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69) 한진자본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

지난 11일 제주칼호텔 노동자들과 제주칼도민연대는 칼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진그룹의 일방적 희망퇴직과 정리해고 강행을 규탄하고 나섰다. 
지난 11일 제주칼호텔 노동자들과 제주칼도민연대는 칼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진그룹의 일방적 희망퇴직과 정리해고 강행을 규탄하고 나섰다. 

“... 죄송합니다, 베이커리는 4월 말까지 사용 가능하시고요 ... ”

지난 2월 제주칼호텔에서 영업종료 계획을 발표한 후, 제주칼호텔 1층 베이커리 앞에 마련된 ‘고용보장 없는 제주칼호텔 매각 중단’을 위한 농성장에 있던 중이었다. 농성장에 있노라면 칼호텔 이용과 관련한 고객 응대 전화 목소리를 종종 들을 수 있었다. 3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베이커리로 고객의 문의전화가 오면 담당 노동자는 4월 말까지 영업을 하니 사용해야 할 상품권 등이 있으면 그 전까지 사용할 것을 안내했다. 영업종료를 알지 못한 고객의 항의가 있을 경우 ‘죄송하다며’사과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베이커리 영업종료 시한으로 발표한 4월 말이 아직 되지도 않았는데 현재 베이커리는 사실상 영업이 종료된 상태다. 진열대를 꽉 채우던 식빵과 롤케익도 보이지 않고 소량의 음료만 한켠을 채우고 있다. 카운터를 지키던 노동자도, 빵을 굽던 노동자도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3월초, 제주 칼호텔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알려진대로 제주칼호텔과 서귀포칼호텔 등을 운영하고 있는 칼호텔네트워크는 작년 9월, 제주칼호텔에 대한 매각 계획을 발표했다. 문제는 매각의 주체가 호텔업을 운영하는 사업체가 아닌 부동산 사모펀드라는 점이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스타로드 자산운용’이라는 회사는 제주칼호텔을 매수하여 건물을 허물고 주상복합빌딩을 세울 계획이라고 했다. 전형적인 부동산 투기의 방식이다. 제주칼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간접고용노동자를 포함한 300여명의 대량해고가 눈에 보이듯 뻔했다. 제주의 랜드마크였고, 제주관광의 상징이었다는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주칼호텔을 일터로 살아온 노동자의 삶이었다. 더군다나 현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시대다. 기업들은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환경경영, 윤리경영, 사회공헌 및 지역사회 전체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의사 결정 을 지향한다. 한진자본의 규모에 걸맞는 사회적인 책임이 요구되었다. 한진칼의 제주칼호텔 매각은 도민사회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칼호텔매각 중단을 위한 도민연대가 구성되었다. 제주도 도의회는 매각반대 결의문을 채택하였고, 지역구 국회의원 전원이 매각중단을 촉구하는 공동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도민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진칼은 본계약 체결을 위해 제주칼호텔 노동자의 고용안정에 대한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에 나섰다. 

지난 3월 2일부터 8일까지 한진칼은 일방적인 희망퇴직을 강행했다. 노동자들은 인위적인 인력조정이 아닌 상생안을 원했다. 하지만, 한진칼의 희망퇴직 과정에서 노동자의 의견은 무시되었다. ‘희망퇴직 다음은 정리해고다, 매각이 안되면 서귀포 칼호텔도 매각할 거다, 기간 내 신청하지 않으면 위로금 지급은 없다.’ 결국 칼바람처럼 진행된 한진칼의 희망퇴직으로 115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희망퇴직의 과정에서 한진자본은 노동자의 존엄과 인격을 돈으로 갈라치는 잔인함을 보였다. 겉으로는 희망퇴직이었지만 떠나는 사람이나 남은 사람이나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 수치에는 간접고용노동자가 빠져있다. 같은 일터에서 20년 이상을 묵묵히 일해 왔지만 간접고용이라는 이유로 희망퇴직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 이들이다. 

호텔은 희망퇴직을 신청한 노동자들을 즉시 대기발령 했다. 일반적으로 희망퇴직일을 정하고 그 날짜까지 현장에서 일을 하고 퇴사하는 사례에 비하면 이례적인 경우였다. 결과적으로 베이커리를 비롯한 곳곳에서 예정보다 일찍 영업이 종료되었다. 호텔측에서 예정한 영업종료기한이 앞당겨지면서 간접고용노동자들은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일터를 떠나고 있다. 90여명에 달하던 간접고용노동자 중 이미 상당수가 쫓겨났다. 4월말 영업종료 예정이었다가 조기종료가 된 업종의 간접고용노동자는 당장 내일부터는 안 나와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계속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해고예고수당’ 요구는 언감생심에 불과했다.

한진자본은 2020년 대한항공 연동사택을 부동산 투기자본에 286억에 매각했다. 결과적으로 도내에서 최초로 분양가 10억이 넘는 아파트가 등장했고, 제주도는 아파트값 상승률이 역대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연동의 마리나 호텔도 매각을 하고, 그 자리에 주상복합 시설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더군다나 5월말로 종료된 마리나 호텔의 부동산 매각으로 인한 노동자의 고용문제는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부동산 투기자본에 의해 노동자가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다.

문득, 어린 시절 읽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난다.

소년이 일생을 거쳐 나무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결국 나무는 열매, 줄기, 가지를 모두 주고 나중에는 밑동까지 내어준다. ‘나무는 행복했습니다’라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한진자본이 제주의 땅과 지하수와 하늘 길을 아낌없이 활용하다가 결국에는 폭등한 부동산을 활용하여 노동자의 생존마저 팔아먹으려는 이야기의 결말은 무엇인가. 한진자본과의 관계에서 제주도는 결국 행복할 수 있을까? 기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노동자는 항상 희생을 강요받는다. 강요된 퇴직으로 호텔을 떠나는 노동자들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칼호텔 베이커리에서, 본인의 고용이 언제 종료될지 불안한 상황에서 연신 죄송하다고 응대했던 노동자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정작 죄송하다고 도민사회에 사죄해야 할 이는 따로 있지 않은가. 물론 죄송하다는 말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다.

#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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