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연구소, 4.3 시기 살아낸 여성들 ‘구술집’ 펴내

억울한 누명을 쓴 아버지가 영문 모를 곳으로 끌려간 채 행방불명되고,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서 바라만 봐야 했던 그 날 제주4.3.

열세 명의 대식구가 정답게 살던 집은 쑥대밭이 돼 둘만 남게 됐고, 열 살도 채 되지 않았던 조그만 어린이는 살기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제주4.3연구소는 피의 광풍이 불어닥친 4.3시기를 살아낸 여성들의 구술집 ‘4.3과 여성3, 덜 서러워야 눈물이 난다(도서출판 각)’을 펴냈다.

1편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 2편 ‘4.3과 여성, 그 세월도 이기고 살았어’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 집필은 허영선, 양성자, 허호준, 조정희가 참여했다. 

4.3속에서 여성들은 수많은 고난을 겪었으나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왔다. 이 책은 어린 시절 4.3을 겪은 6명의 여성들이 어떻게 새로운 미래로 나아갔는지를 날 것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직접 겪었던 4.3 당시의 삶, 이후의 생활사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서러운 고통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보태며 그 기억을 견뎌내고 삶을 살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은 가족들의 죽음을 목격하거나 수습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바다에서, 땅에서 삶의 주체자가 돼 분투했다. 돌담 하나하나 등짐으로 나르며 황량한 벌판에 집을 지었고, 가족을 만들었고, 꽃나무를 꽂았고, 생존의 울타리를 스스로 엮었다.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출생인 김평순(1937년생)은 4.3 당시 한집에 살던 큰오빠 가족을 포함한 열세 명의 대식구 가운데 열두 살 자신과 아홉 살 남동생 둘만 살아남았다.

지팡이를 짚고 가던 아버지가 도피자 가족으로 몰려 총살당했고, 이후 어머니와 셋오빠도 안덕지서로 끌려가다가 비극을 맞이했다.

오청자(1942년생)는 일본 동성구에서 2남 2녀 중 첫딸로 태어나 1944년 아버지만 일본에 남고, 가족과 함께 고향 오라리로 귀향했다.

열 살 이후부터 열세 살까지 목격한 가족의 죽음만 일곱이다. 일본에서 귀향 후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세상을 떴고, 여동생과 할아버지도 희생됐다. 외가도 4.3으로 쑥대밭이 되자 어머니는 그 고통을 감당하다 1953년 세상을 떴다. 오청자는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책에는 이밖에도 아버지와 동생을 잃고 어릴 때부터 공장에 나가 일하며 공부한 사연, 9명의 자식을 모두 잃은 할머니와 함께 억척같은 삶을 살아온 사연 등 차마 울지도 못했던 기억들이 담겼다.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은 “여성들이 한땀 한땀 기워가는 기억과 경험이 미래의 기록으로 살아나기를 바란다. 이 혼란의 시기, 이렇듯 상상 이상의 가혹한 절망 속에서도 단단한 정신력으로 견뎌냈던 4·3의 어머니들에게, 끝없는 마음을 담아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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