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도민 삶의 질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대안 모색해야 한다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6.1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제주특별자치도를 책임지겠다는 이들로부터 손전화 메시지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로는 세계적이지만 삶의 만족도와 행복지수는 낮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은 여야와 진영을 막론하고 도민에게 행복을 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번뿐만이 아니다. 해방 이후 수많은 선거에서 행복사회 구현이라는 공약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행복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물질적 육체적 즐거움을, 다른 이는 정신적 예술적 즐거움을, 또 다른 이는 영적 종교적 즐거움을 갈구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행복을 근심 걱정에서 해방되어 마음이 평안한 상태라 하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의 잠재능력을 꽃피워 자기를 완성하는 것이라 한다. 이처럼 사람마다 행복의 의미가 다양하고, 그것도 주관적이다. 그러기에 모든 유권자에게 행복을 드리겠다는 공약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인 셈이다.

행복의 문제는 대부분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이다. 따라서 행복은 각자 알아서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반면에 고통의 문제는 대부분 객관적이고 일반적이어서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실업, 양극화, 불평등, 무주택, 오폐수 및 폐기물, 교통혼잡,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자원고갈, 기후위기 등은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야기하는데 그러한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 본다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도민에게 행복을 약속드린다’는 빛깔 좋은 공약(空約)보다는 차라리 ‘도민의 고통을 덜어드리겠다’는 공약(公約)이 더 호소력과 설득력이 있다.

이제 제주섬도 양적으로 경제 규모를 키우는 대신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차기 제주도정이 펼쳐야 할 정책은 지난 성장의 시기에 불거진 부작용과 상처를 치유하여 도민의 삶의 질이 한결 더 나아지는 성숙한 사회로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제 제주섬도 양적으로 경제 규모를 키우는 대신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차기 제주도정이 펼쳐야 할 정책은 지난 성장의 시기에 불거진 부작용과 상처를 치유하여 도민의 삶의 질이 한결 더 나아지는 성숙한 사회로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참에 경제 규모가 커지면 잘 살고 행복해지는지에 대해서 검토해보자. 국내총생산(GDP), 즉 한 국가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 총량이 어느 정도 커질 때까지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경제성장이 이뤄진 다음부터는 GDP와 삶의 질은 별 상관없게 된다. 가난한 시절 우리는 등 따습고 하루 세끼 먹을 수만 있어도 행복했다.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몇 가지 가전제품과 작은 승용차 한 대만 있어도 최고의 행복으로 여겼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가끔 외식과 여행을 즐길 수 있으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러한 바람과 욕망이 어느 정도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허기와 갈증을 느끼는 이들은 더 많은 행복을 위해서 더 많은 경제성장과 개발이 필요하다고 한다.

행복정치경제학자인 잉글하트(R. Inglehart)와 레이어드(R. Layard)는 1인당 GDP가 1만5천~2만 달러 수준을 넘어서면 경제성장이 행복의 증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가난이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국가에서는 경제성장이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물질적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는 1인당 GDP 2만 달러에 이를 때까지는 경제성장이 행복 증진에 비례한다. 하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 GDP와 소득이 증가한다 해서 행복이 더 늘어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1인당 GDP는 이미 2006년에 2만 달러를 넘어섰다. 우리는 지난 60년 동안 경제개발과 성장정책을 편 결과 2021년 말 기준 무역 규모 세계 8위, GDP 세계 10위, 1인당 GDP 3만5천 달러로 세계 26위에 이르고 있다. 그리 본다면 경제적으로 우리가 못 사는 게 아니다. 오히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를 경제선진국이라 평하기도 한다.

경제성장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특히 성장을 이룬 다음에도 계속 양적 성장 정책을 펴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는 국민의 삶의 질은 점점 더 낮아진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심해지고, 환경과 생태계가 파괴되며, 자원이 고갈되고, 사회기반시설과 내구성 소비재 수명이 단축된다. 그리고 사고가 늘어나면서 수리비와 의료비가 많이 들고, 양극화가 심화되어 사회적 갈등이 커지며, 범죄가 증가하고 가족이 해체되는 등 공동체가 파괴되고,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여가시간이 줄어든다. 

우리는 세계적 경제 대국이 되는 대가로 심각한 부의 양극화, 지역과 계층 간 불평등, 환경오염과 생태파괴 등을 떠안게 되었다.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의 질이 점점 나아지기는커녕 뒷걸음치고 있고, 대다수 국민은 고통을 겪고 있다. 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은 채 지속적인 성장정책을 펼 경우 우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진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경제 규모를 키워 도민에게 행복을 찾아드리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지금은 성장 과정에서 겪고 있는 도민의 고통을 치유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는 성장을 멈추고 성숙의 과정을 거친다. 만일 어떤 유기체가 계속 성장만 한다면 어느 시점에 가서는 심각한 고통을 유발하고 심지어 생명까지 위태롭게 된다. 지역의 경우도 비슷하다. 제주섬이 면적, 자원, 인구에 걸맞은 적정 규모까지 성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 이상 규모를 키우면 도민에게 행복보다는 고통을 안겨줄 가능성이 더 크다. 따라서 지금의 인구나 관광객의 규모가 제주섬이 감당할 수 있는 지점인지, 도민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보다 치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제 제주섬도 양적으로 경제 규모를 키우는 대신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차기 제주도정이 펼쳐야 할 정책은 지난 성장의 시기에 불거진 부작용과 상처를 치유하여 도민의 삶의 질이 한결 더 나아지는 성숙한 사회로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는 더 많은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한 양적 성장을 지양하고 지속가능하면서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제주도개발특별법 이후 지난 30여 년 동안 국적 불문하고 거대자본들이 특혜를 받으면서 개발을 주도하여 제주섬의 양적 성장을 이뤘다. 그 결과 제주섬은 번드르르한 모습을 띠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발이익은 역외로 유출되고, 제주다움은 실종되었다. 경관과 생태가 빼어나 각종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까지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다. 부동산 폭등으로 서민과 청년들은 거의 살림집을 마련할 수 없게 되었고, 도민과 관광객이 배출한 폐기물은 처리시설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급증하여 청정제주가 무색할 정도로 산과 들과 바다는 쓰레기로 넘쳐나고 있다.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새로 뽑힐 도지사와 도의원님들은 제주섬의 사람과 뭇 생명의 고통을 치유하는데 전념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평화를 노래했던 밥 딜런(Bob Dylan)의 노래를 빌려 본다. ‘얼마나 더 많이 개발해야 너무 많이 개발했음을 깨닫게 될까.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뭇 생명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오래 살아야 사람들은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까. 얼마나 더 헤엄쳐야 남방큰돌고래는 제주바다에서 편히 쉴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 윤용택 논설위원·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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