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제주박물관, 4월 5일~5월 29일 국보 제180호 ‘김정희 필 세한도’ 진본 전시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

한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와 잣나무의 모습을 선비의 처신에 빗대 표현한 공자의 논어 중 한 구절이다.

제주에 유배차 내려온 추사 김정희(1786~1856)는 공자의 글귀처럼 자신의 처지를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이 그림이 바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인화로 손꼽는 국보 제180호 ‘세한도(歲寒圖)’다.

‘세한도’는 184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귀양살이하고 있는 스승 김정희에게 두 번씩이나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서 보내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며 그에게 답례로 그려 준 그림이다.

한 채의 비현실적인 집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각각 두 그루씩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해 극도의 절제와 간략함을 보여 주고 있다. 마른 붓질과 묵의 농담, 간결한 구성 등은 지조 높은 김정희의 내면세계를 잘 보여준다. 

차디찬 한겨울, 쓰러질듯한 늙은 소나무가 한그루가 어린 소나무에 기대어 건너편 푸른 절개의 잣나무 두그루를 통해 세상을 향한 희망을 표현하려 했던 유배인의 심경이 잘 나타나 있기도 하다. 늙은 스승 김정희가 제자 이상적을 통해 느낀 절개와 신의를 소나무와 잣나무에 표현한 것이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당시 제자인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 '세한도'. 우리나라 최고의 문인화로 평가받는 추사의 걸작 세한도 진본이 178년 만에 제주로 돌아와 공개된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당시 제자인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 '세한도'. 우리나라 최고의 문인화로 평가받는 추사의 걸작 세한도 진본이 178년 만에 제주로 돌아와 공개된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인간을 성찰케 한 제주 유배, 꽃피운 ‘추사 문예’

추사는 세도정치가 판을 치던 조선 후기, 모함을 받아 55세의 나이로 억울하게 제주도에 유배를 온다. 언제 풀려날지 모르는 막막한 생활 중 책은 그에게 유일한 낙이 됐고 이 시기 추사는 글과 그림을 비롯한 뛰어난 학문과 예술을 펼쳐낸다.

추사는 요사이 하는 말로 소위 '금수저'로 태어났다. 정조 집권 10년이 되던 해, 충남 예산군의 경주김씨 가문에서 태어난 김정희는 34살이 되던 때 문과에 급제, 규장각 대교와 의정부검상, 예조참의를 거쳐 54세의 나이로 병조참판에 이르렀다.

하지만 권세를 장악한 안동 김씨 일가는 김정희가 속한 경주 김씨 세력을 제압하겠다는 목적으로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이 유배를 떠나게 된 10년 전 사건 ‘윤상도의 상소’ 사건을 다시 끄집어냈다.

윤상도는 왕에게 호조판서 박종훈, 유수를 지낸 신위, 어영대장 유상랑에게 벌해달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무고죄로 추자도에 유배된 인물로 1840년 의금부로 압송돼 국문을 받다 아들 윤한모와 함께 능지처참 된 바 있다.

이 같은 윤상도의 상소 초안을 김정희가 작성했다는 진술로 죄를 덮어씌우겠다는 작전을 펼친 세도정치의 계략 속에서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은 사약을 받았으며, 김정희는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제주로 유배를 떠나게 됐다. 

하루아침에 역적으로 몰려 죄인이 된 추사를 한결같이 따르던 제자 이상적(1804~1865)은 추사가 제주에 내려간 이후 줄곧 책을 보냈다. 죄인과 내통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던 위험을 무릅쓰고 스승과의 인연을 끊지 않았던 것.

역관(통역을 맡던 벼슬)이던 이상적은 당시 청나라에서도 구하기 쉽지 않은 책들을 구해 제주도로 보냈고, 추사는 그의 인품을 칭송하며 세한도라는 그림으로 보답했다. 

추사 김정희 '세한도' 두루마리. 세한도 왼편으로는 추사가 단 발문과 이를 보고 한국과 중국의 문인 20명이 쓴 22편의 감상문이 덧붙여졌다. 이로써 세한도는 약 15m에 달하는 길이가 됐으며, 긴 두루마리 형태를 갖췄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추사 김정희 '세한도' 두루마리. 세한도 왼편으로는 추사가 단 발문과 이를 보고 한국과 중국의 문인 20명이 쓴 22편의 감상문이 덧붙여졌다. 이로써 세한도는 약 15m에 달하는 길이가 됐으며, 긴 두루마리 형태를 갖췄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위 '세한도'라는 제목과 옆으로 '우선시상, 완당'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추운 시절에 그린 그림'이라는 제목은 유배인의 신분을 차디찬 계절에 비유했다. '우선시상'은 추사(완당)가 자신의 제자인 우선 이상적에게 '이 그림을 보시게' 라는 의미로 썼다. 완당은 추사의 또다른 호이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위 '세한도'라는 제목과 옆으로 '우선시상, 완당'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추운 시절에 그린 그림'이라는 제목은 유배인의 신분을 차디찬 계절에 비유했다. '우선시상'은 추사(완당)가 자신의 제자인 우선 이상적에게 '이 그림을 보시게' 라는 의미로 썼다. 완당은 추사의 또다른 호이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세한도에는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인장과 제목에 이어 가장 먼저 ‘우선시상(藕船是賞), 완당(阮堂)’이라고 적혀 있다. 

우선시상은 ‘우선, 감상할 것’을 뜻하는 말로 우선은 제자 이상적의 호를 말하며, 완당은 추사 김정희의 또 다른 호를 나타낸다. 즉 ‘우선시상’은 제자인 우선 이상적에게 이 그림을 감상할 것을 권하는 말이다.

그림 오른쪽 아래 찍힌 인장 ‘장무상망(長毋相忘)’은 직역하면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으로, 스승이 유배인 처지가 되었음에도 끝까지 정을 놓지 않은 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오래도록 서로를 잊지 말자는 추사의 마음이 함축적으로 담겼다.

그림에는 늙어 쓰러질듯 기울어진 소나무와 그 노송을 부축하듯 어린 소나무가 꼿꼿하게 나란히 서있다. 건너편에는 곧은 잣나무 두그루가 하늘을 향하듯 곧게 서있다. 추사는 추운 시절에 그린 그림이라는 유배인의 처지를 비유한 ‘세한(歲寒)’을 제목으로 달면서 자신의 깊은 의도를 전달한다. 

추사는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제목, 소재, 필법, 인장 등으로 세한도를 치밀하게 완성했다. 세한도가 뜻과 정신을 그림으로 표현한 최고의 문인화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사는 제주에서 울타리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위리안치형을 받았음에도 부인을 비롯한 친구, 제자 등 지인들과 편지를 주고받고 책을 통해 학문의 깊이를 더해갔다.  8년 3개월 간의 유배 생활 중 추사는 부단한 노력과 성찰로 ‘추사체(秋史體)’라는 독보적인 서예세계를 완성하기도 했다. 

만약 추사가 제주에 귀양 가지 않았다면 추사체는 어떻게 변했을까. 더 날렵하고 부드러워졌을까. 아니면 더 호방하고 기운 찼을까.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추사체는 제주 유배지에서 완성됐다’고 말한다. 8년 3개월의 고행이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였던 그를 ‘완숙하고 농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유배 이후 ‘서체에 기름기가 많이 빠졌다’(유홍준 글)는 평가도 바로 그렇다.

제주 유배 후부터 추사 글씨는 아이들 그림처럼 자유분방해졌고 거칠 것 없이 활달하고 천진난만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창의력이 넘치고 그대로 현대회화와 공통되는 조형미를 갖추었다’(임창순 글)는 시각이다. 추사는 스스로 ‘70평생에 벼루 10개를 갈아 닳게 했고, 천 자루의 붓을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 노력에 제주에서의 귀양살이가 삶의 성찰로 이어져 비로소 꽃이 활짝 핀 것이다.

  제주에서 중국, 일본 거쳐 다시 제주로…‘178년 만의 귀향’

추사 김정희가 삿갓을 쓰고 나막신을 신은 ‘완당선생 해천일립상’. 사진=국립제주박물관.
추사 김정희가 삿갓을 쓰고 나막신을 신은 ‘완당선생 해천일립상’. 사진=국립제주박물관.

세한도는 그림 한 장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왼편으로 추사가 단 발문과 이를 보고 한국과 중국의 문인 20명이 쓴 22편의 감상문이 덧붙여졌다. 이로써 세한도는 약 15m에 달하는 길이가 됐으며, 긴 두루마리 형태를 갖췄다.

세한도는 이상적에게 전해진 이후 세대를 거쳐 일제강점기 추사를 깊이 연구한 일본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에게 1932년 넘어갔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서예가 손재형 선생은 일본으로 건너가 매일같이 후지쓰카를 만난 끝에 진본을 돌려받게 됐다. 

이후 손재형 선생은 두루마리를 꾸며 보관하다 사업가 손세기에 전달, 손세기의 장남 손창근 옹은 세한도를 소장해오다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했다.

손창근 옹은 세한도를 비롯한 다양한 수집 미술품들을 국가의 품으로 돌려줬다. 대를 이어 보호, 수집해온 문화재들을 조건 없이 숭고한 뜻을 담아 기증한 것. 이에 정부는 문화훈장 중 최고훈격인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2월 손창근 옹을 청와대로 초청해 감사의 뜻을 직접 전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정말 국가가 얼마나 감사를 드려야 될지 모르겠다. 문화유산 보호 유공자들에게 이렇게 금관 문화훈장을 수여한 것은 손 선생님이 처음”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조선시대 제주와 중국, 일본 등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세한도’의 진본은 추운 한겨울이 아닌 포근한 봄날, 178년 만에 다시 제주를 찾게 됐다.

국립제주박물관은 오는 4월 5일부터 5월 29일까지 특별전 ‘세한도, 다시 만난 추사秋史와 제주’를 개최한다. 앞선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은 추사의 ‘불이선란도’, 허련의 ‘김정희 초상’ 등 15점과 함께 세한도 기증 특별전 ‘세한歲寒, 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을 연 바 있다.

이재열 국립제주박물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그 감동의 여운을 이어 178년 만에 처음으로 제주에서 ‘세한도’를 선보이는 특별전을 개최한다”며 “오랜 여정을 거쳐 다시 제주에서 만나는 세한도는 긴 두루마리의 길이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초대의 말을 남겼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세한歲寒, 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의 순회전시로 일부 전시품이 교체돼 열린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