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일흔 다섯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제주 서귀포시 산방산과 유채꽃. ⓒ제주의소리

서광 녹차 밭에서 한숨 지나면, 불매(爐) 덕수 마을, 소나무 동산을 내려가면 사계, 사계 큰물 위에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마치 ‘노란 리본’이 밭담 가득 유채에 묶여 있는 것 같다. 아침 일찍 걸어서 한 시간 반이면 산방굴사에 가서 부처님 약수를 떠 왔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자주 못 내려가 죄를 짓고 산다. ‘노란 리본’ 전설을 보면 너무 짠하다.

‘노란리본’ 전설을 요약하면, “회상, 그리움, 용서(容恕), 무사귀환의 의미를 담고 있다. 노란리본은 몸에 착용하기도 하지만 주로 나무에 매달아놓고 전쟁에 나간 군인이 무사히 조국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데서 기원했다. ‘노란리본’이 무사귀환(無事歸還)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19세기 미국 남북전쟁 때 한 여성이 미군인 남편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노란리본을 착용하면서부터다. 미국 여성들은 노란리본을 나무에 달아서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이 안전하고 조속하게 무사귀환하길 바랐다.

또 여러가지 영화나 일화에서도 같은 의미로 많이 등장하는데, 뉴욕 형무소에서 4년을 복역한 ‘빙고’는 아내에게 두 통의 편지를 보냈다. 첫 번째 편지는 자신을 잊어달라 적었고, 가석방이 결정되자 두 번째 편지를 썼다.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마을 어귀 참나무에 볼 수 있게끔 노란 손수건을 달아달라고 적었다. 만약 손수건이 보이지 않을 경우 버스를 타고 마을을 지나치겠다는 내용과 함께. 그리고 석방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마을 어귀에 도착했을 때 버스 안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마을 어귀에 있는 참나무에는 노란 손수건의 물결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 부인은 편지를 받고 노란 손수건을 달았는데, 나뭇잎에 가려져 남편이 못보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자 며칠 내내 노란 손수건을 사서 남편이 볼 수 있게끔 노란 손수건을 여러 개 달았다. 이를 의아하게 본 아이들이 부인에게 왜 노란 손수건을 다는지 물어보았는데, “예전에 죄를 짓고 벌을 받은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데 참나무에 노란 리본이 달려있으면 용서해주는 줄로 알고 집에 들어오지만, 달려있지 않을 경우에는 버스로 지나가겠대.”라며 얘기를 했다. 아이들은 부인이 남편을 용서했다는 것을 알고는 노란 손수건을 집에서 하나씩 들고 나와 매달기 시작했고, 집에 돌아가 가족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마을 사람들까지 줄을 서서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매달아 참나무가 노란 손수건의 물결로 뒤덮인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세월호 참사 당시 무사귀환의 의미로 노란리본을 달았다. 한편, ‘빨간 리본’은 젊음, 정열, 희망, 나무 마디의 새싹, 붉은 움(Sprout)을 상징한다. 비오는 날 단풍나무 빨간 새싹에 맺은 하얀 물방울은 너무 영롱(玲瓏) 하다.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의 단풍나무. 사진=정읍시청.

빨간 리본: 나무 동티?

지난 2월 중순부터 갑자기 가슴이 죄어오며, 가끔씩 ‘을큰’하게 흉통(胸痛)을 느껴, 동네병원과 심장내과에 갔다. 병명은 심근경색은 아니고, 협심증이나 식도염이라고 했다. 하긴 지난 가을부터 새벽 3시 반, -5.6℃의 추위에도 건지산 정상 등 빈 공간에 단풍나무 약 1~2m 짜리 150 여 그루에 ‘빨간 리본’을 나무에 달아 심으면서 무리한 것도 있다. 나무를 심은 그 무렵은 제주의소리 칼럼에 ‘긴급동의 : 한라산 오름에 천 만 그루 나무를 심자’(2021년 10월 21일자)를 쓰면서다. 당시 외국 논문 마무리도 심장에 스트레스를 준 것 같다. 건지산 왕릉(王陵) 이한(李翰) 이씨조선 시조(始祖)께는 신고하고 나무를 심었지만, 토신(土神)에는 신고(祭)를 못 올렸다. 나의 답답한 흉통 이야기를 들은 나무 전공(林學) 동창 이 박사가 하는 말, "이 교수, ‘나무 동티(動土; 땅,  돌, 나무 따위를 잘못 건드려 지신(地神)을 화나게 하여 재앙을 받는 일)’ 났어, 고목이나 큰 나무를 옮겨 심을 때는, 막거리 한 잔을 땅 신(土神)에 올리는 걸세.” 그 말을 들으니 몇 가지 이에 관련된 기억이 되살아났다.

1970년 남양 MBC(사장 박태훈)에 근무할 때, 매월 초하루 방송국 송신기에 고사(告祀)를 올렸던 게 생각났다. 50년 전 이야기지만, 엔지니어들이 고사를 정성껏 지내면 방송사고가 덜 났다. 당시 서사라 삼도1동 집을 지을 때, 부모님이 오셔서 간단한 제물을 차려 토신제를 지냈다. 묘소 쓸 때나 집을 지을 때, 땅 신께 올리는 토신제. 음력 정월 초순경 신구간, 음력 2월 1일에 영등제 등, 고향에서는 중(重)하게 여기는 토속신앙이다. 어제 오늘 비 날씨에, 전주 건지산에 심어 놓은 단풍나무 마디에 뾰족뾰족한 싹이 마치 ‘빨간 리본’처럼 돋아나고, 전국 제일의 정읍 내장산 단풍나무에도 돋아난 ‘빨간 싹 리본’은 순록(馴鹿) 삼각 뿔 같이 뻗은 나뭇가지의 기(氣)를 사방(四方)에 뿜어내고 있다. 오늘은 가슴 조임도 ‘헉삭’하다. 용서(容恕)의 은혜(恩惠) 같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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