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현장] 이미 10여년 전부터 자생군락지 빠르게 고사 …4년 새 1만 2000그루 죽어

제주 한라산 구상나무는 세계적인 희귀종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죽어가고 있어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제주의소리
제주 한라산 구상나무는 세계적인 희귀종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죽어가고 있어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제주의소리

제주 한라산 진달래밭 대피소부터 백록담까지 뾰족한 잎들을 하늘로 추켜세우며 절경을 자랑하는 구상나무. 구상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로 한라산과 지리산, 덕유산 등 고지가 높은 산악지대에서 살아가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침엽수종이다.

특히 제주도 한라산에는 구상나무 자생 군락이 형성돼 있으며, 그 모습 역시 내륙지방과 달리 굵은 가지가 촘촘하게 붙어 자라는 색다른 매력을 뽐내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등 기후위기로 한라산에서 자라는 구상나무가 계속 고사하고 있어 생존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종으로 보호하고 있다고는 하나 기후위기까지 막을 수 없어 확실한 보존대책 마련이 제기되고 있다. 

[제주의소리]가 지난 19일 제주지방기상청·세계자연유산본부 등과 한라산을 동행 취재한 결과 진달래밭 대피소 너머 정상부까지 한라산에는 앙상한 뼈마디를 드러낸 채 생명을 잃은 구상나무가 수없이 존재했다. 

한없는 푸르름을 자랑하던 구상나무 군락지는 듬성듬성 빈 곳이 가득했고,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져있거나 말라 비틀어진 채 간신히 서 있는 구상나무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라산 해발 1800m 고지 구상나무 군락지. 많은 구상나무들이 말라 죽거나 썩어가고 있었다. 구상나무의 위기는 기후변화에 따른 태풍과 가뭄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제주의소리
한라산 해발 1800m 고지 구상나무 군락지. 많은 구상나무들이 말라 죽거나 썩어가고 있었다. 구상나무의 위기는 기후변화에 따른 태풍과 가뭄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제주의소리
한라산 해발 1800m 고지 구상나무 군락지. 많은 구상나무들이 말라 죽거나 썩어가고 있었다. 구상나무의 위기는 기후변화에 따른 태풍과 가뭄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제주의소리
한라산 해발 1800m 고지 구상나무 군락지. 많은 구상나무들이 말라 죽거나 썩어가고 있었다. 구상나무의 위기는 기후변화에 따른 태풍과 가뭄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제주의소리

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김종갑 연구사는 구상나무 군락지에서 “한라산에는 진달래밭 입구부터 정상부까지 구상나무가 많이 있다”며 “하지만 최근 태풍이나 가뭄 같은 기후변화로 구상나무가 계속 죽어가면서 보다시피 군락지가 황폐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사의 설명에 따르면 구상나무 고사는 10여 년 전부터 발생했다. 2012년 볼라벤 등 제주를 강타한 태풍과 이듬해 찾아온 가뭄으로 많은 구상나무가 고사한 것. 더불어 높아진 봄철 온도와 낮아진 한계수명 등 기후변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와 ㈜동신지티아이가 발표한 ‘최근 4년간 한라산 구상나무의 분포변화’ 조사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4년간 한라산 구상나무 1만2957본이 고사했다. 분포면적도 2017년 648헥타르(ha)에서 2021년 606ha로 32ha, 5%가 줄어들었다. 

한라산 구상나무는 백록담을 기준으로 동쪽 사면에 50% 이상 분포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북사면과 남사면, 서사면 순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부분 사면에서 개체 수가 줄어들었으나 특히 동사면이 전체의 66.1%를 차지하며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해발고도를 살펴보니 구상나무는 1501m에서 1600m까지 약 100m 구간 단위에서 30.8%로 가장 많이 고사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1800m 구간까지 더하면 75.8%로 늘어났다. 

종합해보면 앞서 언급한 대로 한라산 구상나무의 고사 원인으로는 기후변화에 따른 태풍(강풍)과 고온, 가뭄, 적설량 감소 등 자연재해가 꼽힌다. 결국 구상나무의 죽음은 기후위기의 척도가 되는 셈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는 전수조사를 통한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구상나무 100본을 선발, 생장률 분석을 통한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 

더불어 고랭지시험포 양묘 기반을 늘리고 한라산 자생지 4개 지역에 4000본을 시험 식재하는 등 구상나무 복원시험을 진행 중이다. 2019년에는 구상나무 보전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국제심포지엄도 개최했으며, 6개 기관이 모인 연구협의체를 구성하기도 했다. 

여기에 제주지방기상청이 운영하는 백록담 기후변화관측소의 관측 자료가 더해지면서 제주의 소중한 자연 자원인 구상나무의 생존에 힘을 보태고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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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기상청은 지난 19일 오후 1시 20분께 한라산 해발 1909m에 설치한 백록담 기후변화관측소 현판식을 개최했다. 관측소에서 모인 기상 자료들은 구상나무 고사 원인 파악 등 기후변화 연구에 사용될 예정이다. ⓒ제주의소리
제주지방기상청은 지난 19일 오후 1시 20분께 한라산 해발 1909m에 설치한 백록담 기후변화관측소 현판식을 개최했다. 관측소에서 모인 기상 자료들은 구상나무 고사 원인 파악 등 기후변화 연구에 사용될 예정이다. ⓒ제주의소리

구상나무 고사 원인을 분석하는 것과 더불어 제주조릿대에 대한 조사, 연구도 진행 중이다. 

제주조릿대는 죽어가는 구상나무와 달리 왕성한 번식력으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한라산 자생식물인 제주조릿대는 다른 식물들의 생육을 가로막으면서까지 뻗어 나가는 그야말로 광폭 행보를 보인다.

김 연구사는 “기후변화에 따라 구상나무가 고사하더라도 어린나무들이 잘 자라준다면 어느 정도 유지될 텐데 제주조릿대의 과다 번식으로 이마저 힘든 상태”라고 설명했다.

제주조릿대가 땅을 뒤덮으면서 한라산 아고산대에서 자라는 제주 특산식물의 설 자리를 없애고 있어 문제가 발생하는 것. 구상나무 역시 번식을 위한 씨앗을 뿌리지만, 조릿대가 이를 방해하고 있어 문제다.

옛날에는 한라산에 방목한 말들이 조릿대를 먹어 어느 정도 제어됐으나, 한라산국립공원 지정 이후 방목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생존하기 쉬운 환경이 됐다.

이에 한라산연구부는 제주조릿대를 제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실제로 진달래밭 대피소 인근 조릿대를 제어한 결과 털진달래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에 한라산연구부는 조릿대 ‘제거’가 아닌 ‘제어’를 통해 다양한 식물의 성장을 돕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제주조릿대 역시 타시도 조릿대와 구분되는 제주 특산종이기 때문에 한라산 아고산대에서 자라는 식생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조릿대를 제어하겠다는 목표다. 현재 제주조릿대는 한라산 1400m 이상 지대 95%를 차지할 만큼 많이 분포하며 밀도 역시 높다. 

김 연구사는 “예전에는 정상부 만세동산, 장군목 인근까지 말들을 올려보내 키웠다. 말은 조릿대를 소화할 수 있는 효소가 있어 조릿대를 먹었다”며 “앞으로 조릿대의 성장이 기후변화와도 연관 있는지 꾸준히 조사, 실험하고 제어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갑 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연구사. 그는 제주조릿대의 왕성한 번식 때문에 아고산대 다른 식물종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의소리
김종갑 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연구사. 그는 제주조릿대의 왕성한 번식 때문에 아고산대 다른 식물종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의소리
제주조릿대의 성장으로 고사한  털진달래 나무(오른쪽)와 조릿대를 제어하자 꽃을 피워내고 있는 털진달래. ⓒ제주의소리
제주조릿대의 성장으로 고사한  털진달래 나무(오른쪽)와 조릿대를 제어하자 꽃을 피워내고 있는 털진달래. ⓒ제주의소리
한라산연구부의 조릿대 제어 실험 결과 털진달래가 틈을 비집고 올라와 꽃을 펴보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라산연구부의 조릿대 제어 실험 결과 털진달래가 틈을 비집고 올라와 꽃을 펴보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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