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특별재심 피해자 73명 중 유일한 생존자 고태명 할아버지 감격의 무죄 선고

고태명 할아버지가 무죄 판결에 대해 항소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만 아흔 살의 고령인 고태명 할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이날 재판 과정을 헤드셋을 쓰고 경청했다. ⓒ제주의소리
고태명 할아버지가 무죄 판결에 대해 항소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만 아흔 살의 고령인 고태명 할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이날 재판 과정을 헤드셋을 쓰고 경청했다. ⓒ제주의소리

제74주년 제주4.3 추념식을 앞둬 4.3 희생자 73명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됐다. 73명 중 유일한 생존자인 고태명(1932년생) 할아버지의 진심어린 발언은 법정을 눈물바다로,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제주지방법원 형사4-1부(재판장 장찬수)는 29일 오후 2시 고태명 할아버지 등 33명에 대한 특별재심 공판에서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특별재심 청구자들의 변호인들은 공소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변호했다. 

검찰도 공소사실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하면서 4.3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양측 모두 ‘무죄’를 주장함에 따라 재판부는 피해자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오전에 명예회복된 직권재심 2건 총 40명을 포함해 29일 하루에만 4.3 당시 국가공권력에 의한 피해자 총 73명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된 역사적인 순간이다. 

73명 중 72명은 이미 억울한 누명을 쓴채 고인이 됐고, 1932년생으로 만 90세인 고태명 할아버지가 피해 당사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가 고향인 고 할아버지는 17살이던 1948년 4.3 광풍에 휩쓸렸다. 당시 김녕중학교에 다니던 고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쳐 줄 수 있느냐는 동복리장의 권유로 야학에서 교사 역할을 하다 제주경찰서로 끌려가 각종 고문에 시달렸다. 

일주일 이상 이어진 모진 고문에 고태명 할아버지는 경찰 질문에 무조건 살고 싶다는 생각에 “네, 네, 네”라고만 대답했고, 이는 고태명 할아버지가 전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자백이 돼 버렸다. 

고태명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음력 1948년 12월18일 4.3 광풍에 희생됐다. 이후 고태명 할아버지는 경찰 시험에 합격했지만, 빨갱이라는 굴레가 씌워져 폭도의 가족은 경찰이 될 수 없다는 연좌제에 의해 합격이 취소됐다. 

고향에서의 굴곡진 삶에 지친 고태명 할아버지는 이후 제주를 떠나 생활하다가 20여년 전 다시 고향 제주시 조천읍 동복리로 돌아와 현재까지 생활하고 있다. 

고태명 할아버지는 심문기일에 직접 출석해 자신의 피해 상황을 증언해 법정을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고,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특별재심 청구자 33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후, 재판부는 유일한 생존자이자 당사자인 고태명 할아버지에게 항소 절차에 대해 안내하는 과정서 재판부가 “이번 판결에 불복이 있으면”이라며 설명이 다 끝나기도 전에 고태명 할아버지는 큰 목소리로 “없습니다”라고 대답해 법정이 웃음바다로 변하기도 했다.  

억울했던 통한의 세월에 대한 증언에도 눈물바다가 됐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내려진 무죄 선고에도 유족들이 여기저기서 기쁨의 눈물 소리가 가득했던 법정이 고태명 할아버지의 그 씩씩한 답변에 일순간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진 순간이다. 

이렇게 재판이 모두 마무리된 후 70여년의 무거운 굴레를 벗은 고태명 할아버지는 취재진에게 “매우 기쁘다. 이 이상의 기쁨이 있을까”라며 “4.3으로 목숨을 잃은 아버지 무덤 앞에 찾아가 무죄를 받았다고 인사 드릴 예정이다.”라며 아흔살의 노인은 감격의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