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경과 조병옥 기념비에 대한 시대적 단죄 / 박진우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공동회장 

지난 3월 10일 제주에서는 4‧3학살의 주범중 한 명인 박진경 대령의 추도비에 “역사의 감옥에 가두다”라는 이름의 조형물이 설치됐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에 참여하는 17개 단체가 역사적 단죄의 의미를 담아 창살처럼 만든 감옥에 가둔 것이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제주도 부임(48.05.06) 직후부터 제주도민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감행했으며 제주도민 30만을 모두 희생시켜도 무방하다고 발언하는 등 제주4·3 학살의 주범으로 평가되고 있다. 결국 부임 한 달 만인 1948년 6월 18일, 대령 진급 축하연을 마치고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부하들에게 암살당했다”며 박진경 연대장의 제주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제주민에 대한 야만적인 학살에 대해 평가했다.

제주에서는 여러 해 전부터 4‧3단체를 비롯해 도의회 등에서 박진경 추도비 철거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으나 행정 기관들은 책임을 전가해 왔다. 

제주에 있는 박진경 추도비는 공권력의 폭력성에 모든 걸 잃고 공포에 질려 있던 1952년 11월 제주도내 기관장들이 박진경 연대장이 토벌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며 관덕정 경찰국 청사 내에 세웠다.

이후 제주경찰청이 이전하면서 제주시 노형동 충혼묘지 자리로 이설됐다. 제주시가 관리하던 충혼묘지는 위상을 높이며 관리권을 국가 보훈처로 이전돼 제주국립호국원으로 개원됐다. 

관리권 이관에 어려움을 겪던 박진경 추도비(1952년 추도비가 마모돼 1985년 다시 제작)가 제주시 관할 한울공원 인근 도로변으로 이설되자 4‧3관련 시민사회단체가 제주민들을 학살한 권력자들이 설치한 박진경의 추도비를 70년 만에 도민의 이름으로 역사의 감옥에 가둔 것이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4·3 학살과정에서 박진경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명백하다. 추모하거나 추도할 인물이 아니라 4·3 학살의 주도자일 뿐이다. 제주도민 3만의 희생을 불러온 장본인 중 하나로 추모해야할 역사적 인물이 아닌 단죄해야할 것 인물에 불과하다”며 역사의 감옥에 가뒀다.

지난 10일 제주4.3단체들이 1952년 제작된 박진경 추도비 앞에 쇠창살을 설치했다. "역사의 감옥에 가두다"라는 이름의 조형물이다. ⓒ박진우
지난 10일 제주4.3단체들이 1952년 제작된 박진경 추도비 앞에 쇠창살을 설치했다. "역사의 감옥에 가두다"라는 이름의 조형물이다. ⓒ박진우

박진경 대령의 현충일 추념식 대표 위패도 철거된 바 있다. 창원시와 경상남도는 창원시 의창구에 있는 창원 충혼탑 앞에서 현충일 추념식을 엄숙히 진행하는데 1985년부터 추념 행사시 마다 ‘경남도 대표 박진경 육군대령 신위’로 새겨 사용해오다 시민사회와 오마이뉴스(윤성효, 2017.06.06.), 중앙일보(위성욱, 2027.06.07.) 등의 문제제기로 2018년부터 ‘호국영령 신위님’으로 교체해 현충일 추념식을 진행하고 있다.

남해군에 있는 박진경 대령의 기념비는 지금도 논란이다. 2021년 4월 13일 경상남도의회 제384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김영진 의원은 남해군민공원에 있는 박진경 동상의 철거를 제안했다. 김 의원은 “잠을 자다 부하에게 암살된 박진경을 작전중에 적군 흉탄에 장렬히 전사했다고 거짓 기록을 새겼다. 이렇게 사실 관계가 맞지도 않고, 추모해선 안될 인물”이기에 “박진경 동상을 철거 하든지 존치한다면 명확한 사실을 명시한 단죄비를 세울 것을 제안”했다. 남해군의 시민단체들도 2000년과 2005년에 박진경 동상 철거 운동을 했으나 철거까지는 이루지 못했다.

남해군민공원의 박진경 대령 동상. ⓒ박진우
남해군민공원의 박진경 대령 동상. ⓒ박진우

4‧3학살의 주범인 조병옥 동상에 대한 설치 반대와 철거 운동도 일었다. 2017년 12월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강북구청이 추진하던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16위 흉상 건립사업' 대상에서 조병옥을 제외해 줄 것을 요청하고 항의 방문 등 쟁점이 일자 강북구청은 ‘조병옥’ 흉상을 건립 계획에서 제외했다.

천안시도 2021년 10월 8일 천안시 아우내 독립만세 기념공원 내에 ‘그날의 함성’ 조형물 중 조병옥 동상을 철거했다.

천안 아우내 독립만세기념공원에 조성된 조형물 ‘그날의 함성’(위쪽). 횃불을 든 유관순 열사 동상을 비롯해 10명의 인물을 표현했다. 기념공원 내에는 조병옥 동상도 있었으나 천안시는 2021년 10월 8일 이를 철거했다. 철거 전 사진(아래쪽)에서는 양복과 구두, 나비넥타이를 맨 조병옥 동상의 모습이 보인다. ⓒ박진우
천안 아우내 독립만세기념공원에 조성된 조형물 ‘그날의 함성’(위쪽). 횃불을 든 유관순 열사 동상을 비롯해 10명의 인물을 표현했다. 기념공원 내에는 조병옥 동상도 있었으나 천안시는 2021년 10월 8일 이를 철거했다. 철거 전 사진(아래쪽)에서는 양복과 구두, 나비넥타이를 맨 조병옥 동상의 모습이 보인다. ⓒ박진우

천안시는 2009년에 3.1만세 투쟁 90주년을 맞아 병천면 병천리 일본 헌병 주재소 부지와 만세 투쟁시 일본 헌병의 총에 맞아 순국한 장소를 보존하고 역사 체험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아우내 독립만세기념공원을 조성했고, 횃불을 든 유관순 열사 동상을 비롯해 10명의 인물을 표현한 ‘그날의 함성’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조병옥 동상을 같이 설치했던 것이다.

조병옥 동상 철거 운동을 2년 동안 추진해 온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최기섭 지회장)는 “국가 권력의 폭력으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 빨갱이라는 이념의 잣대를 씌워 제주도를 피로 억압한 경무부장 조병옥을 천안을 빛낸 인물로 홍보 책자 등에 홍보하고 독립만세 기념공원에 버젓이 상을 건립한 천안시는 70만 제주도민에게 사과하고 제대로 된 동상을 설치해야 한다”며 역사 정립 운동을 펼치고 있다.

천안시 김월영 시의원은 “지난해 조병옥 동상 철거 관련해서 수많은 애국선열을 모시는 호국충절의 장소에 왜곡을 넘어 윤리적으로도 심각한 문제였던 조병옥 동상 철거함으로써 과거사의 제대로 된 청산의 한계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며 앞으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데에 함께 하겠다”며 역사 정의를 위한 의지를 밝혔다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백경진 상임이사는 “조병옥 경무부장과 박진경 대령은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며 제주도민에 대한 야만적인 소탕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진두 지휘한 학살 주범으로 역사 정의를 위해서 조병옥, 박진경 등의 동상은 철거하거나 그 옆에 단죄비를 세워 역사의 교훈을 삼아 정의와 인권이 넘치는 나라”로 가야 한다며 정의로운 과거사 청산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박진우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공동회장. ⓒ제주의소리
박진우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공동회장. ⓒ제주의소리

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잊혀진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제주4‧3항쟁 제74주년을 앞두고 야만의 역사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다시 생각해 본다. 제주4‧3항쟁 제74주년 추념식은 4월 3일 제주는 정부 주관으로, 서대문역사관 어울쉼터는 11시에 시민단체 주관으로 진행된다. / 박진우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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