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여든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항우와 유방.
항우와 유방.
이석문(왼쪽)-김광수 제주도 교육감 예비후보.
이석문(왼쪽)-김광수 제주도 교육감 예비후보.

1. 항우(項羽 BC232-BC202, 초나라의 군주)와 유방(劉邦 BC247?-BC195, 중국 한나라의 제1대황제, 항우를대파하여 천하통일)

기원전 221년 진나라를 건국한 진시황의 회계산(會稽山) 제의(祭儀)를 마친 화려한 행차를 본 후, 두 사람의 반응은 극명한 차이를 초한지에서 보여준다. 유방은 감격하여 탄식했다. “대단하군! 사내대장부라면 마땅히 저 정도는 돼야지!” 가문도 외모도 능력도 변변치 않지만, 최고 지존이 되고자 하는 야망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던 유방이었다. 그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노련하게 진시황을 높이 평가하듯 말했다.

항우의 외침은 달랐다. “언젠가는 저놈을 끌어내고, 내가 저 자리를 차지하리라!” 망국의 분노와 설욕의 다짐이 서려 있었다. 곁에 있던 숙부 항량이 식겁해 항우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욕망, 야망, 감정을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항우를 걱정했다. 

두 영웅의 말버릇도 그들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항우가 주변을 향해 자주 쓰던 문장은 “어떠냐?(何如, What Do You Think About It?)”였다. 즉 자신의 기량이 어떠냐는 일종의 과시였다. 언제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반면 유방은 “어떻게 하지?(如何, How Can I Do It?)”라며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의견을 높이는 태도를 보였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초한쟁패(楚漢爭覇)’, ‘패왕별희(覇王別姬)’, ‘사면초가(四面楚歌)’, ‘파부침주(破釜沈舟)’, ‘홍문지연(鴻門之宴)’ 등 숱한 고사성어를 역사에 아로새긴 항우(項羽, 기원전 232~기원전 202년)는 지금도 비운의 영웅이란 이미지와 함께 로맨티스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사마천은 「항우본기(項羽本紀)」를 통해 이 불세출 영웅의 언행을 생생하게 기록함으로써 역사학은 물론 문학에도 짙은 영감을 불어넣었다.

역사의 끝대목:
항우는 키가 여덟 자가 넘고 무쇠솥을 들어 올릴 정도로 힘이 셌다. 용기도 남달라 오현의 젊은이들조차 모두 그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항우 스스로 ‘그 힘은 산을 뽑고, 그 기개는 세상을 덮는다’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고 했을 정도다. 성격은 단도직입적이었다. 거록에서 공격을 망설이는 대장군 송의(宋義)의 막사로 쳐들어가 주저 없이 그의 목을 베어버린다. 진나라 군대를 공격해 승리한 순간은 그런 성격이 가장 긍정적으로 발휘된 경우다. 싸움에서, 특히 생사를 건 전투에서 그런 성격은 병사들의 전의를 북돋우는 힘으로 작용했고, 이를 통해 그는 일약 난세의 영웅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항우의 급하고 불같은 성격은 정치 방면에서는 독약과 마찬가지였다. 정치는 민심을 얻느냐 여부로 그 승부가 갈린다. 항우는 거추장스러우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제거하는 성격이었다. 그 때문에 무고한 백성을 숱하게 죽였다. 항복한 적군도 살려주는 법이 없었다. 인심을 잃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반면, 그의 라이벌 유방은 얄밉게도 정반대로 행동했다. 유방은 정치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8 대 2 내지 9 대 1의 압도적 전력 차에도 불구하고 항우는 유방에게 역전패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항우는 그런 기질을 드러냈다. 사면초가에 몰려 도주하다 끝내 자결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하늘을 원망했다. 강을 건너 돌아가 재기하라는 정장의 권유에 다시 하늘을 탓하며 돌아간들 자신을 따라온 강동 자제들을 다 죽여놓고서 무슨 면목으로 그 부형들을 보겠느냐며 체면을 내세웠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항우는 백 번을 싸워 아흔아홉 번 이기고 한 번 패했다. 그런데 그 한 번의 패배를 견디지 못했다. 재기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항우의 뇌리에 실패란 단어는 입력조차 되어 있지 않았으며, 실패를 견뎌내고 다시 일어설 끈기가 애당초 없었던 것이다.

기원전 203년 식량 부족에 시달리던 항우는 유방이 보낸 후생(後生)의 유세를 받아들여 홍구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하고 휴전에 들어가기로 약속한 뒤 태공과 여후를 돌려보냈다. 그러나 유방은 약속을 깨고 항우를 추격했다. 한신과 팽월(彭越)에게 큰 보상을 약속해 그들의 군대를 끌어들였고, 한신과 팽월은 항우를 몰아붙여 해하에까지 이르렀다.

‘사면초가’에 몰린 항우는 애첩 우희와 이별하는‘패왕별희(覇王別姬)’ 노래를 부른 뒤 애마 추와 800여 기병만 거느리고 포위를 돌파했다. 몇 차례 추격하는 한의 군사를 악전고투 끝에 물리쳤지만 28기만 남았다. 오강에 이른 항우는 하늘이 자신을 망하게 한다며 원망하고 정장(亭長)의 재기 권유를 뿌리친 채 스스로 목을 그어 자결한다. 한의 장수 왕예와 항우의 부하였던 여마동(呂馬童) 등이 시신을 나눠 가지고 돌아가 작위를 받았다. 유방은 금수저 출신 항우를 노공의 예로 곡성에다 장례지내고 발상 때는 곡까지 했다. 이로써 햇수로 5년에 걸친 초한쟁패는 절대 열세였던 흙수저 출신 유방의 역전승으로 끝나고 천하는 다시 통일되었다.

유방은 개인 능력은 부족했으나, 한신과 장량, 소하 등 유능한 참모를 적재적소에 배치했고, 항우를 이길 수 있었다. 결국 항우는 애첩(愛妾) 우미인(虞美人)이 눈 앞에서 자살하고 본인도 따라 자결한다. 이때 한 말이, “한나라 병사가 이미 점령을 했는지,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 소리 들리네. 대왕께서 전의(戰意)와 기개(氣槪)가 다했으니, 천첩인들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漢兵已略地 四面楚歌聲 大王意氣盡 賤妾何聊生)”

최근 잇단 여론조사에서 제주도지사 후보 지지도 1, 2위를 각각 차지한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예비후보(왼쪽)와 국민의힘 허향진 예비후보. 
최근 잇단 여론조사에서 제주도지사 후보 지지도 1, 2위를 각각 차지한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예비후보(왼쪽)와 국민의힘 허향진 예비후보. 

2. 견훤(甄萱, 867~936)과 왕건(王建, 877~943)

삼국시대 후백제의 금수저 견훤도 개인의 능력은 물론 군대와 외교, 지리적 위치와 국가 재정 등 인프라에서 우위에 있었다. 반면 후고구려의 흙수저 왕건은 위로는 두루애(?) 상사 궁예(弓裔, ?~918)가 마구니가 끼였다고 철퇴를 휘두르고, 발이 얼어서 오줌으로 몸을 녹이는 척박한 땅에 개인 능력도 견훤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후고구려는 견훤을 몰아내고 왕건의 이름 아래 고려를 건국했다. 역시나 견훤은 ‘어떠냐(何如)’에 취했지만, 왕건은 자기 잘난 맛에 취하지 않고 유방처럼 참모들을 적재적소 배치, 지방 호족들과 통합으로 유방의 ‘어떻게 하지(如何)?’로 고려를 세울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대선결과는 흙수저 이재명이 패하고, 금수저 윤석열이 승리했다. 항우같은 ‘어떠냐(何如)’와 유방의 ‘어떻게 하지(如何)’를 융합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제주에서 6월 선출되는 도지사와 교육감도 초기는 초월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항우가 필요하지만, 시스템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이후는 유방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

* 항우와 유방 이야기는 조선일보 칼럼과 네이버 지식백과 등의 내용을 인용하였음을 밝혀둡니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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