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역사의 숨비소리 - 제74주년 특별기획] ②4‧3특별법 개정안 누락 ‘보완책 마련해야’ 

지난해 12월 제주4·3희생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상금을 명시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국회를 통과했다.

근현대사의 참혹한 비극인 제주4‧3에 대해 74년만에 국가 보상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다만 국가폭력으로 뒤틀린 가족관계를 바로 잡기 위한 명예회복 수단은 빠져 오점을 남겼다.

정부는 4‧3희생자의 가족관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유족들의 법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논의가 절실해졌다.
 

[그래픽 이미지-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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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호적 ‘인지청구 특례 제외’ 논쟁

당초 개정안 제21조 제1항에는 부모가 사망한 경우 이를 인지한 날로부터 2년이 지나도 검사가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민법상 예외 규정이 포함됐다.

인지청구는 자녀가 부모를 상대로 법률적 자식임을 인정받는 절차다. 민법 제863조(인지청구의 소)에는 ‘자녀가 부 또는 모를 상대로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제주는 4‧3의 광풍 속에서 부모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돼 자식이 공부상 할아버지나 친척의 자녀로 등록돼 평생을 살아온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본인이 할아버지나 삼촌을 상대로 자녀가 아니라는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이 필요하다. 이어 법원에 실제 부모를 상대로 한 인지청구를 해야 한다.

애초 개정안에는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없이 곧바로 인지청구가 가능하도록 특례가 포함돼 있었다. 인지청구 시점도 사망을 안 날로부터 2년이 아닌 법률 시행일 이후 2년으로 정했다.

반면 법원이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대상자가 불분명하고 현행 민법으로도 인지청구 예외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며 실익 문제를 제기하면서 최종 법안에서는 빠졌다.

[그래픽 이미지-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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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희생자 사망신고시 ‘혼인 무효화’ 논쟁
 
호적과 함께 혼인신고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애초 개정안에 담긴 혼인신고 특례조항도 법원이 ‘친족법과 상속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난색을 표하면서 최종안에서 제외됐다.

당초 개정안 제21조의2 제1항에는 사실혼 관계에 기초해 희생자와 혼인신고를 한 경우 민법 제815조에도 불구하고 혼인신고의 효력을 인정하는 예외 규정이 있었다.

민법 제815조에는 당사자간의 혼인의 합의가 없을 때에는 혼인을 무효로 하고 있다. 법률상 사망한 사람과의 혼인은 당사자간 합의 자체가 불가능해 성립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과거 제주에서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4‧3희생자가 숨지거나 행방불명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후 사실혼을 이유로 살아남은 배우자가 한참 후에 혼인신고를 한 경우가 많다.

문제는 사망일을 4‧3 당시로 되돌릴 경우, 부득이 이후에 이뤄진 혼인신고는 무효화 된다는 점이다. 사실혼에 대한 확인절차 없이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판단이다.

[그래픽 이미지-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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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광풍에 숨진 부모 ‘자녀 출생신고’ 논쟁

호적과 혼인에 이어 출생신고도 4‧3이 남긴 아픔 중 하나다. 

4‧3사건으로 고인이 되거나 행방불명된 부모의 자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 조항 역시 법조계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초 개정안 제21조2의 제2항에는 4‧3희생자의 사망이나 행방불명 이후부터 진행되는 친자의 출생신고는 민법 제855조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도록 하는 예외 규정을 뒀었다.

민법 제855조에는 혼인 외 출생자는 본인이 아닌 실제 부모가 인지청구를 하도록 돼 있다. 부모의 혼인이 무효이면 출생자는 혼인 외 출생자로 판단한다.

법령에 따라 사망한 사람을 상대로 자녀가 한 출생신고는 무효다. 출생신고는 부모가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데 이를 거스르면 현행 상속법이 뒤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4‧3의 상처를 품은 유족들의 기구한 사연은 다양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관계 대한 특례 도입이 추진됐지만 민법에 혼선을 준다는 이유로 법안에서 줄줄이 빠졌다. 

특례 도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실질적인 유족들이 보상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유족들이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픽 이미지-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정부, 4‧3 가족관계 개선방안 연구용역 착수

행정안전부는 제주4‧3 희생자에 대한 잘못된 가족관계를 바로 잡기 위해 1억원을 투입해 ‘제주4‧3사건 가족관계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용역’을 추진하기로 했다.

행안부는 6개월간의 용역을 통해 뒤틀린 가족관계가 발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확인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문헌과 전문가 의견도 청취할 계획이다.

가족관계 정정을 요구하는 유족들의 정확한 입장도 수합한다. 이를 위한 설문조사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와 제주4‧3희생자 유족회의 도움도 받기로 했다.

특례 조항 도입시 법조계에서 우려하는 민법상 부작용도 조사한다. 절차 생략으로 인한 문제점과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검도도 함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용역 결과를 토대로 명예회복 방식과 절차 등 보다 실효성 있는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법무부와 법원행정처 등과 사전협의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전망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용역은 이르면 4월부터 진행해 10월쯤 결과가 나올 것 같다”며 “연말까지 법령 추가 개정이나 행정적 처리 등의 방향이 정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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