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개인 자유와 권리는 공동체 안에서 온전히 성취될 수 있다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 연재를 통해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제주여자고등학교 전경. ⓒ제주의소리
제주여자고등학교 전경. ⓒ제주의소리

지난 3월 15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제주여고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사회적 고발을 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필자도 함께 했다. 학생당사자와 함께 상황을 살펴보고, 설문을 설계하고, 보고서를 준비하고, 기자회견을 기획했다. 그 과정을 통해 필자는 학생들이 느끼는 절망감과 좌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이 다칠까봐 염려하는 애틋한 마음도 여러번 느꼈다. 실제 설문에 응답한 사례 중에 선생님으로부터 당한 부당한 사례를 아주 길게 적은 학생이 있었다. 하지만 이 사례는 실제 보고서에서 삭제되었다. 왜냐하면 학생의 글 말미에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 공개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써놓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기자회견은 열렸고, 제주여고의 인권침해 상황은 현재 제주의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 학생 당사자들과 논의 속에서 이번 행동의 최종 목표는 “학교의 인권문화 형성”으로 정했다. 선생님들의 폭언 그리고 여러 차별과 혐오적 언행이 있지만, 가해 선생님들의 처벌이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합의할 수 있었다. 법적 문제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이번 인권문제 제기에서 가해 선생님을 절대 특정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에 분노가 컸다. 그저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충격적인데, 실제 설문 조사를 해보니 그 사례가 더 심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례에 대한 분석 작업을 시작하면서 이러한 학교의 모습이 구조적 문제에서부터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학생들과 필자는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학생들과 필자가 내린 결론은 ‘학교의 인권문화 형성’이다.

제주여고 인권침해상황이 기사화하면서 여러 가지 언론의 행태에 대해 실망감이 들었다. 초반기 보고서가 발표되었을 때, 최초의 언론사별 기사의 제목은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온갖 욕설이 신문과 방송의 탑을 장식했다. 물론 그런 내용이 보고서에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자극적 제목을 달지 않고도 충분히 인권침해 상황을 전달할 순 없었는지 아쉬움이 많다. 그리고 나서 언론은 집요하게 필자와 학생들에게 물었다. 그 가해 교사가 누군인지를 밝힐 상황도 아니었지만, 밝혀서도 안되었고, 학생들과 상의하는 과정에서도 조사 결과가 나오고 상황이 공식적을 인정될 때까지는 절대 밝히지 않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교육청에도 가해교사의 실명이 절대 공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가해교사의 실명이나 가해교사의 처벌은 학생인권침해사건의 진정한 결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해 교사는 공식적인 조사 과정을 통해 밝혀져야 하고, 문제의 원인이 된 행위자에 대해서는 당연히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이번 상황의 결말이 되면 안된다. 그런 행위가 발생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행위를 용납하는 학교의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 그렇게 변해가는 선생님들만 계속 그렇게 처벌하는 것은 결국 선생님들에게만, 그리고 그 개인들에게만 책임을 묻고 문제의 본질은 해결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이든 현재 교사 당사자들이든 학교 당국이든 간에 문제의 해결방식을 교사들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유의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결말을 향해 가야할까? 세계인권선언문 제29조는 개인 자유와 권리가 공동체 안에서 온전히 성취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 선언문의 해석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보통 ‘인권’이라고 하면, 개인의 존엄성을 중시하여 개인을 존중하고, 존중받을 권리라고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인권은 개개인들의 공동체 안에서 존중받을 권리가 실현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즉, 상호 존중의 관계에서만 인권이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제주여고의 인권침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교사와 학생들 간의 관계이다. 교사와 학생들 간의 관계가 과거 권위주의적 방식의 관계에서 탈피하지 못함으로서 생긴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들도 변하고, 의식도 따라 변한다. 자유롭고 자기 의견이 점차 강해지는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과거처럼 가르쳐주면 배우고, 지시하면 따르는 세대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제주여고 인권침해 사건에서 등장하는 폭언과 각종 인권침해행위는 가르침을 하는 사람들의 권위를 폭력적으로 세우는 과정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 어린 사람들이니 억지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의식은 어린 사람들의 감정 따위는 아랑곳 않고 버젓이 성적을 공개하는 방식을 통해서 공부에 대한 채찍질을 한다. 그것이 학생들에게 자극이 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너무나도 큰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은 ‘아~ 이제는 친근하게 말 한마디 하기도 겁나겠구나! 아예 말도 꺼내지 않는게 안전하겠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너무 극단적이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선생님의 친근하게 이야기하는 말과 무언가 다른 의도로 말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다. 다만 바로 반박하거나 내색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세계인권선언문 29조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학생과 교사의 인격적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고, 상호존중이 전제 되어 있는 분위기와 대화에서는 서로간의 대화에 대해 경계심이 없다. 서로 간의 본심이 전해진다면 대화도 많이 여유로워지고, 설사 실수가 있더라도 쉽게쉽게 서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제주여고 인권침해 문제는 교사들이 학생들을 만나는 방식, 즉, 교육방식과 대화, 문제해결에 있어서 학생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우선적으로 질문하고 있다. 또한 필자와 학생들의 공동행동을 통해 학생들도 어떻게 상황을 냉정하게 보고, 어떻게 상대를 존중하면서 문제를 풀어갈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이번 제주여고 인권침해 상황의 궁극적 결말이 되어야 한다.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상임활동가. ⓒ 제주의소리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상임활동가. ⓒ 제주의소리

인권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서 상대나 나의 권리가 충족될 수 있다. 관계가 아닌 개인의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 될 수 있다. 행위에 대한 합당한 조치는 필수 과정이지 핵심은 아니다. 핵심은 우리가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늘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인권이고, 그러한 인권문화를 학교에서 수용해주기를 이번 피해 학생들은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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