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구호 공약 요란한 선거로 보내기엔 제주 환경은 이미 위기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또다시 제주 생태계 보고인 곶자왈이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사라진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는 지난달 30일 곶자왈 파괴 논란을 불러온 제주자연체험파크 사업 영향평가협의 동의안을 가결했다. 그동안 도의회가 보여 온 여러 개발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협의안 처리 행태를 볼 때 처음부터 걱정하던 결과여서 놀랍지는 않다. 다만 지금까지 그 어떤 개발대상지보다 생태적 가치가 높은 선흘 곶자왈 가까이 들어서는 개발사업인 만큼 도의회가 이번만큼은 제주 환경을 지키는 마지막 책임을 다하지 않을까라는 혹시나 하는 기대가 부질없는 일임을 확인했을 뿐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특별한 자치를 바탕으로 출범했다. 그 가운데 환경자치가 있다. 환경자치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제주특별자치도를 세계환경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최근 제주사회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스스로 환경자치 가능성을 돌아보게 한다.

제주특별자치도가 권한 이양과 자치권 강화 방안으로 내세운 대표적 제도가 환경부가 갖고 있는 환경영향평가 협의권을 제주특별자치도지사로 이관한 것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제주특별자치도 내 개발사업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는 개발사업 승인권자인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협의권을 갖는다. 환경영향평가 협의권이 제주도지사로 넘어오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는 처음부터 컸다. 개발사업이 우후죽순처럼 이어지고 곶자왈을 비롯한 제주 자연이 크게 훼손되던 터라 개발에 앞장서던 제주도지사가 협의권을 갖는다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 실정을 잘 아는 전문가 중심으로 제주 자연환경에 맞는 현장 중심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 정확성과 내실을 높일 수 있다고 이관 필요성을 강조했다. 환경부보다 강화한 환경보전시책을 시행함으로써 환경보전기능을 높일 수 있다고도 말해왔다.

또 다른 환경영향평가 제도 하나가 이번 논란이 된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도의회 동의다.

또다시 구호와 공약만 요란한 선거로 보내기엔 제주 환경은 이미 위기다. 환경자치 시작은 도민이다. 다가오는 지방선거, 심판하는 유권자로서 환경자치를 시작해보자. ⓒ제주의소리
또다시 구호와 공약만 요란한 선거로 보내기엔 제주 환경은 이미 위기다. 환경자치 시작은 도민이다. 다가오는 지방선거, 심판하는 유권자로서 환경자치를 시작해보자. ⓒ제주의소리

현재 제주특별자치도환경영향평가 조례를 보면 환경영향평가서는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다음 도의회로부터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제주특별자치도는 도의회가 사실상 환경영향평가를 최종 승인하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도의회 동의절차는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오류나 부실을 바로잡고 도민사회 의견 등을 반영해 일방적 사업추진에 대한 견제기능을 갖춤으로써 제주환경보전 기능을 한층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환경보전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환경영향평가 심의 제도나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도의회 승인 과정을 볼 때 제주만이 갖는 환경자치 제도가 제 역할을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동안 곶자왈을 비롯한 제주자연환경을 크게 훼손하는 수많은 개발사업이 있었으나 도의회가 제동을 건 사례는 2020년 4월 송악산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이 유일하다.

송악산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은 원희룡 전 지사가 반대 입장을 밝힌 상태여서 오롯이 도의회가 제주환경보전과 도민 뜻을 받들어 반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머지 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 동의절차는 통과의례 수준이다.

지난달 30일 도의회에서 통과된 제주자연체험파크는 대표적 사례로 남게 됐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제주자연체험파크 사업지는 세계적 멸종위기식물인 제주고사리삼 대규모 서식지인 데다 다른 희귀식물들도 여럿 분포한다. 또 튜뮬러스를 비롯한 보전가치가 높은 지형 지질인 데다 동백동산 습지보호구역과 연결된 습지도 군데군데 있다.

지금까지 제주에서 있었던 어떤 개발사업지보다 생태적 가치가 높은데도 도의회는 압도적 다수로 환경영향평가 협의서를 동의했다.

도의회는 도민 힘으로 만들어낸 환경자치 제도를 스스로 무력화하고 있지 않나 돌이켜봐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도의회 동의절차에 대해 제주특별자치도는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삭제 필요성을 말해왔다. 지난 2020년에는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조례 개정 움직임도 있었다.

당시 환경단체는 사업승인 기관인 제주특별자치도가 한편에서는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을 위촉, 운영하고 협의기관으로 기능을 하는 상황에서 환경영향평가 심의에 대한 일방추진을 막기 위해서는 도의회 동의절차는 필요하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도의회 스스로 동의절차를 통과의례로 전락해버림으로써 또다시 동의절차 무용론을 부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환경수도 조성을 목표로 두고 도민 환경자치 역량 강화를 핵심전략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체 공론과 협의, 합의는 힘들고 돈이 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대부분 마을과 관련된 개발사업에는 돈이 오간다. 사업자와 마을간 공식적 협약에 따른 지원금이든 모르게 오가는 뒷돈이든 개발사업마다 돈이 해결사 노릇을 하는 일이 많다.

이번 제주자연체험파크 사업추진 과정에서 강하게 반대하던 선흘1리 마을도 사업자와 협약서를 작성하고 사업에 동의했다. 사업자가 마을에 주기로 한 돈은 10억 원이다. 곶자왈이든 오름이든 제주자연 훼손에 따른 피해가 어느 한두 마을 문제만은 아님에도 마을간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된다. 그 과정에서 돈이 오가고 찬성과 반대를 놓고 마을 주민 간 갈등이 생기고 공동체가 무너지는 일도 많다.

또 인허가와 관련된 문제에 공공연하게 돈이 오가면서 공정성과 일관성을 해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목적은 개발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예측·평가함으로써 환경보전방안 등을 마련하는 데 있다. 마을간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사업자와 마을간 오가는 돈이 환경영향평가 목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되돌아보고 대안도 찾아야 한다.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숱한 생명이 걸린 문제인 자연환경 파괴를 돈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모습은 환경자치와 거리가 멀다. 제주환경수도를 위한 자치 역량은 도민 의식을 비롯한 행정, 나아가 사업 주체까지 책임을 다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제 곧 지방선거다. 새롭게 제주 도정을 이끌 도지사와 도민을 대표하는 도의원들이 뽑힌다. 또다시 구호와 공약만 요란한 선거로 보내기엔 제주 환경은 이미 위기다. 환경자치 시작은 도민이다. 다가오는 지방선거, 심판하는 유권자로서 환경자치를 시작해보자. / 김효철 객원논설위원,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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