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재심, 역사의 기록] (31) 제주지법 “범죄 사실 증명 없다” 전원 무죄 판결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위반죄 등 억울한 혐의를 뒤집어쓴 채 수형 생활을 한 제주4.3 피해자들이 70여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으며 명예를 회복했다. 

3일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1948년부터 1949년 사이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위반죄 등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된 4.3피해자 20명에 대한 직권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판은 검찰의 ‘무죄’ 구형과 변호인의 ‘무죄’ 요구에 이어 재판부의 ‘무죄’ 선고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재판부의 판단은 “죄를 입증할 합리적 증거가 없고 검찰 역시 피고인과 유가족들의 명예회복, 진실규명을 위한 무죄를 구형했기에 재판부 역시 무죄를 선고한다” 였다.

재판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고 명예가 회복된 20명은 현상림, 김재추, 강순추, 현동하, 오성옥, 오두옥, 현의종, 문학선, 권승길, 양청심, 김계생, 김상화, 홍기표, 양의석, 김종해, 송두화, 송두언, 김석준, 진승림, 고승협 씨다. 

검찰 모두 진술에 따르면 20명의 피해자 가운데 4명은 1948년 제주도 일원에서 정부 전복 등 목적으로 무력을 행사하고 폭동을 일으켰다는 혐의로 1차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나머지 16명은 1949년 제주도 일원에서 무기와 탄약, 금전 등 물자를 무장대에 제공하고 무장대 보호, 정보 제공 등 혐의로 2차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변호인은 “피고인들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저지른 적도 없고 심지어 체포 과정에서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에 무죄”라는 의견을 냈다. 

이에 재판부가 검찰에 이들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있느냐고 물었고 검찰은 “제출할 증거는 없다”고 답했다.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단장 이제관, 이하 합동수행단) 변진환 검사는 “4.3은 우리 현대사 한국전쟁 다음으로 가장 인명피해가 많은 비극적인 사건”이라며 “2만여 가구가 소실된 엄청난 비극이 이념과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됐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들은 가족을 잃고도 말 못 할 고통을 가슴 속에 묻어왔다. 이번 재심으로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고 이와 같은 비극이 없길 바란다”며 “무고한 희생자들의 실추된 명예가 회복되고 평생을 눈물로 버텨온 유족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란죄 또는 국방경비법 위반 등 혐의로 군경에 의해 연행, 처벌을 받은 이들이 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며 “모두에게 무죄 판결을 선고해달라”고 무죄를 구형했다.

변호인 측은 “재판 기록조차 남지 않은 사건에 합동수행단과 재판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며 “유족들은 위로와 보상을 받긴 커녕 사회로부터 불이익을 받고 살았다. 지금이라도 명예가 회복되고 한을 풀어내길 바란다. 우리 역사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찰과 변호인의 무죄 요청에 따라 재판부는 “모든 재판이 그렇지만 죄를 저질렀다고 볼만한 합리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며 “오늘 이 재판에서는 그런 증거가 없다. 나아가 검찰 측에서도 피고인뿐만 아니라 유가족들의 명예회복과 진실규명을 위해 무죄를 구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범죄 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는 것에 해당한다”며 “피고인들은 각 무죄”라고 20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장찬수 부장판사는 “앞으로도 직권재심을 통해 명예회복을 할 분들이 많다. 갈길이 멀고 아직 많이 남았다”며 “오늘 법정에 오신 유족뿐만 아니라 모두가 제주4.3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선고를 마쳤다.

이날 재판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4.3피해자의 유족은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시게 됐는지도 몰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유족은 “당시 대정면에서 주민들을 위해 직책을 맡아온 아버지가 어느새 잡혀간 뒤 돌아오지 않으셨다. 나중에 아버지가 고문 받은 이야기를 듣고 분하고 억울하고 화가 났었다”며 “지금까지는 힘이 없어 그냥 살아왔는데 지금 와서 이렇게라도 해주니까 감사하다”고 말했다.

직권재심은 검사가 직권으로 청구한 재심을 의미하며, 합동수행단은 올해 2월부터 총 6차례(각각 20명)에 걸쳐 수형인명부에 기재된 희생자들에 대한 재심을 제주지법에 청구했다. 

다음은 직권재심 명예회복 명단. 

첫 번째 직권재심(2022년 3월29일) 
고학남, 강태호, 고명순, 김성원, 홍표열, 김완생, 변기상, 이근숙, 김병로, 고화봉, 신영선, 김응종, 김계반, 김기옥, 박성택, 양자경, 허봉애, 권맹순, 양문화, 양두봉

두 번째 직권재심(2022년 3월29일)
김경곤, 고태원, 백무성, 박홍화, 양덕봉, 신용현, 김기휴, 이경추, 양달효, 오재호, 양두현, 양두영, 강정윤, 박창인, 김용신, 이기훈, 오인평, 오봉호, 김해봉, 변윤선

세 번째 직권재심(2022년 4월19일)
강성협, 강희옥, 강우제, 이문팽, 고상수, 고창두, 오형운, 송재수, 문종길, 문순조, 홍순표, 정만종, 김형남, 송창대, 김형수, 양성찬, 양달천, 김윤식, 오기하, 전병부

네 번째 직권재심(2022년 5월3일)
현상림, 김재추, 강순추, 현동하, 오성옥, 오두옥, 현의종, 문학선, 권승길, 양청심, 김계생, 김상화, 홍기표, 양의석, 김종해, 송두화, 송두언, 김석준, 진승림, 고승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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