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의 칼럼과 에세이사이] (5) 고충석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前 총장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면서 이번 대선의 의미와 향후 과제를 생각해 본다. 
우선 대선은 하루 확진자가 연일 30만여 명이 쏟아져 나오는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 속에 투표율 77.1%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선거가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국민을 너도 나도 투표장으로 향하게 한 동인은 무엇인가. 많은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가장 컸다. 그것이 ‘정권교체’ 결과로 나타났다. 국민은 투표를 통해 공정과 상식, 비정상의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정치적 진영에 따라 적용 잣대가 달라지는 내로남불을 심판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정권의 교체는 당연한 결과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으뜸 원리다.

윤 당선인과 차기 정부 앞에 놓인 난제도 만만치 않다. 정치적 성향별·세대별·성별 분열, 코로나19 위기,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지속적 물가 상승) 가능성, 우크라이나발(發) 안보 지형 변화, 북한 핵·미사일 등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크기와 깊이에 있어 대통령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문제가 어렵고 복잡하고 심각하다. 그야말로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있는 다원적인 이익정치가 노골화되고 있다. 이 추세는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성장통의 일환으로 봐야 할 것이다. 

만장일치, 초록은 동색을 경계

윤 당선인과 차기 정부에 몇 가지 고언을 드리고자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선거캠프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로만은 안 된다. 편향의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위험을 잘 극복한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다. 그는 참모들과의 회의를 자유로운 토론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내각에 기용했다. 대통령은 그에게 대통령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자유롭게 말할 것을 주문했다. 그 결과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고 특히 엄중한 쿠바사태도 이런 토론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잘 해결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 적은 만장일치다. 만장일치 사회에서는 구호와 구령만이 판친다. 그런 사회에서는 창의와 합리적 문제해결이란 있을 수 없다. 생각이나 살아온 이력이 초록이 동색인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는 조직이나 기관은 제대로 의사 결정을 산출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집단적 사고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 윤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가 주변 사람들만 발탁했다가 국민에게 불신을 산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시장과 인간에 대한 이해, 전문성이 모자란 인물들을 중용해 반시장적 부동산 정책과 징벌적 세금에 집착하다가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경영하는 일이다. 인간 본성에 반하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복잡한 존재다. 더욱이 이런 인간집단들이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장소가 시장이다. 혹독한 동토의 나라 북한에서도 장마당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만큼 시장의 힘은 세다. 인간의 욕망이나 시장의 원리를 억압하거나 배제할 것이 아니라, 선순환 방향으로 잘 흐르도록 정책에 담아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그래야 정책은 순응성과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다. 공산주의 실패는 인간의 욕구와 시장을 철저히 무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 정부 참모들이 주로 원용한 사회공학적인 접근은 이런 흐름과는 전제부터가 다르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정책설계가 대체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문 정부는 탈원전 정책과 소득주도 성장 정책으로 산업계의 원성을 사고 자영업의 생태계를 무너뜨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공공정책 결정이 의도한 대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경우가 왕왕 있다.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부동산 정책,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정책을 결정할 때는 역기능에 대한 분석도 매우 중요하다. 현실은 교과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교과서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참고서일 뿐이다. 교과서는 대체로 당위의 영역이고 정책은 냉정한 현실에 기반해서 결정해야 하는 영역이다. 교과서와 현실을 분간하는 능력이 문 정부 참모들에게는 부족했다.

탈원전 좋다. 그러나 이를 대체할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 대안으로 거론 되는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국민이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최근 탈원전을 채택한 독일 국민이 크게 오른 전기료 때문에 얼마나 홍역을 치르고 있는가. 우리나라가 탈원전으로 갔을 때 전기료 등 당장 지급해야 할 비용을 국민이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정책은 모범답안보다 정답이 중요하다. 문 정부 참모들은 모범답안을 정답으로 착각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윤 당선인은 정치적 열정으로 뭉친 진영의 논리보다 미래에 대한 식견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써야 한다.

대통령 집무실 어디냐에 집착 말라

윤석열 차기 정부도 출발부터 우려되는 일이 있다. 윤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나와 집무실을 옮긴다고 하는데, 집무실을 옮기는 것이 무슨 그리 큰 의미가 있을까? 대통령의 임기는 영원한 것이 아니고 5년의 임기를 부여받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집무실이 어디이든지 간에 야당 지도부를 자주 만나고 정파 간의 공약수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사인(私人)들을 백악관에 초청해서 노변정담을 나누며 공식적인 언로(言路)를 보완시켰다. 문제는 집무실이 어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국민의 여론을 제대로 청취하려는 대통령의 자세와 태도다. 

너무 형식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교조적인 주자 성리학이 남긴 나쁜 유제다.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 때문에 집무실을 옮겨야 한다면 청와대를 축소하고 어린이도서관 등 시민 친화적인 시설들을 청와대 내에 새롭게 유치하면 될 일이다. 미국의 백악관 인원도 430명이라는데 문 정부 때 규모가 더 커져서 우리나라 청와대 인원이 500명에 이르고 있다. 이런 매머드화된 청와대부터 축소해, 작지만 효율적인 조직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청와대는 그간 영욕의 세월을 견디면서 이 나라의 역사가 되었고 전통이 되었다.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해서 국민의 여론을 더 들어보고 집무실 이전 문제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사구시적인 자세로 이 문제에 접근해서 괜한 오해를 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국회를 설득하지 않고서, 또 국민을 이해시키지 않고서는 나라를 이끌 수 없다. 빌 클린턴은 주지사나 대통령으로 있을 때 법안이나 예산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회기 중에는 반나절을 의회에 살았다고 한다. 서독 수상이었던 빌리 브란트도 서민과의 접촉을 늘리기 위해서 가끔 팝(선술집)에 들려 맥주를 마시고 사람들과 포커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퇴계 선생의 말대로 지도자는 성(誠心)을 다해야 한다. 지지층에만 기대어 국정을 자기들만의 리그로 운영해서는 안 된다. 당선인은 많은 공약을 제시했지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 집권 5년은 생각보다 짧은 기간이다. 또 선거 때 했던 공약이 시대착오적이고 적실성이 없으면 과감하게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국민에게 그 이유를 잘 설명하면 된다. 자신의 실수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자세는 지도자의 큰 덕목이다. 하나라도 제대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명분에 지나치게 집착해서도 안 된다.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해결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경제 살리기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제가 흔들리면 정치가 불안하고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꿈을 가질 수가 없다. 역대 대선 후보들의 공약대로라면 청년실업 문제는 벌써 해결됐어야 했다. 청년실업 문제해결에 획기적인 진전이 이뤄졌으면 한다. 이와 관련하여 지적하고 싶은 것은 대대적인 공공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밀어닥치고 있는 기후위기와 제4차 산업 혁명에 대응하기 위해서 정부를 개혁하고 산업정책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 
노동시장과 교육시스템도 개혁해야 한다. 시장과 정부의 기능을 전면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LH 같은 기관이 오늘날까지 존속해야 할 이유는 많이 훼손되었다. 경제의 진흥은 이러한 공공 개혁 없이는 불가능하다. 독일의 히든 챔피언 기업들이 어떻게 생겨 나왔는가를 볼 필요성이 있다.

남북정상회담도 무슨 숙원사업처럼 매달릴 필요도 없다. 이제 우리는 남북정상회담 집착증에서 확실히 졸업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해야겠지만 정권의 업적 때문에 회담에 목멜 이유는 없다. 북한으로부터 비핵화를 받아 내려면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힘이 더 강고해져야 한다. 나라는 존재하는 그것만으로는 안되고 그 나라가 힘이 있어야 한다. 구한말의 조선이나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가 이를 대변해주고 있지 않은가. 나라의 운명을 강대국의 자비심에 의존하려는 생각처럼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 

마지막으로 윤 당선인은 세상을 정상화한다는 명목으로 과거를 모두 뒤집으려만 하지 말고, 패배한 정당과 후보까지 아우르는 통합의 큰 정치를 해야 한다. 과거를 모두 뒤집으려는 것은 일종의 혁명적인 방식이다. 혁명으로 역사는 진전되지 않는다. 시냇물이 모여서 강을 이루고 강물이 모여서 바다를 만들듯 역사는 조금씩 진화하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뒤에는 과거보다 더 혹독한 전제정(專制政)이 들어섰다. 그래서 20세기 세계 최고의 지성인 레이몽 아롱(Raymond Aron·1905~1983년)은 ‘혁명은 노스털져의 처절한 파산’이라고 했다. 그 의미가 주는 함의를 오늘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의 팽팽한 접전 양상은 국민 통합과 협치를 하라는 국민의 강렬한 요구다. 정적을 끌어안은 링컨의 리더십이나 김대중의 DJP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5년 후 청와대를 떠나는 대통령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대통령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새로운 시대를 열 것으로 믿는다.

고충석은? 

現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7대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초대 총장, 제주발전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조언을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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