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67) 막내아들이 부모 지킨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막둥이 부모 직ᄒᆞᆫ다(막내아들이 부모 지킨다)

* 막둥이 : 막내아들
* 직ᄒᆞᆫ다 : 지킨다. 곁에서 보살핀다.

  
부모를 지킨다 함은 나이 든 부모를 가까이서 보살피면서 모신다는 뜻이다. 아들딸을 여럿 두었으면서도 실제로 집에 남아 부모를 지키는 것은 막내 차례가 되는 수가 많다. 딸이야 출사외인이라 시집 보내고 나면 친정 일을 보살피지 못하니 예외로 하는 것이지만, 아들은 부모를 모실 의무가 있다. 아들이 여럿일 경우, 위로 형들은 장성해서 일찍 장가들어 분가하면서 본가에서 일단 분리되지만 막둥이는 그렇지 않다.
  
“아이고, 야인 여러 성제덜 중에 막둥이라부난 ᄒᆞᆨ교 댕길 때도 어멍 젖 먹어시녜게. 기영 귀엽기도 했저.” (아이고, 얘는 여러 형제들 중에 막둥이라서 학교 다닐 때도 어머니 젖 먹었다. 그렇게 귀엽기도 했지.)
  
집안에 혼자 남은 막둥이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만큼 부모와 자식간에 정이 깊게 들었다. 게다가 위로 자기 집을 가진 형제들은 고향을 떠나 육지로 나가 살기도 했으니, 물리적으로 부모를 가까이서 모신다는 게 어렵기도 했다. 이런저런 처지에서 결국에 막내아들이 부모를 봉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나온 말이다. 
  

자녀들을 챙기는 제주 여성의 모습. 두 손으로 손수레를 끌고 막내 아이는 등에 업었다. 사진은 1970년대에 찍었다. 출처=제주학아카이브, 서재철.
자녀들을 챙기는 제주 여성의 모습. 두 손으로 손수레를 끌고 막내 아이는 등에 업었다. 사진은 1970년대에 찍었다. 출처=제주학아카이브, 서재철.

이런 과정에서 부모 재산 특히 집과 밭을 어떻게 형제들에게 상속해 주느냐 하는 문제에 이르러 다소간에 다툼이나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심성 나름이지만 늙은 부모를 모시는 책무를 다하고 있는 막내동생으로 심기가 편치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기간이 우애롭다가도 재산 문제가 되다 보면 대립하지 말란 법이 없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다. 눈앞의 돈을 놓고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아들이 여럿이면 그 자체가 갈등 구조가 되는 수가 비일비재하다는 의미다.
  
유사한 말로 ‘막둥이가 집안 직ᄒᆞᆫ다’고 한다. 지키는 대상이 부모냐 집안이냐 하는 표현상에서 조금 다를 뿐 거기서 거기로 비슷한 말이다.
  
하긴 이 말도 옛말로 격세지감을 갖게 한다. 요즘 젊은이들 집을 떠나 제주도 안에만 살아도 자식에게 기댈 수 있어 다행한 일. 육지 이곳저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산다. 심하면 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식이 가까이에서 부모를 지킨다는 게 어려워 가는 세상이다.
  
실은 제주의 부모들 늙었다고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아 독립심이 매우 강하다. 한 집 안에 살아도 ‘솥단지는 따로 안친다’고 하지 않는가. 밥을 따로 해 먹는다는 말이다. ‘기어지는 날꺼진 나대로 괴왕 먹으키어(움직일 수 있는 날까진 나대로 밥해 먹겠다.)’ 끝까지 밥해 먹으며 둘이(혹은 혼자) 따로 살겠다는 것. 이 얼마나 강한 생활력인다. 아무리 모시려 해도 왕고집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어른들이 의외로 많다.
  
제주인들은 이런 강한 생활력으로 살아온 조상들로부터 강인한 유전자를 받은 후예들이다. 흑룡만리라는 밭담을 쌓아 놓는 것을 보면서 실감한다. 이게 바로, 억척스레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삶의 궤적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막둥이 부모 직ᄒᆞᆫ다’는 그리 중요한 메시지가 아니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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