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역사의 숨비소리 - 제74주년 특별기획] ③ 윤석열 정부 4.3 해결 출발점은 74주년 추념식…국정과제 반영 주목

제74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을 앞두고 새롭게 들어서는 윤석열 정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공식석상에서 '4.3의 회복'을 수 차례 강조해 온 윤 당선인이지만, 지난 제주4.3 진상규명 운동사에서 보수정권 시절의 '4.3 흔들기' 수난사를 돌이켜보면 이런 두가지 시선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반세기 넘는 동안 캄캄한 역사 속에 가둬졌던 제주4.3은 1999년 제주4.3특별법 제정을 시작으로 2004년 4.3진상조사보고서 채택, 2006년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첫 공식사과 등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차근차근 전진해 왔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약 9년 2개월 동안 4.3은 보수 정부의 사실상의 방임 내지 방조 속에 온갖 수모를 당해야 했다.

이 시기 홀대를 넘어 폄훼-왜곡으로까지 확대된 극우 보수진영의 '4.3흔들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도사리고 있다. 윤 당선인의 약속대로 윤석열 정부가 풀어내야 할 제주의 최우선 과제이기도 하다.

◇ 끝내 4.3 찾지 않은 역대 보수 대통령...정부 차원의 노골적 '4.3홀대'

보수정권 시기의 '4.3 흑역사'는 단순히 보수 대통령이 단 한 차례도 4.3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정부 차원의 4.3 조직은 사실상 마비됐다. 4.3특별법 제정과 맞물려 2000년 8월 설치된 4.3중앙위원회는 4.3 진상규명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 온 조직이었다. 4.3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국민화합에 이바지한다는 취지는 당초 목적을 잃게 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실 산하 4.3중앙위원회가 열린 것은 2011년 단 한 차례 뿐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2014년 서면회의를 열었던 것이 고작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는 4.3진상조사위가 제시한 후속과제도 당연하다는듯 손을 놓았다. 4.3중앙위와 국회가 의결한 제주4.3평화공원 3단계 사업비 120억원을 5년간 집행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4.3특별법 개악이 시도됐고, 4.3희생자 추가 인정도 이뤄지지 않았다. 제주4.3위원회는 다른 과거사 위원회와 통폐합되며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 4년은 MB정권 보다 나았다는 일각의 평가는 그나마 다행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4년 제주4.3을 국가추념일로 공식 지정했고, 묶여있던 4.3평화공원 3단계 사업 예산을 집행한 점이다. 

다만 국가추념일 지정은 이미 2013년 4.3특별법 개정 당시 부칙으로 명시됐던 내용이고, 4.3평화공원 예산도 더이상 미룰 당위성이 없게된 때라 정치적으로 선택했을 뿐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뒤따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4.3평화재단 국고지원을 확대하겠다던 공약(公約)도 결국 아무런 진척 없는 공약(空約)이 된 점을 보면 제주4.3을 다루는 역대 보수정권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 4.3희생자의 재심사를 노골적으로 요구한 것도 박근혜 정부였다. 희생자 재심사 요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4.3중앙위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역대 보수정권의 대통령들이 4.3추념식에 불참한 것을 두고 도민사회가 분노하고 성토하는 이면에는 이 같은 배경이 있었다.

지난 2015년 제주4.3평화공원 앞에서 4.3희생자 위패 화형식을 하는 보수단체 회원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015년 제주4.3평화공원 앞에서 4.3희생자 위패 화형식을 하는 보수단체 회원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보이지 않는 비호 아래 보수진영 몰상식한 4.3폄훼-왜곡

보수정권 9년은 정부 차원에서도 4.3홀대가 노골적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비호 아래 민간 차원의 4.3흔들기도 극에 달했던 때다.

이 기간 중 극우세력들의 4.3폄훼·왜곡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4.3특별법과 진상조사보고서, 국가원수의 공식 사과 등에 대해 좌파 정권 동안 이뤄진 것이라며 부정하는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시작은 법적소송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씨와 대표적인 극우인사 이선교 목사 등은 2008년부터 4.3특별법 제2조 2호에 규정된 '수형자 등에 대한 희생자 결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또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4.3중앙위원회가 결정한 희생자 1만3564명 중 1540명에 대한 결정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4.3위원회를 상대로 두 차례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4.3위원회의 희생자 결정과 관련된 행정소송 2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2건 등으로 4.3희생자 결정과 명예회복 활동을 부정해 왔다.

사법부는 최종적으로 6건의 모든 소송에 대해 보수단체의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해묵은 색깔론 논란을 종결지었다.

관련 소송에서 모두 패한 보수단체들은 전략을 바꿔 4.3희생자 중 남로당 간부 등이 포함돼 있다며 이른바 불량위패를 철거해야 한다는 이념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재심사 대상으로 지목한 희생자는 처음엔 4명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최대 3000명까지 멋대로 늘어났다. 자신들이 재심사 대상으로 지목한 위패를 불에 태우는 등의 망동도 서슴지 않았다.

소모적인 대립은 4.3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특히 일련의 과정은 이 같은 4.3흔들기를 보수정권이 최소한 '방조'했거나 사실상 '조장'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과정에서 정부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단체에 예산을 지원해 이들로 하여금 관제시위를 하도록 하는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가 사실로 드러나며 심증을 굳혔다.

곧이어 들어선 문재인 정권이 확연하게 다른 행보를 보인 것도 이전 정부의 그림자를 두드러지게 했다. 문재인 정권 들어 4.3은 간절한 숙원이었던 4.3특별법 개정을 통해 국가 폭력에 대한 배보상 책임 소재를 확실하게 정리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임기 중 세 차례나 4.3추념식에 직접 참석하고, 현직 군경 최고 책임자 역시 4.3영령들 앞에 고개 숙여 사과하고 추모한 것은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 "4.3은 대한민국 국격 문제" 윤석열 당선인, 보수정권 흑역사 끊어낼까

새롭게 들어설 윤석열 정부의 지상과제는 '통합'이다. 지역과 이념, 성향 등의 요인으로 첨예하게 대선 표심이 엇갈린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내야 하는 과제다. 4.3을 비롯한 과거사 진상규명은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과제다. 

그간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제주4.3에 대해서는 이전 보수정부들과 다른 전향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윤 당선인은 대선 하루 전날 집중유세 일정으로 제주를 찾은 자리에서 "4.3문제는 대한민국이 인권을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문제"라고 규정하며 "대한민국 국격과 헌법정신을 위해서도 과감하게 검토하겠다"고 도민사회에 약속했다.

지난 2월 5일 대선 후보 시절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어 "유가족과 도민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윤석열 정부는 정말 다르구나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2월 5일 유세차 제주를 방문하는 과정에서도 4.3평화공원을 참배하며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양민이 무고하게 희생됐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넋을 기리고 추모하고 모든 국민이 따뜻하고 보듬고 위로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 국민으로 도리"라며 "그것이 인권과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해서 평화와 국민통합을 이루는 길"이라고 추모했다.

윤 당선인은 위패봉안실에 남긴 방명록에는 '무고한 희생자의 넋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겠습니다'라는 글귀를 남겼다.

윤 당선인의 제주 8대 공약의 다섯번째는 '제주 4.3완전한 해결'이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법률적·제도적·예산적 지원을 약속한 것이 핵심이다

또 4.3희생자에 대한 보상 등의 지원 근거를 담은 '가족관계특례조항' 신설 등 특별법 관련 정부 연구용역 내용이 차질 없이 시행될 수 있도록 입법화를 지원하고, 고령 유족 요양시설 지원, 유족회 복지센터 지원, 트라우마 치유사업 지원 등을 공약했다.

특히 4.3기념사업과 추모제 등을 범국가적 문화제로 승화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지금까지의 행보로만 판단하면 적어도 4.3을 둘러싼 '이념 논쟁'이 재현될 우려는 적어 보인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들의 지지층이 등 돌릴 것을 우려해 적극적인 발언을 회피했던 것과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아직은 실행되지 않은 구두선이다. "저는 쇼는 하지 않습니다"란 윤 당선인의 반복된 발언처럼 4.3해결을 위한 그의 전향적 발언들이 정부의 정책으로 뒷받침되고 실속 있는 결과물을 보여줄 때 제주도민도 윤석열 정부를 향해 박수를 보탤 것이다.   

제주에서의 4.3은 진보-보수를 망라한다. 국가공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 땅에서 이념 갈라치기가 있을 수 없다. 도민들이 윤 당선인에게 바라는 점도 진영을 떠난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완수다. 

아직 제주사회 내부에는 여전히 보수야당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남아있다. 이를 해소할 의무와 책임은 이제 윤 당선인과 새 정부에 있다. 윤 당선인이 다가오는 4월 3일 봉행될 제74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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