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⑧ 좀녜 삼춘이 물질하는 바당밧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환속해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공직 퇴임 후에는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 1~26코스를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탐라에서 제주에 이르는 설화와 전설, 신화와 역사를 넘나 드는 시인의 해박하고 담백한 언어를 올레길에서 듣는 재미에 빠져 보시라. / 편집자 글

‘쇠소깍’ ᄃᆞ리에서 제주올레 6코스를 순례하자니, 육자배기 가락 없이는 내 오늘 해 지것다. “내 정은 청산이요. 님의 정은 녹수로구나. 녹수야 흐르건만, 청산이야 변할소냐.” 헤 ~~~

‘쇠소깍 용소’ 바위에 앉으니 바람이요, 일어서니 구름이네. 가세 가세 우리 걷세 닻 올리면 지귀섬이 마중 오는 올레, 노를 저으니 설피 섬에 님의 물결 ᄒᆞᆫ망사리 안아 오시는, 오늘 여덟 번째 제주올레 순례는, 언제나 머정 좋은 좀녜 삼춘이 물질하는 바당밧이 너울지는 제주올레 6코스이다.

6코스 출발점(왼쪽 상단)과 효돈천. ⓒ윤봉택
6코스 출발점(왼쪽 상단)과 효돈천. ⓒ윤봉택

6코스는 쇠소깍다리에서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까지 하효동·보목동·토평동·동홍동·서귀동 등 다섯 지역의 법정마을과 효돈동·정방동·송산동·중앙동·천지동 등 다섯 구역 행정동을 지나면서 쇠소깍·섶섬·왈종미술관·정방폭포·서복전시관·소암전시관·서귀진성·이중섭미술관·서귀포매일올레시장을 만나는 11km, 28리 올레로써, 2007년 10월 21일 제주올레 2코스로 개장되었다가 6코스로 변경되었다.

제주올레 26개 코스 가운데 6코스는 하효마을 구간에는 자체적으로 지명과 문화사를 설명하는 안내 표시가 잘 되어 있는 곳이라, 초행길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6코스는 느리게 아주 느리게 진 육자배기 장단으로 걸어야 모든 게 보인다. 쇠소깍다리에서 효돈천에 비추는 서귀포시 토평동 산15-1번지 백록담을 바라보면 이미 걷기 전부터 설렘이 시작된다.

해신당-쇠소깍-쇠소깍 하구. ⓒ윤봉택
해신당-쇠소깍-쇠소깍 하구. ⓒ윤봉택
쇠소깍 용소. ⓒ윤봉택
쇠소깍 용소. ⓒ윤봉택

나무데크 따라 쇠소깍으로 내려가면 하구를 중심으로 일뤳당·권씨조상당·용짓당·하효본향당·해신당이 차례로 보이고, 솔바람 새이로 용이 살았다는 ‘쇠소깍 용소’가 보인다. ‘지귀섬’ 다가오는 하구를 지나 서쪽으로 가면 ‘검은모래 해변’ 건너로 ‘소금막, 하효항’이 나타난다.

지귀섬-검은 모래 소금막-하효항(왼쪽 줄), 웃수물 빈지 바위-강시기바위-알수물(오른쪽 줄). ⓒ윤봉택
지귀섬-검은 모래 소금막-하효항(왼쪽 줄), 웃수물 빈지 바위-강시기바위-알수물(오른쪽 줄). ⓒ윤봉택
게우지코지. ⓒ윤봉택
게우지코지. ⓒ윤봉택

해변 올레 따라 마을에서 세운 정겨운 안내판 석이 유적마다 지명을 안내하고 있어 참 좋다. 포구를 벗어나면 ‘웃수물’과 ‘소금막’ 사이에 있는 ‘빈지바위’가 있다. ‘빈지’는 부엌과 상방 사이에 세워진 두 기둥 사이를 가로지르는 널판을 말하는 제주어이다. ‘강시기바위’ 아래에는 ‘알수물’이 솟아나 포구의 목마름을 달래고, 포구 밖으로는 ‘게우지코지’와 ‘생이돌’이 해변에서 들물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생이돌-동바위-하효좀녜불턱 맹지미개. ⓒ윤봉택
생이돌-동바위-하효좀녜불턱 맹지미개. ⓒ윤봉택

‘동바위’를 날리면서  하효마을 좀녜불턱 아래로 ‘고븐데기’ 지나면, 높새바람이 불거나 하늬바람이 불어와도 잔잔하여 바당밧을 일굴 수 있다는 ‘맹지미개’ 해안이 봄날 밭에 일하는 좀녜삼춘을 부른다.

소금코지-배내듯개-큰업통-골매-설피섬 섶섬. ⓒ윤봉택
소금코지-배내듯개-큰업통-골매-설피섬 섶섬. ⓒ윤봉택

지난날 소금을 생산하였던 이곳을 마을을 달리하며 하효동에서는 ‘소금코지’, 보목마을에서는 ‘쫀물코지’, 다르게 부르는 바당밧을 사이에 두고, 썰물 때 포구에 배를 정박하지 못하면, 이곳에 배를 정박하였던 ‘배내듯개’가 정겹다. 하효마을 애기좀녜들이 물질 연습하였던 ‘큰 물통’, 마을과 마을의 경계를 이뤘던 ‘골매’를 넘어서면, 보목동 산1번지 ‘설피섬’이 해변 기슭으로 다가온다. 삼도파초일엽의 북방 한계선인 이 섶섬에는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의 전설이 는개처럼온 섬을 안아 몸살을 하는 날엔 바다가 푸르다.

제지기오름-보목포구-보목포구에서 자리를 손질하는 좀녜삼춘들. ⓒ윤봉택
제지기오름-보목포구-보목포구에서 자리를 손질하는 좀녜삼춘들. ⓒ윤봉택

해발 95m의 제지기에 오르면 포구를 떠난 내 작은 배가 낮게 낮게 밀물처럼 보목포구로 닻을 내린다. ‘자리 삽서, 자리삽서, 보목리 자리삽서’ 청하지 않아도 보목리 자리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배개’ 풍경을 살피며 포구에 도대불을 지피면 마을의 우잣담이 올레 삼촌 따라 그늘캐가 되어 바다로 간 좀녜삼춘을, ‘세경물’ 지나 ‘새보미’ 물살로 몸을 풀게 하신다.

보목포구 도대불-세경물 해안-새보미 해안-보목마을 좀녜 삼춘들. ⓒ윤봉택
보목포구 도대불-세경물 해안-새보미 해안-보목마을 좀녜 삼춘들. ⓒ윤봉택
보목마을 강부자 좀녜삼춘. ⓒ윤봉택
보목마을 강부자 좀녜삼춘. ⓒ윤봉택

여기에서 보목마을 강부자 좀녜삼춘 일행을 만났다. 을유생 78세 이곳에서 태어나 마을 낭군을 만났다. 땔감이 절대 부족했던 한 시절, 그때가 1965년 나이 20대에 설피섬에 가서 설피(지들꺼)를 하고 물에 둥둥 띄워 안고 헤엄쳐서 섬도코지를 지나다니셨다는 산증인이시다. 오래도록 무병장수하시길 기원드린다.

앞개 해안-정술내-볼레낭 숲-볼레낭. ⓒ윤봉택
앞개 해안-정술내-볼레낭 숲-볼레낭. ⓒ윤봉택

‘앞캐’ 넘어 ‘정술내’를 살피면 그 기슭에 보목마을의 상징 ‘볼레낭’이 나무에 기대어 숱한 인고의 세월 견뎌 왔음을 느낄 수 있다. 도내 남아 있는 보리장나무 가운데 가장 수령이 오래된 게 아닌가 싶다.

엉캐물 진동산-연듸기 해안-큰개. ⓒ윤봉택
엉캐물 진동산-연듸기 해안-큰개. ⓒ윤봉택
조근개 동애기 해안-조근개 바위-섬도코지(시계 방향). ⓒ윤봉택
조근개 동애기 해안-조근개 바위-섬도코지(시계 방향). ⓒ윤봉택

여기에서 ‘엉캐물. 진동산’ 지나면 ‘연듸기, 큰개’가 있다. ‘조근개, 동애기’로 가는 해안 숲길을 따라가면 문득 설피섬과 가장 가까운 ‘섬도코지’가 다가온다. 거북이 머리 닮은 포구라 하여 ‘구두미개’라고 부르는 해안에는 지난날 고즈넉한 포구는 사라지고 휴게 시설이 되어 있어 아쉽다.

구두미개-누알 해안-소천지(왼쪽 줄)와 누알 가는 올레. ⓒ윤봉택
구두미개-누알 해안-소천지(왼쪽 줄)와 누알 가는 올레. ⓒ윤봉택
쌈싸니코지-토평동 개왓-흰동산-큰도리통-검은여. ⓒ윤봉택
쌈싸니코지-토평동 개왓-흰동산-큰도리통-검은여. ⓒ윤봉택

‘구두미개’ 지나 ‘누알’로 이어진 올레를 따라가면 백록담이 비추는 ‘소천지’가 있다. ‘쌈싸니코지’와 ‘방석덕’을 넘으면 서귀포시 하수종말처리장이 있다. 해변 길 따라 내려서면 토평마을 ‘개왓, 군두물, 흰동산, 큰도리통’ 해안가에 성담이 즐비하게 다가온다. 논이 귀했던 지난 시절, 이곳에는 ‘검은여물골’을 만들어 ‘검은여물’을 이곳까지 연결하여 논농사를 지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발길을 머물게 한다.

검은여 올레. ⓒ윤봉택
검은여 올레. ⓒ윤봉택
검은여물골 족욕-검은여 해안선-문섬. ⓒ윤봉택
검은여물골 족욕-검은여 해안선-문섬. ⓒ윤봉택

‘검은여해안’ 물골에 흐르는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면, 발아래가 ‘믠섬’이다. 『지영록』의 저자 이익태 목사가 1696년 9월 17일 임기를 마치고 상경하려 조천포구로 갔다가 후임자가 늦어진다는 소식에 문섬을 보려고 일부러 피리 부는 노비와 관기 데리고 서귀진성으로 와 기다렸다가 19일 아침 일찍 장선(粧船)을 타고 문섬으로 갔다. “섬에 도착해보니 섬은 하나의 거대한 돌 봉우리었다. 온통 하얀데 마치 눈과 같고 섬 위에 붉은 나무 등 향기 나는 풀들이 사시사철 봄처럼 자라고 있다. 암석 형상이 용이 누운 듯 혹은 짐승의 발자국처럼 하여 서로 무늬를 이루었고 섬 중간 지점에는 바위들이 넓기가 수 칸짜리 방만큼 하며, 혹 작은 것은 벌집과도 같은데 바위들이 마치 벽에 분칠한 것 같았다. 벼랑에 올라앉으니, 마치 온돌방 같은데 앞바다는 바다와 하늘이 한 색을 이루어 마치 조각배를 타고 은하수를 건너가는 듯한 황홀한 느낌을 받았다”라고 감상문을 적었다. 문섬 수중에는 난류가 흐르고 있어 사시사철 아열대 어종이 서식하며 각종 희귀 산호들이 자라고 있어 국내 최고의 수중 생태계의 보고로써 다이버의 요람이기도 하다.

정방폭포 해안-소정방 물맞이-고는무죽시 소정방해안-소정방 중간 인증 스탬프. ⓒ윤봉택
정방폭포 해안-소정방 물맞이-고는무죽시 소정방해안-소정방 중간 인증 스탬프. ⓒ윤봉택

‘고는무죽시’라 부르는 소정방에 들려 백중날 물맞이하면 온갖 신경통이 다 낫는다는 물줄기 따라가면, 차례로 ‘큰무죽시 정방폭포·왈종미술관·정모시 물레방아터·소암전시관·서귀진성·이중섭미술관·서귀포매일올레시장’이다. 유적 가운데 서귀진성을 살펴보면 500년 전에 정방폭포 위 ‘정모시’에서 물을 끌어다가 만든 샘물을 살펴보시길 권한다.

남영호조난자위령탑-왈종미술관-큰무죽시 정방폭포(왼쪽 줄), 소암전시관-이중섭거리-서귀포매일올레시장(오른쪽 줄). ⓒ윤봉택
남영호조난자위령탑-왈종미술관-큰무죽시 정방폭포(왼쪽 줄), 소암전시관-이중섭거리-서귀포매일올레시장(오른쪽 줄). ⓒ윤봉택

이렇게 진육자배기 장단으로 걷다 보면 “내 정은 청산이요. 님의 정은 녹수로구나.”의 제주올레 여행자센터가 기다린다.

제주올레 여행자 센터. ⓒ윤봉택
제주올레 여행자 센터. ⓒ윤봉택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는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이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코너로 격주로 게재합니다. 

# 필자 윤봉택 시인은

법호 相民.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