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6) 위계에 의한 폭력 /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 이사장

 포켓몬빵에도 성폭력이?

다음 정부에서 폐지론을 들고나온 여성가족부에서 가끔 우리 집으로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여성가족부의 우편물이 오는 날이면 괜히 신경이 곤두선다. 짐작하겠지만 내가 사는 동네 인근에 주소지를 옮겨온 성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담은 우편물이다. 대부분 거리가 있는 곳들이라 안도하다가 한 번은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 옮겨온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는 동네 카센터에 등장해 당시 초등학생 딸을 키우던 부모가 화들짝 놀랐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동네에 존재 자체만으로 화제가 된다는 것은 성범죄에 대한 공포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학교는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런데 제주에서 듣고 싶지 않았던 뉴스가 또 터져 나왔다. 제주여고의 학생 인권침해 기초조사보고서는 인권침해의 문제와 함께 피해호소에 대응하는 학교의 모습까지 절망감을 안겨준다. 학교 내 인권침해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성폭력을 사례로 살펴보자.

SPC삼립의 포켓몬빵. 사진=SPC삼립.
SPC삼립의 포켓몬빵. 사진=SPC삼립.

성폭력은 힘의 차이에 의해 일어난다. 힘은 대게 물리적인 힘이나 지적 능력의 차이, 사회적 지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물리적 힘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지적 능력의 차이는 아동 성범죄나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등에서 주로 나타난다. 지하철 장애인석에 앉아 있던 지적장애 2급 여성에게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모텔로 데리고 가 성폭행을 한 사례나 최근 ‘포켓몬빵’이 인기를 끌며 구매가 어려워진 점을 이용해 빵을 찾아주겠다며 아동을 유인해 성추행한 사건도 있었다. 이런 경우 따라간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낮은 이들은 빵이나 맛있는 걸 주겠다는 말만 믿고 따라간 것이다. 그런데 왜 따라갔냐고 왜 거절하지 않았냐고 추궁하는 건 이런 힘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더해 지적 장애인은 어렸을 때부터 뭐 하나 주면 ‘감사합니다’ 인사하게 하고, 어른 말은 잘 들어야 한다고 거절보다는 순응을 요구받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지적 능력의 차이에 순응 교육이 더해진 이들이 성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이유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사건들은 사회적 지위를 이용한 범죄다. 공무원 사회나 직장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아르바이트생을 대상으로 한 업주들의 성폭력도 사회적 지위라는 힘의 차이로 일어난다. 그런데 학교라는 공간도 다르지 않다. 교사와 학생을 동등한 학교 공동체의 구성원이라 부를 수 있을까? 평가하는 자와 평가받는 대상의 관계를 동등하다고 할 수 없다. 여기서 발생하는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위계라고 부르지 않던가. 제주여고 졸업생들이 증언한 인권침해 또한 위계에 의한 폭력이다. 문제는 이런 류의 폭력에 대한 대응이다. 필자는 성폭력 없는 세상을 바라지만 성폭력은 일어날 가능성이 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중요하다. 학교현장에서 인권침해를 저지른 사람들이 그런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도록 장치를 마련하고 인권침해가 재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싫으냐고 되묻는 가해자

제주여고의 사례를 살펴보면, “상담시 갑작스레 다리를 쓰다듬거나 손을 잡는” 교사를 비롯해 다양한 인권침해가 발생할 때 학생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생기부(생활기록부)로 보복당할까봐 두렵다거나 다른 친구들이 교장선생님에게 얘기했으나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 걸 보고 얘기해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비단 제주여고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인권침해사건이 발생했을 떄 가장 먼저 해야 할 조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조치이다. 해당 교사의 수업배제와 같은 분리조치 이후에 정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학생들은 호소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다고. 

제주학생인권조례TF팀과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은 제주여고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사례 조사 결과를 지난 3월 15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조사 결과 폭언과 욕설, 성희롱, 성추행 등 학교 내 인권침해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 왼쪽부터 제주여고 졸업생 김채은 씨, 제주학생인권조례TF팀 오연지 씨,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이건웅 청소년 활동가. ⓒ제주의소리
제주학생인권조례TF팀과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은 제주여고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사례 조사 결과를 지난 3월 15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조사 결과 폭언과 욕설, 성희롱, 성추행 등 학교 내 인권침해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 왼쪽부터 제주여고 졸업생 김채은 씨, 제주학생인권조례TF팀 오연지 씨,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이건웅 청소년 활동가. ⓒ제주의소리

청소년 시절은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라고들 한다. 서로 얼굴만 봐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생에서 가장 특별한 시기이다. 특별한 감성에 더해 위계적 관계에서 경험한 성폭력이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어느 동창들의 얘기를 듣고 더욱 공감했다. 어느 50대 중반 제주 모 여고 동창들이 모여 졸업하고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으니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더 늦기 전에 사은회 준비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동창들과 만나는 건 좋은데 담임선생님을 만나긴 싫다며 사은회 준비를 강하게 거부했다. 그 친구의 사연은 고3 학생 시절 상담실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진학지도를 명목으로 담임선생님이 불러서 껴안고 신체 접촉을 오랜 시간 했다고 한다. 참다못한 친구는 “선생님, 이러지 마세요.”라고 말했고 교사는 싫으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 교사는 학생이 껴안아 주면 좋아할거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정작 그 당사자는 30년 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해 선생님을 떠올리기도 싫었던 것이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모른다.

당시 동료 교사들은 어땠을까? 그루밍 성폭력을 이용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사적으로 친절한 언어, 오랜 시간 손잡는 행동, 불필요한 신체 접촉은 피해자에게 불쾌함과 폭력행위가 된다는 것을 교사들도 알아야 할 것이다. 동료 교사들이 그런 행동을 중단하도록 조치하지 않고 방치하고 방조하는 것은 직장 동료라는 미명으로 문제 삼아서 좋을 것 없다는 문화도 한몫했을 것이다. 가해자가 가해를 인지할 수 있도록 교사들 사이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섬세한 교육방법과 내용이 마련되길 바란다. 

이제 곧 4·3이다. 제주 4·3은 국가폭력으로 도민들이 목숨을 잃은 아픔의 역사다. 대통령이 국가폭력을 인정하고 공개사과를 했고 현 교육감이 당선된 이후에는 학교현장에 4·3 평화인권교육이 체계화되고 있다. 해야 할 일을 제때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주 4·3이 박제화된 역사가 아니라면 4·3의 정신이 교육현장에 녹아나는 것이 진정한 4·3 교육이 아닐까. 평화가 일상에 스며들게 하고 성폭력을 비롯한 인권침해에 단호한 매뉴얼을 작동하게 하는 것에서부터 4·3 교육이 출발하기를 바란다. 제주는 성범죄와 인권침해가 단호히 처벌되고 발붙이기 힘든 지역이라는 말이 들렸으면 좋겠다. 그게 다 4·3 때문이라고.

# 필자 안재홍은?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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