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제주박물관, 5일~5월 29일 ‘세한도’ 진본-불이선란도 등 추사 예술혼 담긴 13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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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제주박물관에 전시된 국보 제180호 추사 김정희 필 세한도 진본. 178년 만에 제주에 내려온 세한도 진본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오는 5일부터 5월 29일까지 국립제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다. ⓒ제주의소리

우리나라 최고 문인화로 손꼽히는 국보 제180호 ‘김정희 필 세한도(歲寒圖)’와 추사 예술의 진수 ‘불이선란도’ 등 추사 김정희의 걸작들이 돌아온다. 제주를 떠난 지 180여 년 만의 귀향이다.

국립제주박물관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제주 유배 시절에 그린 ‘세한도’를 집중조명하는 특별전 ‘세한도, 다시 만난 추사와 제주’을 오는 5일부터 5월 29일까지 연다. 

178년 만의 여정을 끝내고 귀향길에 오른, 무수한 시간을 담아낸 세한도 진본을 제주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세한도’는 184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귀양살이하고 있는 스승 김정희에게 두 번씩이나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서 보내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며 추사 김정희가 답례로 그려 준 그림이다.

 100년 넘게 그려진 그림, 178년 만의 귀향

추사가 제주에서 그려낸 국보 세한도는 제작 당시인 1844년부터 1950년대까지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오며 세월을 담아냈다.

세한도는 그림 한 장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왼편으로 추사가 단 발문과 이를 보고 한국과 중국의 문인 20명이 쓴 22편의 감상문이 덧붙여졌다. 이로써 세한도는 약 15m에 달하는 길이가 됐으며, 긴 두루마리 형태를 갖췄다.

이상적에게 전달된 세한도는 중국 문인들과 소장한 이들의 글이 덧대 지면서 100여 년 동안 새로 거듭났다. 추사가 그림을 그린 1844년에 작품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195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완성된 것. 그만큼 추사의 그림은 많은 이들의 시간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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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제주박물관에 전시된 세한도 두루마리 진본. 약 15m에 달하는 두루마리에는 추사의 세한도를 보고 감동한 문인들의 감상 글이 이어진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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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세한도' 두루마리. 세한도 왼편으로는 추사가 단 발문과 이를 보고 한국과 중국의 문인 20명이 쓴 22편의 감상문이 덧붙여졌다. 이로써 세한도는 약 15m에 달하는 길이가 됐으며, 긴 두루마리 형태를 갖췄다. ⓒ제주의소리

이상적이 갖고 있던 세한도는 그의 제자인 김병선에게 넘겨졌고 이어 아들인 김준학에게 전해졌다. 김준학이 소장하던 세한도는 1930년대 김정희를 깊게 연구한 일본인 연구자 후지쓰카 지카시에게 넘어가게 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서화가 손재형 선생은 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대 일본으로 넘어가 후지쓰카를 매일같이 찾아간 끝에 진본을 돌려받게 됐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연구가의 손에 추사의 작품이 넘어갔다고는 하나 후지쓰카는 진심을 다해 추사를 존경해왔다. 

후지쓰카는 세한도 진본을 구한 뒤 복제본 100부를 만들어 세한도를 알리기도 했으며, 그 복제본을 한국에 기증키도 했다. 또 손재형 선생의 애타는 요청 끝에 소중하게 보관하던 진본을 넘겨준 것도 바로 그다.

해방 이후 세한도에 감상평을 남긴 독립운동가 정인보(1893~1950) 선생은 “굳센 지사 손 군(손재형)이 한 손으로 이무기와 싸워 엎치락 끝에 이미 삼킨 보물을 다시 빼앗으니 옛 보물이 이로부터 온전케 되었네. 누가 알았으랴! 이 한 그림 돌아온 것이 지금 강산을 되찾을 조짐이었음을”이라고 남겼다.

독립군 양성에 힘쓴 독립운동가 이시영(1869~1953) 선생도 세한도에 “내가 이 그림을 보니, 문득 수십 년 동안의 고심에 찬 삶을 겪은 여러 선열들이 떠올라서 옷소매로 눈물을 닦고 말았다”고 썼다.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인 오세창(1864~1953) 선생도 “완당 옹이 한 자 종이에 명예를 널리 떨쳐 서울 북쪽 동쪽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네. 인생 백 년은 참으로 꿈과 환상이라 슬픔과 기쁨, 얻음과 잃음을 물어 무엇 하랴”고 남겼다.

중국과 일본을 거쳐 다시 조국의 땅을 밟게 된 추사의 세한도를 보고 당시 시대 상황을 빗대 감상평을 작성한 것. 

진본을 넘겨받은 손재형 선생은 두루마기 형태로 꾸며 보관하다 손세기 선생에게 넘겼고, 손세기 선생의 장남 손창근 옹은 세한도를 보관하다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했다.

오른쪽 위 '세한도'라는 제목과 옆으로 '우선시상, 완당'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추운 시절에 그린 그림'이라는 제목은 유배인의 신분을 차디찬 계절에 비유했다. '우선시상'은 추사(완당)가 자신의 제자인 우선 이상적에게 '이 그림을 보시게' 라는 의미로 썼다. 완당은 추사의 또다른 호이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위 '세한도'라는 제목과 옆으로 '우선시상, 완당'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추운 시절에 그린 그림'이라는 제목은 유배인의 신분을 차디찬 계절에 비유했다. '우선시상'은 추사(완당)가 자신의 제자인 우선 이상적에게 '이 그림을 보시게' 라는 의미로 썼다. 완당은 추사의 또다른 호이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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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애재자 허련이 그린 김정희 초상. 세한도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손창근 옹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세상에 공개됐다. 허련은 김정희의 제자가 돼 김정희가 귀양살이를 할 때 세 차례나 제주를 다녀갔다. 관덕정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는 그림을 그리는 등 예술활동도 펼친 바 있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스승의 글을 모아 목판에 새겨 탑본첩을 제작하며 그의 학문과 예술을 후대에 전하는 데 이바지했다. 온화하게 웃고 있는 김정희의 초상에는 김정희를 향한 허련의 존경과 애정이 담겼다.ⓒ제주의소리

 한겨울 추운 날 바라본 소나무와 잣나무

세한도는 차디찬 한겨울, 쓰러질듯한 늙은 소나무가 한그루가 어린 소나무에 기대어 건너편 푸른 절개의 잣나무 두 그루를 통해 세상을 향한 희망을 표현하려 했던 유배인의 심경이 잘 나타난다.

한 채의 비현실적인 집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각각 두 그루씩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해 극도의 절제와 간략함을 보여 주고 있다. 마른 붓질과 묵의 농담, 간결한 구성 등은 지조 높은 김정희의 내면세계를 잘 보여준다. 

특히 마른 붓에 먹을 묻혀 거친 질감을 가진 그림을 그려내면서 황량한 분위기와 유배 중인 자신의 처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해낸다. 낙관의 위치도 정교하게 나타내고 있어 세한도를 비롯한 추사의 예술을 볼 땐 그림이 어떻게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지도 주목할 만하다.

그림에는 늙어 쓰러질듯 기울어진 소나무와 그 노송을 부축하듯 어린 소나무가 꼿꼿하게 나란히 서 있다. 건너편에는 곧은 잣나무 두 그루가 하늘을 향하듯 곧게 서 있다. 추사는 추운 시절에 그린 그림이라는 유배인의 처지를 비유한 ‘세한(歲寒)’을 제목으로 달면서 자신의 깊은 의도를 전달한다. 

세한도 왼편에는 추사가 남긴 글이 적혀있다. 거기에는 제자 이상적을 향한 고마운 마음이 공자의 글귀와 함께 나타난다.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해 ‘만학집’과 ‘대운산방문고’ 두 책을 부쳐 주고 올해 또 ‘황조경세문편’을 보내줬다. 이 책들은 세사에 늘 있는 책이 아니고 천만 리 머나먼 곳에서 몇 해를 두고 구한 책들로 일시에 얻은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세상의 흐름은 온통 권세와 이득을 좇을 뿐이다. 이 책들을 구하기 위해 이렇듯 마음을 쓰고 힘을 썼으면서도 권세가 있거나 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보내지 않고 바다 멀리 초췌하고 깡마른 유배객에게 보내줬다. 

공자께서는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라고 말씀했다.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본래 사계절 없이 시들지 않는 나무다. 날씨가 추워지기 이전에도 소나무와 측백나무요, 추위가 닥친 후에도 똑같은 소나무와 측백나무인데, 성인께서는 특별히 날씨가 추워진 뒤에 칭찬하셨다. 지금 그대는 나에게 귀양 이전이라고 더 해준 것이 없고, 귀양 이후라고 덜 해준 것이 없다. 성인께서 특별히 칭찬하신 것은 시들지 않는 곧은 지조와 굳센 절개 때문만이 아니니 추운 계절이라는 그 시기에 특별히 느끼신 점이 있으셨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스승이 유배인 처지가 되었음에도 끝까지 정을 놓지 않고 귀한 책들을 보내준 제자에 대한 고마움이 함축적으로 담겼다. 그림에는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의 인장을 찍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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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가 부인 예안 이씨와 주고받은 한글 편지. 제주도로 유배를 간 뒤 김정희는 부인 예안 이씨와 한글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안타깝게도 예안 이씨는 김정희가 편지를 쓴 한 달 뒤에 세상을 떠났다. 편지 내용 중에는 "당신이 쾌히 나으신 소식을 밤낮으로 기다리오. 나는 갑자기 피부병이 발작하여 온 몸이 아니 난 태가 없이 간지러워 밤에 잠을 못자고 고생이오."라는 김정희의 말이 담겼다.ⓒ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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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의 벗 초의선사와 주고 받은 편지. ⓒ제주의소리

 다시 만난 추사와 제주

추사 김정희를 존경해온 이들의 노력 끝에 178년 만에 제주에 돌아오게 된 세한도는 약 두 달간 국립제주박물관에서 공개된다. 영인본이 아닌 15m에 달하는 진본을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전시다. 

국립제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 마련된 ‘다시 만나는 추사와 제주’ 전시는 추사의 삶과 예술, 그를 따른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전시 1부 ‘세한의 시간’에서는 김정희가 제주에 유배 왔을 당시의 감정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영화 제작자 겸 미디어아트 작가인 프랑스의 장 줄리앙 푸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김정희가 제주에서 느꼈을 감정을 제주의 풍경 속에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영상은 적막한 한라산과 오름, 곶자왈에서 추사의 고통과 절망이 표현된 뒤 이윽고 너른 바다가 펼쳐지며 성찰 단계에 이른다. 

이어 추사의 세한도 진본과 청나라와 한국 문인들의 감상 글로 이뤄진 세한도 두루마리를 직접 감상할 수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군자의 곧은 지조를 지키는 행동의 가치를 칭송한 20명의 감상문은 그 정신을 본받고자 했던 마음과 감동을 고스란히 전한다. 

더불어 초고화질 디지털스캐너로 스캔해 그림을 자세히 보여주는 영상을 통해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오랜 시간 갈고 닦은 김정희의 치밀한 필력도 엿볼 수 있다.

전시 2부 ‘송백의 마음’에서는 세한의 시기 송백과 같이 변치 않는 마음을 지닌 김정희의 벗과 후학, 그리고 그의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품을 볼 수 있다. 

전시에는 김정희의 애제자인 허련이 스승을 그린 ‘김정희 초상’과 전각가 오규일이 만들고 추사가 사용한 인장, 추사가 부인 예안 이씨와 주고받은 한글 편지, 친구 초의선사와 주고받은 편지 등이 공개된다. 

이 중에서도 독립운동가 이시영 선생이 쓴 글씨 ‘장무상망’이 제주에서 처음 공개되면서 이목을 끈다. 또 세한도를 기증한 손창근 옹이 앞서 기증한 김정희 말년의 걸작 ‘불이선란도’를 통해 추사 예술의 경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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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걸작 불이선란도. 난초를 사실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서예적 필묵으로 뜻을 그린 독특한 그림이다. 난을 둘러싸고 세 개의 글이 있는데, 각각은 그림을 그린 동기와 제작 방식, 그림이 주인이 바뀌게 된 사연을 알려준다. 글의 위치와 진행 방향은 그림과 조화를 이루며 뛰어난 공간 구성 감각을 보여준다. 가로획과 세로획의 차이가 분명한 개성적인 글씨는 난잎과 어우러지며 김정희가 지향했던 이상적인 묵란도의 경지를 보여준다.ⓒ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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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성재 이시영의 글씨로 해방 이후인 1946년 여름 북경에서 독립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에게 써 준 글씨다. 장무상망은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으로 '세한도'에 찍힌 인장의 글귀이기도 하다. 1949년 세한도에 남긴 그의 발문에서 알 수 있듯이 독립운동가 이시영에게 세한도는 민족 시련 시기에 목숨을 바쳤던 애국선열의 영혼과도 같은 존재였다. ⓒ제주의소리

이번 전시를 위해 국립제주박물관은 세한도 두루마기가 담긴 1930년대 만들어진 나무상자를 특수 제작 상자에 그대로 담아 무진동 차량 등을 통해 육상 이송한 뒤 항공편을 통해 제주로 가져오는 공을 들이기도 했다.

전시는 오는 5일부터 5월 29일까지 열리며, 휴관 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다.

전시와 더불어 오는 23일에는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을 돌아보는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의 특별 강연도 열린다. 오후 2시부터 진행되는 강연은 사전 예약으로 진행되며, 국립제주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국립제주박물관은 “제주에서 보기 힘든 전시인 만큼 포근한 봄날 많이 관람하러 오셨으면 한다. 오랜 여정을 거쳐 다시 제주에서 만나는 세한도는 긴 두루마리 길이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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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가 사용한 인장들. 김정희는 '추사', '완당' 등 100개 이상의 호를 사용했다. 그는 인장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이름과 자호, 좋은 시구를 새긴 수백 개의 인장을 사용했다. 김정희의 인장에 대한 지식과 애정은 오규일, 오경석.오세창 부자에게로 이어졌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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