려운 책무가 주어져 있다. / 윤용택 논설위원·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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