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뜸 들이기로는 부족…각종 의혹 해소부터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도 고쳐매지 말라고 했다. 괜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때와 장소를 가려 행동하라는 선현들의 가르침이다. 더구나 발을 디딘 곳이 탐스런 자두가 달려있는 과수원이 아니라, 어디든 건들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지뢰밭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살아남으려면 할 수 없다. 이럴 땐 무조건 거기서 빠져 나오는게 상책이다. 일단 사업 추진을 중단하라는 의미다. 뭉기적거리다가는 오해 차원이 아니라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제주판 대장동’으로 일컬어지는 오등봉 공원 민간특례사업 얘기다. 

‘오등봉’에 깔린 지뢰는 한 두 개가 아니다. 갖가지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핵심은 특혜 의혹이다. 당시 도지사인 원희룡 국토부장관 후보자가 그 중심에 서 있다. 

청문회 준비 정국에서 제기된 의혹들을 시간대별로 배열해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사실이라면, 앞뒤 말이 완전히 달라서 제주도와 원 후보자의 이중성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애초 오등봉 공원 민간특례사업은 무리수였다. 2016년 9월 제주시 스스로 ‘수용 불가’ 판정을 내렸다.

당시 제주시의 ‘검토 의견’은 지금 봐도 전향적이었다. 사업자의 시선과 달랐다는 점에서 신선하기까지 했다. 오름 주변에 12층짜리 688세대의 아파트를 짓게되면 △경관훼손 △하천오염 및 재해가 우려되고 △(오등봉 공원 부지와 같은)자연녹지지역은 저층(4층) 이하 저밀도 개발을 계획하고 있으므로 12층으로 계획된 제안 사업은 곤란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담았다. 

아울러 공원 부지 내 사유지 일부를 이미 매입했고, 앞으로도 계속 매입할 예정이라며, 장차 민간특례사업이 추진되더라도 특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명확한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때부터 특혜 소지가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2018년에는 제주도가 나서 지방채를 발행해서라도 도시공원 내 사유지를 전부 매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그해 11월 관련 예산도 편성했다. 이러한 대책으로 제주도는 이듬해 국토교통부에 의해 도시공원 일몰 대응을 잘한 자치단체로 뽑히기도 했다. 

제주도가 민간특례사업 재추진 방침을 발표한 것은 2019년이다. 일몰 대응 우수 자치단체 선정 소식이 알려진지 불과 며칠 후였다. 결과적으로 정부 부처를 기만한 꼴이 됐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아니었다. 소름이 돋을만한 반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물밑에서는 이미 2017년부터 민간특례사업이 착착 진행중이었다. 사실상의 지휘자는 원 후보자였다.  

제주도가 생산한 문서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원 지사에겐 2017년 5월16일, 혹은 그 이전에 민간특례사업 관련 내용이 보고됐다. 그리고 원 지사는 그해 7월 비공개 검토 지시를 내린다. 특히 원 지사는 2018년 12월31일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 추진방안’ 대면보고 때 제주시 차원의 전담팀 구성을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수용 불가’ 서류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민간특례사업이 부활했고, 운명이 다한 사업을 일으켜세우는데 원 지사가 앞장섰음이 확인된 셈이다. 2019년 9월11일 원 지사가 결재한 문서에는 ‘유연한 심의’, ‘(각종 위원회)1회 통과’ 따위의 표현이 등장한다. 도정이 속도전을 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오등봉 사업을 둘러싼 의혹은 이 뿐만 아니다. 

제안심사위원회 심사 직전 석연찮은 위원장 교체, 심사 지침 위반 의혹, 부나비 덤비듯 난마처럼 얽힌 사업 관련 인물들, 퇴직 공무원 영입 후 관급공사를 무더기 수주한 업체, 사업 공식화 이전 대규모 토지 매입을 통한 수십억대 차익 의혹…. 퍼즐을 맞추다보면 왜 이 사업이 제주판 대장동으로 불리는지 합리적 의심을 갖게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이자 원 지사의 서울대 법대 선배인 남기춘 변호사(전 서울서부지검장)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오등봉 개발사업 컨소시엄 참여업체 중 한 곳인 L기술단 대표가 바로 남 변호사다. 남 변호사가 대표 변호사로 있는 서울 서초구 소재 법무법인은 오등봉공원 사업 관련 소송 대리를 맡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26일 제주도 경관위원회는 오등봉 사업에 대한 경관 심의에서 ‘재검토’를 의결했다. 5년여 전 제주시의 반려 과정을 돌이켜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다가 청문회를 앞두고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뜸을 들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환경영향평가 과정의 절차 위반 여부로 공익소송까지 제기됐다.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다. 시민사회는 전면재검토, 사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도지사 자리는 비어있다. 그래도 책임은 오롯이 제주도가 져야 한다. 위험을 무릅쓸 것이냐, 지뢰부터 완전히 제거할 것이냐. 삼척동자도 아는 답이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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