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주인이다-제주 마을이야기] (6) 영락리 - “따뜻한 복지는 공동체의 힘”

마을의 자원과 가치를 주민들이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한 마을만들기 사업. 시행착오와 현실적 어려움을 넘어 제주 마을 곳곳에서는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특별자치도마을만들기종합지원센터와 함께 주민 주도의 마을만들기를 통해 희망의 증거를 발견한 제주의 마을들을 살펴보는 연중기획을 마련했다. 이를 계기로 더 나은 제주의 미래를 향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 편집자
험한 갯바위가 줄지어 있는 대정읍 영락리 해안가. ⓒ제주의소리
험한 갯바위가 줄지어 있는 대정읍 영락리 해안가. ⓒ제주의소리

제주 대정읍 영락리는 제주 남서쪽, 대정읍의 서쪽에 위치한 해안마을이다. 내륙으로 갈수록 고도가 조금씩 높아지는데 전체적으로 낮은 평지를 이루고 있다. 유일한 오름인 돈두악도 높이가 40여m에 불과할 정도다. 평탄한 지대를 따라 이어진 곶자왈 지대에서는 편안한 산책이 가능하다. 밭에서는 마늘과 파를 주로 재배하고, 감귤도 재배한다.

시선을 남쪽으로 돌리면 험한 갯바위들이 감싼 바다가 보인다. 바다 쪽으로 돌출돼 있는 ‘전세비’, 멸치 떼를 따라온 고래가 왔다가 바다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움푹 패인 ‘고래통’, 썰물 때는 걸어서 갈 수 있고 밀물 때는 섬이 되는 ‘목저문여’ 등 독특한 지형을 자랑한다. 종종 나타난 돌고래가 육지에서 육안으로도 확인되며 이 일대는 낚시꾼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바다를 품은 이 마을에 유명한 것은 자리돔이다. 영락리는 험한 갯바위지대로 수심이 깊은 앞바다에 많이 서식하지만 지형상 어로작업이 힘든 곳이다. 선조들은 갯바위 위에서 전통도구의 ‘사둘’을 이용해 자리돔잡이를 해왔다. 이 문화를 되새기기 위해 덕자리돔 축제가 이어져오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잠시 멈췄는데 올 6월에는 다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의 전통 어로문화인 덕자리 뜨기. /사진 제공=영락리 ⓒ제주의소리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의 전통 어로문화인 덕자리 뜨기. /사진 제공=영락리 ⓒ제주의소리

마을 주민들이 정한 영락리의 테마는 ‘머물면 즐겁고 기분좋은 희희락낙 영락리’. 마을 내부나 주변에 유명 관광지는 없고 해안도로를 지나가는 관광객들만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주민들은 ‘오래 머물면서 힘듦을 치유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방향성을 정했다. 스쳐 지나가는 마을이 아니라 머물면서 영락리가 포근함과 농촌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을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영락리의 비전은 ‘아름답고 재미지게 행복한 영락리’. 농촌 환경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문화-복지적 기반이 탄탄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 ‘머묾’과 ‘치유’를 위한 기반은 이 마을의 미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는 게 주민들의 생각이다.

특히 홀로 남은 노인들을 위한 종합복지시설을 조성하는 게 마을의 꿈이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구조의 목욕탕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재활시설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최소한의 노후대책을 마련해주는 것이 마을공동체가 지닌 의무라고 마을 리더들은 생각한다. 마을 목욕탕 하나 없어 대정읍내 까지 나서야 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영락리가 1980년대 초부터 어르신들을 위한 효도관광을 이어가는 것도 마을과 가정을 가꿔온 어르신들 위한 따뜻한 복지가 필요하다는 뜻에서였다. 

이정식 영락리장은 “나이 드신 분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복지가 잘 제공되는 마을, 어르신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현재 마을 주민 중 절반은 새로 정착한 분들인데 적극적으로 청년회, 부녀회에 참여하는 분위기”라며 “정착주민과 다문화 가정이 화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식 영락리장. ⓒ제주의소리
이정식 영락리장. ⓒ제주의소리

영락리는?

640여명이 살고 있는 영락리는 서귀포시 대정읍 서쪽에 위치한 반농반어의 해안마을이다. 동쪽으로는 신평리와 동일리, 북쪽으로는 무릉리, 남쪽으로는 일과리와 인접하다. 독고동, 중동, 삼통, 사통, 하동 등 5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됐다. 마늘과 파 등 밭작물을 주로 재배하고 감귤 농가도 있다. 

앞바다는 수심이 깊고 험한 갯바위지대인데 자리돔을 찾는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 전세비를 비롯해, 목조문여, 옻아진여, 높은덕, 고냉이돌 등 일정한 거리를 두고 덕(고개를 내민 기암절벽)과 여(밀물 때는 잠기는 평평한 암반층)가 자리잡고 있다. 모래밭이나 조약돌 지대가 거의 없으며 방파제를 쌓거나 포구를 구축할만한 만도 없다. 어선을 이용한 고기잡이가 없는 대신 독특한 어로문화인 ‘덕자리 뜨기’가 이어져오고 있다. 덕의 끝자락에서 굵고 긴 대나무 끝에 매달은 큰 그물인 자릿사둘을 힘껏 던지고, 이 사둘을 건져 올리면 자리돔이 나타난다. 매년 6월에는 이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덕자리돔 축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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