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보훈당국 지장물 철거 급급…역사 바로 세워야

제주시 한울누리공원 인근에 있는 제주4.3학살 주범 박진경 추도비에 설치된 '역사의 감옥'. 시민사회가 단죄의 의미로 이 조형물을 세웠으나 이 역시 철거될지 모를 상황에 놓였다. 
제주시 한울누리공원 인근에 있는 제주4.3학살 주범 박진경 추도비에 설치된 '역사의 감옥'. 시민사회가 단죄의 의미로 이 조형물을 세웠으나 이 역시 철거될지 모를 상황에 놓였다. 

조선시대 탐관오리들에게 가해진 형벌 증살(蒸殺)은 관원의 독직을 경계하기 위한 용도로는 그만이었다. 죽음보다 명예를 중시하는 선비들 한테 증살은 치명적인 형벌이었다. 

팽형(烹刑)이라고도 하는 증살은 일종의 사회적인 사망 선고였다. 어찌 사람을 삶거나 쪄서 죽이겠는가. 실은 그런 시늉만 냈다. 따라서 증살은 명예형이자 평판(評判)형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그랬을까 하는 논란이 있지만, 광해군의 이복동생 영창대군이 유배지에서 증살되었다는 기록은 엄연히 존재한다. 

아무리 증살이 명예형이라고 하나, 가혹하기로는 어느 형벌 못지 않았다. 

솥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죄인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살아도 살아있는게 아니었다. 죽을 때까지 집밖을 나서지 못했고, 가족 외에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정작 가족들도 그를 보고도 못본 척 해야 했다. 공민권 박탈은 물론이고 호적에 ‘죽은 사람’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형을 언도받고는 집에 와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까지 있었을까.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나 공수처의 탄생 배경을 더듬어보자. 옛날 식으로 하면 오늘날에도 공개 팽형을 당해도 쌀 사람들이 적지 않겠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4.3학살의 주범 박진경 대령의 추도비를 철창에 가뒀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문득 추상같던 과거의 형벌이 떠올랐다. 이미 74년 전에 세상을 떠난 고인의 비석에 쇠창살을 치는게 뭔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진경이 명예형이라도 살았는가? 아니다. 박진경은 죽어서도 70년 가까이 4.3을 능욕했다. 제주시 충혼묘지 앞에서. 

“공비 소탕에 불철주야 수도위민(守道爲民)의 충정으로 선두에서 지휘하다가 불행하게도 장렬하게 산화하시다”

왜곡도 이런 왜곡이 없다.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명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던 박진경은 부하들에게 암살당했으나 애초 1952년 11월 세워진 추도비는 철저히 진실을 가리고 있다.

일찍이 <소리시선>(2020년 11월26일자 “박진경 추모비, 철거가 답이다”)은 박진경의 추도비 내용이 다음과 같이 고쳐져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공비 소탕이라는 거짓 명분을 앞세워 수많은 무고한 양민을 탄압하다가 부하들에 의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다”

국립호국원 조성사업이 한창 진행될 때였다. 호국원 부지 일대에 위치해 있어서 철거 여부를 공론에 부칠 더 없이 좋은 기회였으나 결과적으로 보훈당국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외면했다. 당시 철거 주장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중산간 마을을 누비고 다니면서 불과 한달 사이에 수천명의 ‘포로’를 양산해낸 박진경 연대장의 작전은 주민들을 더욱 산으로 도망치게 했고, 자신은 암살당함으로써 사태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13년 10월15일 정부(국무총리 산하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확정한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는 박진경을 요즘 표현으로 트러블 메이커로 묘사했다. 

호국원 조성에 따른 ‘지장물’로 지정한 것 까지는 봐줄만 했다. 보훈당국은 박진경의 추도비를 어승생한울누리공원 인근(산록북로 변)으로 옮기면서 공비 완멸 기념비 등 총 4기의 비석을 함께 이설했다. ‘공비’로 몰려 힘없이 스러져간 무고한 양민들은 안중에도 없단 말인가. 역사바로세우기에 둔감한 건지, 부러 외면하는 건지 보훈당국의 처사는 혀를 차게 만들었다. 

이것은 역사의 감옥이다!
역사의 죄인을 추모하는 건 그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박진경이 누구인가. 왜왕에게 충성을 맹서한 일본군 소위 출신에 미군정의 지시로 제주4.3학살을 집행하다 부하들에게 암살당한 이가 아닌가. 이런 인간의 추모비가 70년 넘도록 충혼묘지 언저리서 충혈된 눈으로 제주섬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에 우리는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이 자의 추모비를 철창에 가둔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 자에 대한 단죄이자 불의로 굴절된 역사의 청산이다.

박진경의 추도비를 ‘역사의 감옥’에 가둔 건 시민사회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역사에 죄를 지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 전에도 시민사회는 차라리 박진경 추도비를 4.3평화공원 구석에라도 옮겨 단죄비를 세우든지 해야 역사를 제대로 세울 수 있다고 제안했다.  

청을 거절한 보훈당국이 이번에는 매우 기민하게 움직였다. 추도비를 에두른 쇠창살을 ‘불법 지장물’로 보고 원상복구 명령을 내릴 예정이라고 한다. 유독 지장물 철거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내 비록 미군정 인간의 법정에서는 사형을 받고 사라지나 
공평한 하늘나라 법정에 먼저 가서 기다릴 것이다”

박진경을 암살한 대한민국 제1호 사형수 문상길 중위의 최후진술은 역사적 사실들이 후세에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듯 하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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