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랑쉬굴 유해 발굴 30주년 특별전 ‘다랑쉬 30’ 9월 30일까지 4.3평화기념관
다랑쉬굴 진상규명 과제 공론화 계기…유족 “다른 것 말고 오직 명예회복 남은 소원”

 

 

“44년 동안 차가운 다랑쉬굴 안에 누운 채로 허연 백골로 변한 4.3강경토벌의 희생자들의 유해는 행정당국의 졸속처리에 따라 그 한 많은 세월의 기다림과 참혹함을 뒤로하고 한 줌 재로 변해 바다에 뿌려져야 했다.”(다랑쉬굴 유해 발굴 30주년 기념 특별전 여는 글 中)

1948년 12월, 차디찬 겨울날 피바람을 피해 동굴로 숨어든 무고한 민간인들은 토벌대가 피운 연기에 질식돼 처참하게 희생됐다. 44년이라는 한 맺힌 세월을 끝내고 겨우 빛을 보나 했던 이들은 행정당국에 의해 재빠르게 화장된 뒤 바다에 뿌려졌다. 

그 이후로도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다랑쉬굴의 참혹함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랑쉬굴 유해 발굴 30년은 다시 말해 다랑쉬굴 봉쇄 30년이기 때문이다.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4.3연구소, 제주민예총, 제주도는 11일부터 9월 30일까지 다랑쉬굴 유해 발굴 30주년 기념 특별전 ‘다랑쉬 30’을 개최한다. 사진은 다랑쉬굴 발굴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희생자 유해. ⓒ제주의소리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4.3연구소, 제주민예총, 제주도는 11일부터 9월 30일까지 다랑쉬굴 유해 발굴 30주년 기념 특별전 ‘다랑쉬 30’을 개최한다. 사진은 다랑쉬굴 발굴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희생자 유해. ⓒ제주의소리

아직도 다랑쉬굴 안에는 급하게 유해를 수습하고 남은 잔해들과 4.3 당시 희생자들이 사용했던 유물들이 쌓여 있지만 제대로 된 정식 발굴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4.3연구소, 제주민예총, 제주도는 11일 오후 4시 4.3평화기념관 2층에서 다랑쉬굴 유해 발굴 30주년 기념 특별전 ‘다랑쉬 30’을 개막식을 개최했다.

11일부터 오는 9월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특별전에는 다랑쉬굴 발굴의 역사적 의미를 돌아봄과 동시에 유해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죄스러움이 담겼다. 전시는 박경훈 4.3평화재단 전시자문위원장이 총감독했다.

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 다랑쉬굴의 최초 발견은 1991년 12월 22일, 연구소 현장조사팀인 김동만, 김기삼, 김은희, 김은영과 지역주민 문은철 씨가 동굴을 찾으며 시작됐다. 

문 씨의 기억을 바탕으로 다랑쉬굴을 찾던 조사팀은 동굴을 찾지 못하다 김동만, 김기삼이 문 씨가 안내한 장소와는 다른 동굴을 최초로 발견하게 됐다. 

하지만 발견의 파장 등을 고려해 안내자에게도 알리지 않고 현장조사를 마쳤으며, 이후 네 차례에 걸친 단독·합동 조사를 통해 다랑쉬굴의 참상이 세상에 드러났다. 

개막식에는 다랑쉬굴을 발견한 김기삼 사진작가와 김은희 4.3연구소 연구실장을 비롯해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 △양정심 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 △오임종 4.3희생자유족회장 △강철남 제주도의회 4.3특위원장 △김승배 도 특별자치행정국장 △강민철 도 4.3지원과장 등이 참여했다.

더불어 다랑쉬굴에서 희생된 함명립(당시 20세) 씨의 여동생인 함복순(79) 어르신도 특별전을 찾아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다. 

어르신은 4.3으로 오빠와 어머니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오빠 함명립이 사라진 뒤 아버지 함평도는 세화지서에 끌려가 모진 구타를 당했고, 어머니 채만세는 도피자 가족이라는 누명을 쓰고 1948년 12월 4일 상도리 연두망에서 대신 살해됐다.

함 어르신은 특별전을 찾아 “아무것도 모르는 6살 때 4.3을 겪었다. 우리 오빠가 희생자라고만 인정받아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왔다”며 “이제 다른 소원은 아무것도 없다. 명예만 회복시켜줬으면 고맙겠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4.3연구소, 제주민예총, 제주도는 11일 오후 4시 4.3평화기념관 2층에서 다랑쉬굴 유해 발굴 30주년 기념 특별전 ‘다랑쉬 30’을 개막식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4.3연구소, 제주민예총, 제주도는 11일 오후 4시 4.3평화기념관 2층에서 다랑쉬굴 유해 발굴 30주년 기념 특별전 ‘다랑쉬 30’을 개막식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개막식에 참석한 함복순 어르신은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개막식에 참석한 함복순 어르신은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특별전 1관에서는 제주4.3과 다랑쉬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소개된다. ⓒ제주의소리

고희범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번 특별전을 통해 발굴의 역사적 의미를 돌아보려 한다”며 “유해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죄스러움을 안고 다랑쉬굴 사건의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 다랑쉬굴의 보존과 기념사업 등의 과제를 공론화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다랑쉬굴의 아픔과 죄스러움을 오롯이 사진으로 담아낸 김기삼 작가는 “다랑쉬굴의 발견은 4.3문제 해결을 위한 어떤 강력한 메시지가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이름 석자 새겨진 영령들의 위령비가 세워지는 것이 소망이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총 2관으로 구성됐으며, 1관에서는 제주4.3과 다랑쉬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소개된다. △1948년 겨울, 다랑쉬굴의 피신 그리고 학살 △4.3학살 쇠망치, 1992 다랑쉬굴 유해발견 △봉인된 ‘다랑쉬굴’, 망각된 ‘다랑쉬굴 유해발굴’ 사건 △다시 보는 다랑쉬굴 유해 발굴 10주년 ‘살아남은 자들의 흰 그늘’ 등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랑쉬굴에서 아버지와 삼촌이 희생된 한 맺힌 사연이 담긴 유족의 친필편지와 당시 경찰과 행정기관의 은폐를 위한 발 빠른 대응을 담은 회의록, 다랑쉬굴 발견 유골 인도계획 기록 등이 공개된다.

1관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다큐멘터리 ‘다랑쉬의 슬픈 노래’를 만나볼 수 있다. 제주 최초의 독립영화로 다랑쉬굴 발견과정과 사건 경위, 희생자 동굴 봉쇄가 이어지는 과정이 담긴 감독 김동만의 영상이다. 

이어 다랑쉬굴로 피신하게 된 제주4.3의 시작과 미군정, 이승만의 강경토벌 ‘초토화작전’이 소개되고 유해를 발굴하기까지의 시간적 과정이 잘 소개된다. 더불어 다랑쉬굴을 발견, 발굴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박경훈 전시 총감독의 설명을 듣고 있는 참석자들. ⓒ제주의소리
박경훈 전시 총감독의 설명을 듣고 있는 참석자들. ⓒ제주의소리
1992년 다랑쉬굴이 발견된 이후 행정당국은 굴 입구를 봉쇄하고 주변에 철조망을 치는 등 사람들의 왕래를 막았다. ⓒ제주의소리
1992년 다랑쉬굴이 발견된 이후 행정당국은 굴 입구를 봉쇄하고 주변에 철조망을 치는 등 사람들의 왕래를 막았다. ⓒ제주의소리
다랑쉬굴 유해 발굴 당시 화장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다랑쉬굴 유해 발굴 당시 화장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다랑쉬굴은 1991년 12월 5일 제주4.3연구소가 잃어버린 마을에 대한 증언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시 세화리 주민 문은철(당시 57세) 씨가 “다랑쉬 근처 굴속에 시신이 있다”고 제보하면서 확인된 것. 

이후 네 차례에 걸쳐 공식조사가 이뤄졌고 당시 굴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여성을 포함한 11구의 유해가 확인됐다. 

조사 과정에서 토벌에 동행한 민보단원들이 “굴 입구에 불을 놓아 질식사 시켰다”는 증언이 나옴으로써 억울한 이들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세상에 알려진 4.3의 참상은 4.3진상규명운동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행정당국은 다랑쉬굴을 봉쇄한 뒤 ‘허가 없이 무단출입을 금함’이라는 경고문을 붙여 철조망을 둘렀고, 발굴된 희생자들의 유해를 유족 의사와 다르게 급히 화장한 뒤 바다에 뿌리도록 했다. 

이 같은 아픔이 서린 다랑쉬굴의 발견과 발굴, 현재진행형인 참혹함이 담긴 1관 전시에 이어 2관에서는 다랑쉬굴을 가장 먼저 들어가 사진기록으로 남긴 김기삼 작가의 사진전이 펼쳐진다. 

일본에서 사진을 전공한 김 작가는 제주4.3연구소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모든 4.3활동을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그러던 중 구좌읍 4.3조사단 일원으로 다랑쉬굴 유해발굴과 인연을 맺어 김동만 조사원과 함께 최초로 다랑쉬굴 현장을 발견하게 됐다. 이후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찬 굴속의 유해를 최초로 촬영했다. 

이번 사진전은 당시 다랑쉬굴 유해를 기록한 유일한 컬러사진을 볼 수 있음과 동시에 그가 촬영했던 당시 사진 중 중요한 것을 골라 처음으로 정식 작품전을 연다는 의미가 더해졌다. 

박경훈 전시 총감독은 “44년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갇혀 지낸 희생자들을 발견하고서도 아직도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이번 전시를 열게 된 근본적인 이유”라고 소개했다. 

이어 “지금 다랑쉬굴 부지가 개인 소유로 돼 있는데 언제 개발될지 모르는 위기에 처했다. 희생자분들께서 바다에 뿌려져 사라진 지금, 그들이 머물렀던 땅마저 사라진다면 다랑쉬굴은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를 통해 다랑쉬굴 유해발견, 발굴의 중요성을 기억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미를 다시 확인하길 바라고 과거에 대한 성찰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 오른쪽 바다에 화장한 유해를 뿌리는 유가족들의 모습에서 4.3으로 가족을 잃은 설움과 한이 묻어난다. ⓒ제주의소리
사진 오른쪽 바다에 화장한 유해를 뿌리는 유가족들의 모습에서 4.3으로 가족을 잃은 설움과 한이 묻어난다. ⓒ제주의소리
김기삼 작가의 사진전 내부 전경. ⓒ제주의소리
김기삼 작가의 사진전 내부 전경. ⓒ제주의소리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개막식 참석자들. ⓒ제주의소리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개막식 참석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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