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71)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

1993년, 태국의 케이더라는 인형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담뱃불이 원인이 되어 3층 규모의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공장에서 일하던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469명이 부상을 입은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솜과 천이 가득한 공장이어서 불은 순식간에 번졌고, 많은 노동자가 화마를 피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20대 어린 여성노동자였는데, 당시 회사의 관리자가 어린 여공들이 ‘인형을 훔쳐갈 수 있다’면서 공장의 외부 출입구를 잠그고 작업을 했고, 이로 인해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일하던 노동자들이 화마를 피하지 못한 채 죽어간 것이었다. 

“... 살기위해 일했는데, 일하다가 죽었습니다... ” 

예전 한 집회에서 산재노동자를 추모하는 발언이 이어지던 중 누군가가 한 말이다. 먹고살기 위해, 생존을 위해 떠난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사망한 노동자의 모순된 현실을 이야기 한 것이었다. 

26일, 또다시 노동자의 산재사망 소식을 들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견인하는 차(토잉카)를 정비하던 노동자가 두개골 파열로 사망했다고 한다. 노동조합은 회사가 코로나로 인해 정비인력을 144명에서 109명까지 감축시켜놓은 상태에서 위드코로나에 대비하며 과거와 동일한 수준으로 업무량이 증가했지만 인력충원을 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인재’라고 했다. 사고의 배경 역시 순서대로 작업조를 투입하지 않고, 다른 분야의 작업조를 동시에 투입하면서 서로간의 작업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산업재해의 개념은 봉건시대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넘어오면서 발생했다. 대공장중심의 산업화 구조로 일하는 과정의 위험요소가 늘어났고, 기업의 이윤을 쫓는 시스템 하에서 생명이라는 가장 존엄한 인권이 위협받게 된 것이다. 기업의 이윤보다 노동자의 목숨이 하찮은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경영의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생명이 경시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태국공장의 화재참사 이후인 1996년 4월 28일, 유엔 회의장 앞에서 당시 세계 노동조합의 대표들이 모여 188명의 노동자를 비롯한 산재사망노동자를 추모하는 촛불을 들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산재사망노동자를 추모하는 흐름이 전세계적으로 형성되었고, 미국․캐나다․영국 등에서는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여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기념일은 53개이며, 개별 법률로 지정되어 있는 기념일도 67개에 달하고 있다. 우리도 작년에 4월 28일을 산재사망노동자를 추모하는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논의가 시작되어 현재 의원 입법 발의까지 되어 있으나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반복되는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그들의 사고가 쉽게 잊혀지고 있는 이유도 존재한다. 4월 28일 산재사망노동자를 추모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국가기념일을 지정하고 함께 잊지 않고 행동하자.

#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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