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69) 말은 요구니, 똥은 싸구니, 먹성은 황소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말은 요구리, 똥은 싸구리, 머긋은 황밧갈쇠(말은 요구니, 똥은 싸구리, 먹성은 황소)

 * 요구리 : 약아 빠진 사람
 * 머긋 : 먹성
 * 황밧갈쇠 : 밭 잘 가는 황소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말은 하라면 청산유수에다 약삭빠르기 이를 데 없는데, 하는 짓이라곤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말쟁이에다 볼일도 큰 것 작은 것 가릴 줄 모르는가 하면 먹성만은 밭 가는 황소 식량이라 함이다. 
  
이럴 수가. 말만, 말만 앞서서 무엇이든 금방 해낼 것 같은데, 행동이 영 말 같지   않다. 말 같기는커녕 대소변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밥은 양푼 치기로 먹어 치운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몸값 못하니 그야말로 영락없는 ‘먹튀’다.
  
’요구리’는 예전에 많이 쓰던 말이다. 말만 잘해 요구리가 아니다. 거짓말을 잘해 남을 곧잘 속이기 잘하고 상대를 좋은 말로 살살 꼬드겨 개평은 잘하면서 제 것은 하나도 남에게 줄 줄 모르는 아이를 일컬어 요구리라 했던 것이다. 표준어 깍쟁이와 유사한 뜻이다. 
  
골목에도 동네에도 학교에도 그런 아이가 한둘은 꼭 있었다. 속아서 눈 흘기다가고 어르고 달래는 바람에 그냥 넘어갔다가 잊을 만하면 다시 당했다. 요구리는 눈치며 낌새가 약삭빠른 아이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기가 막히게 말을 잘했다. 없던 게 금방 하늘에서 떨어질 것처럼 말로 못하는 게 없었다. 결국엔 말이 거짓말이 되고 주위로부터 미움을 샀지만, 그 버릇은 금세 도졌다. 천성에 버릇이 몸에 배어 고치지 못했던 아이가 요구리다.
  
“아이고, 그 아이 말가? 그 아이 입으론 ᄒᆞ지 못 ᄒᆞᆯ 일이 신 줄 알암댜? 가이 말 ᄀᆞᆮ는 것 듣당 보민 어디 ᄄᆞᆫ 시상에 가 싯는 것 닮낸 ᄒᆞ난. 말 장시에다 거짓말 장시여. 경ᄒᆞ난 가이한티 속지 아니ᄒᆞ쟁ᄒᆞ민 눈 크게 뜨곡 정신 바짝 ᄎᆞ려야 ᄒᆞᆫ다이? 맹심ᄒᆞ라. 알아들엄시냐?(아이고, 그 아이 말이냐? 그 아이 입으로는 ᄒᆞ지 못 ᄒᆞᆯ 일이 있는 줄 아니? 그 아이 말 하는 것 듣다 보면 어디 딴 세상에 가 있는 것 같다고 하니까. 말쟁이에다 거짓말쟁이여. 그러니 그 아이한테 속지 아니하려면 눈 크게 뜨고 정신 바짝 하려야 한다 이? 명심하라. 알아듣느냐?”)
  
그러면서 하는 행동거지는 어린아이만도 못한 데다 먹기는 황쇠 촐(황소 꼴) 먹듯 하니 한심한 일이 아닌가. ‘머긋은 황밧갈쇠’란 말이 귀에 먼 듯 가까워 유난히 정겹고 익숙하게 온다.
  
옛날에도 제주 사람들에게는 사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심안(心眼)이 있었다. 대충 넘어가지 않고 ,그 속으로 들어가 조근조근 헤쳐 가며 비판하는 걸 놓치지 않았다.
  
‘말은 요구리, 똥은 싸구리, 머긋은 황밧갈쇠’
  
다시 한번 읽어 보게 한다 한 사람의 인품을 이 이상 신랄하게 나무랄 수 있을까. 한마디로 함축했다. 그러면서 세상을 풍자했으니 놀랍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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