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72) 그래도 손이 크니까 밥 술이나 먹은 것이지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경해도 손이 크나네 밥 직이나 먹엄시녜 (그래도 손이 크니까 밥 술이나 먹은 것이지)

  * 경해도 : 그래도, 그나마도
  * 손이 크난 : 손이 크니까
  * 밥 직이나 : 밥 술이나
 *  먹엄시녜 : 먹고 있는 거지

한 사람의 행동거지는 크고 타인과의 작은 관계를 통해 금세 드러나는 법이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사람의 심성이나 행동의 특성 그리고 언어나 대인 관계 등 그 사람의 성형은 감출 수 없다. 더욱이 남에게 베푸는 사람, 상대에게 해를 끼치려 하지 않고 이익되게 하는 이타적(利他的)인 사람은 말이 아닌 실천적 행동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이다. 

어려운 일을 당해 보면 그런 좋은 사람의 덕을 뼈에 사무치게 절감하게 된다. 시대가 힘들고 세상이 각박할 때를 이겨내려면 어렵기는 다 한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힘듦을 자신의 힘듦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동정적으로 도움을 베풀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럴 때 힘든 사람을 도와 격려하는 마음이 곧 불가에서 말하는 보시(布施)다. 깨끗한 정재(淨財)를 베푼다는 의미로 궁색한 처지에 처한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내놓은 재물이라는 의미다.

먼 데서 찾을 것이 아니다. 집안에서 어머니가 누님이 혹은 내자가 새로 집안에 들어온 며느리가 눈에 띄게 손이 큰 사람이 있다. 그것은 자그마치 제삿날 음복 때 나눠 먹는 음식을 그릇에 담는 데서부터 한눈에 들어온다. 자기 집에 와 제사 지낸 제관들을 넉넉하게 대접하는 마음 그게 곧 조상을 기리는 봉제사(奉祭祀)가 아닌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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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족히 먹은 친척들 입에서 한목소리가 돼 나온다. “ᄌᆞᆷ 그 집 새 메느리 손이 커게이? 시어멍부터 경해쪄. 다 대물리는 거여. 경ᄒᆞ난 그 집 보라게. 아덜 ᄄᆞᆯ덜이 잘 되염세. 다덜 조은 ᄒᆞᆨ교 들어가곡 나와네 번듯ᄒᆞᆫ 직장에 드러가곡 ᄒᆞ염주게.(참 그 집 새 며느리 손이 커이? 시어머니부터 그랬다. 다 대불리는 거야. 그러니 그 집 보라. 아들딸들이 잘 되잖아. 다들 좋은 학교 들어가고 나와 벚듯한 직장에 들어가고 했지.)”  이렇게 평판이 흐른다. 나쁜 소문이든 좋은 평이든 남에 대한 말 전주(傳注)는 바람같이 빨라 널리 퍼진다. 좋든 궂든 남의 말은 하게 돼 있는 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경해도 손이 크나네 밥 직이나 머검시녜’

첫머리의 ‘경해도’는 ‘그나마’ ‘그러해도’라는 절실한 뜻을 지니고 있는 말이다. ‘안될 수도 있는데 다행하게도’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조금 확대 해석한다면, 남을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뜻으로 새길 수도 있을 것이다.  

설령 그게 재물이나 물건이 아니고, 마음이라 하더라도 이왕 남을 위해 내놓을 것이면 제대로 쓸 일이다. 밥 한 술을 그릇에 퍼 담더라도 손이 크다는 말을 듣게 할 일이다. 남에게 베풀면 언젠가 그 베풂은 자신에게로 덕(德)이 돼 돌아온다. 그게 인과응보(因果應報)요 인과율(因果率)이 아닌가.

마음속에 몇 번이고 새겨둘 일이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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