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댁, 정지에書] (45) 윤상순 어르신 이야기 ②엄마표 쉰다리
1938년 서귀포 월평에서 태어난 윤상순 어르신은 80년 넘는 월평마을의 변천사를 오롯이 그의 몸 안에 간직하고 계신 산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가집에 살던 세대가 아닌 나는 다시 한번 어르신께 초가짓는 날 이야기를 여쭈었다.
지금이야 행정구역이 동으로 바뀌어 서귀포시 중문동이지만 어르신이 집을 지을 당시에는 중문면이었다. 중문면에 ‘정시’가 있었다고 한다. 정시는 제주에서 지관(地官), 즉 풍수를 보는 사람을 의미한다. 어르신은 우선 정시의 역할을 해주셨던 법환에 계신 한 스님에게 날을 받아오셨다. 이 당시에는 음력 6월에 집을 짓는 것은 금기였고 주로 장날에 맞춰 집을 짓거나 집수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집 짓는 날을 받아오면 목수를 빌어서 초가의 기본 골격을 만든다. 그 후에 가장 하이라이트는 ‘흙질 하는 날’이다. 즉 어르신의 말을 빌리면 ‘족은 부락에서 사람들 손이 가장 필요한 날’이 바로 이 흙질하는 날이라고 한다. 특히 이 날은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날이다.
흙질하는 날 마을의 모든 여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물부조를 했고 남자들은 흙질하는 데에 손을 보탰다. 흙과 보리짚에 여자들이 부조한 물을 개어 진흙을 만들어 손바닥으로 미장을 하면서 집을 완성한다. 그렇게 벽이 완성되면 초가의 지붕은 새(띠)를 이용해 완성을 했는데 이 새는 옆마을 웃드르 동네인 하원과 법화사 쪽으로 가면 새왓이 있어 그곳에서 구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의 노동력이 가장 많이 필요했던 흙질하는 날, 그 날에 윤상순 어르신은 큰 솥을 걸었다. 큰 솥에 보리쌀과 팥을 넣어 밥을 짓고 바닷가로 내려가 해 온 톳에 된장을 풀어 톳냉국을 만드셨단다. 그리고 이날을 위해 미리 몇 주 전에 만들어 둔 탁배기까지 준비했다. 계속된 흙질로 에너지가 떨어지고 갈증이 난 마을 사람들은 된장을 풀어 낸 톨냉국(톳냉국)과 어르신이 직접 만든 탁배기로 기운도 차리고 갈증도 해소했을 것이다.
흙질 하는 날 부락사람들에게 줄 탁배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차조가 필요하다. 차조를 남방애로 찧고 가루를 만들어 떡을 한 다음에 누룩을 섞어 발효시킨다. 발효가 시작되고 뽀글뽀글 거품이 일며 술이 괴기(끓기) 시작하면 덧술을 한다. 대체로 첫 술을 담그고 열흘 정도 되는 날 즈음이 적기이다. 덧술은 떡을 한 번 더 만든 다음 누룩과 함께 섞어 기존 술 항아리에 섞는다. 어르신이 이야기하시길, 차조는 기름이 있는 곡식이기 때문에 차조로 술을 빚으면 위에 기름이 뜬다고 했다. 기름이 뜨는 위쪽의 투명한 술은, 그렇다. 여러 제주의 어르신들이 공통으로 이야기 하는 제주의 오메기청주다. 어르신 역시 오메기청주는 조심히 떠서 제사상이나 중요한 손님이 오는 날에만 특별히 사용했다고 하셨다. 또는 이 청주를 이용해 오합주를 만들었는데 윤상순 어르신 댁의 오합주 레시피는 우리가 가장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오합주의 재료(청주, 꿀, 생강, 참기름, 달걀노른자)와는 조금은 달랐다.
“우리집은 오합주를 만들 때 청주에 된술을 섞어. 여기에 계란, 청(꿀), 생강, 동박지름(동백지름)을 넣어서 만들어. 3년 전에도 우리 아들한테 보약으로 오합주를 했었는데 오합주는 찹쌀로도 술을 해서 만들기도 했었어.”
동백기름으로 오합주를 만든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폐 기능에 좋다고 알려진 동백기름을 보약 중에서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오합주에 넣으면 더욱 건강에 좋을것 같아서 그렇게 만드셨다고 한다. 지금은 흔한 곡식이 되어 버렸지만 찹쌀 또한 어르신 세대에는 얼마나 귀한 곡식이었는지 우리세대는 결코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가족이 항상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어르신들 마음은 이렇게 집집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레시피의 변화로 나타난다.
이렇게 청주를 뜨고 남은 탁배기, 그 걸죽하고 농후한 맛의 탁배기는 부락마을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고 다시 흙질을 할 수 있게 에너지를 주는 술이었을 것이다. 명절이 되면 감주도 만들고 고소리 술도 닦았다. 감주는 술은 아니지만 명절상이나 제사상에는 꼭 올렸는데 차조와 골(엿기름)을 이용해 만들었다. 차조밥을 해서 골을 섞어 물을 부어 뜨끈한 아랫목에 두면 골감주, 즉 차조식혜가 된다고 했다. 엿기름을 보자기에 넣어 불려 엿기름보자기를 손으로 주무르면 엿기름에서 빠져나온 전분질로 인해 물이 뿌옇게 된다. 시간을 두면 전분이 아래로 가라앉는데 맑은 윗 부분과 밥을 이용해 식혜를 만드는 육지부의 식혜 만드는 방법과 비교해 보면 제주의 감주는 간단해도 이렇게 간단할 수가 없다. 만드는 법이 간단하다고 그 정성이 덜할까. 그건 아니었다.
윤상순 어르신은 고소리술도 닦으셨단다. 감저(고구마)와 보리쌀을 섞어 익히고 여기에 누룩을 섞으면 술이 된다. 감저를 넣는 이유도 심플하다. 고구마를 섞으면 보리쌀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저와 보리쌀을 이용해 만든 술은 고소리를 걸어 증류시킨다. 어르신은 “고소리로 닦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많은 제주의 어르신들께서 술을 만들 때 ‘닦는다’라는 표현을 쓰신다.
이런 고소리술은 가문잔치 날 사람들에게 대접했었다고 한다.
마을에서 잔치 날이 정해지면 마을사람들 모두 그 집에 부조를 하게 된다. 여성들을 쌀과 물을 부조 했다고 한다.
“마을에 부잣집에서는 곤쌀로 부주를 했주게. 부잣집에서는 그렇게 했지 보통은 그냥 쏠이라(아래아가 표현 안되네요.) 쏠 두되를 차롱에 담아 부주로 주면 답례로 보리쌀 한 줌 씩 차롱에 다시 담아줘. 가끔씩 애기 손 잡앙 부주하러 가민 아기들 고기 얻어먹어났주. 그래서 일부러 아기들 고기 먹이려고 가기도 해났지.”
여기서 이야기하는 쏠은 적어도 제주 어르신들에게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멥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르신들이 의미하는 쌀은 대부분 보리쌀이다. 즉 마을에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곱고 흰 멥쌀을 의미하는 곤쌀을 부조했을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당시 주곡이었던 보리쌀을 부조했다.
“쏠은 보리쌀이주게. 우리 쌀 없으면 석보리 까실려 그걸로도 밥 먹었었고 보리 꾸러도 다녀서. 한 말 정도 꾸고 놈의 밭 가그네 밭 갈라주고 해가며 그렇게 먹었지.”
지금 한창 제주는 보리수확철이다. 예전 어르신이 젊었을 시절 보리수확 전에는 보리도, 조도, 메밀도 바닥을 드러냈다. 지난 해 봄에 수확한 보리로 밥을 해 먹다가 가을이 지나면 조를 수확해서 겨울에는 조팝(조밥)을 많이 먹었었다. 물론 고구마도 밥으로 많이 먹었다. 가을에 수확한 메밀은 가루로 갈아내 떡이나 죽, 묵을 하거나 특별한 날에 쓰는 비상용으로 두고 그 메밀쌀을 갈고 남은 거친 쌀로 범벅을 만들어 먹었다.
“몸이 허할 때 모물(메밀)쌀에 메역(미역)넣고 죽 하면 좋아. 쌀은 죽이나 밥 할때만 썼지 나머지는 가루로 만들어서. 묵도 쑤고 떡도 해야하니까.”
어르신은 45살에 물질을 그만두셨다. 출가물질의 고됨보다는 고향에서 안정되게 새롭게 해 보고 싶은 일들에 대한 갈증이 늘 있으셨다. 그래서 어르신은 월평마을에서 처음으로 담뱃가게를 열었다. 담뱃가게에 이어 석유기름집도, 쌀집도 운영했다. 담뱃가게는 35년이나 했고 쌀집은 10년 가량 하셨단다. 어르신의 담뱃가게에는 월평마을에서 유일하게 전화기와 흑백티비가 있었다. 담뱃가게는 80세쯤까지 하셨으니 월평마을 사람들에게 윤상순 어르신의 담뱃가게는 마치 사랑방같은 곳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었을 때야 집에서 오메기청주, 탁배기(오메기탁주), 고소리술, 오합주, 감주까지 모두 만들었지만 지금은 모두 빚지 않으신단다. 시중에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좋은 술들이 있기도 하고 이제 술을 빚어도 함께 나눌 기회가 자주 없어서 술을 빚는 일도 신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주말마다 자녀들이 귤밭을 살펴보러 월평에 오면 꼭 만드는 것이 있다.
바로 쉰다리!
어르신은 지금도 여전히 직접 누룩을 빚으신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주말마다 어르신 밭일을 거드는 자식들을 위해서 빚는 것인데, 아이들이 커 가며 마셨던 ‘엄마표 쉰다리’를 주기 위해서 85세의 엄마, 윤상순 어르신은 누룩 빚는 일을 멈출 수 없다고 하셨다. 보리쌀을 거칠게 갈아 미지근한 물을 넣어 되직하게 반죽하여 만든 보리누룩은 방앗간에서 아주 곱게 갈아오신다. 그렇게 장만한 누룩을 냉동실에 뒀다가 날이 더워지는 계절이 되면 주말에 맞춰 쉰다리를 만드신다.
어르신의 쉰다리는 밥에 곱게 간 누룩을 넣고 물을 부으면 끝난다. 여름철에는 하루 정도 두면 쉰다리가 완성되는데 어르신표 쉰다리 맛의 ‘킥’은 유기농설탕이다. 그 유기농설탕만이 어르신의 마음에 꼭 드는 쉰다리를 만들어 주신다고.
그렇게 만든 쉰다리는 출출하거나 갈증이 날 때 어르신의 간식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들과 며느리의 몫이다. 특히 아들도 그렇지만 며느리가 어르신의 쉰다리를 정말 좋아한다고. 이렇게 어르신의 음식을 좋아하는 가족이 있는데 쉰다리를 안 할 이유가, 누룩을 안 빚을 이유가 없다.
마침 내가 간 날도 쉰다리가 있었다. 영광스럽게도 윤상순 어르신의 쉰다리를 맛 볼 수 있었다. 워낙 곱게 누룩을 갈아서 쉰다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따로 누룩을 걸러내지 않고 먹는다는 어르신의 쉰다리. 삭혀진 밥알과 같이 먹어도 전혀 이물감이 들지 않았다. 쌀집에서 파는 누룩으로 만든 쉰다리하고는 확실히 달랐다. 나는 쉰다리 한 잔을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어르신께 한 잔 더 달라고 드렸다. 그리고 두 번째 잔 역시 한번에 들이키며 입을 열었다.
“어르신, 이제까지 제가 먹은 쉰다리 중에 진짜로요. 제일 맛있어요. 너무 맛있어요.”
머리에서 나온 말이 아닌, 가슴에서 나온 말이었다.
고를 말도 없고 들을 말도 없다는 어르신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윤상순 어르신이 지금 사는 이 집은 흙질을 해서 집을 지은 지 55년이 넘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올린 초가집은 35년 전 현대식으로 다시 손을 봤지만 윤상순 어르신이 흙질하는 날 마을 사람들에게 나눈 탁배기의 균들은 아직도 이 집 구석구석 어르신과 함께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균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윤상순 어르신이 지금껏 살아오시면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술을 빚었고 그 술을 누구와 함께 나누었는지를. 매년 누룩을 빚으면 정말 맛있는 쉰다리가 될 수 있도록 손을 함께 돕는 균들은 윤상순 어르신의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이번 주말에도 아이들이 집으로 온다며 또 쉰다리를 만드신다는 윤상순 어르신.
이번 주 어르신의 쉰다리는 귤꽃향을 가득 머금은 쉰다리가 될 것 같다.
# 김진경 20대에 찾아온 성인아토피 때문에 밀가루와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전통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떡과 한과에 대한 공부를 독학으로 시작했다. 결국 중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던 일도 그만두고 전통 병과점을 창업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제주전통음식으로 영역을 확장해 현재 베지근연구소의 소장을 맡아 제주음식 연구와 아카이빙, 제주로컬푸드 컨설팅, 레시피 개발과 쿠킹랩 등을 총괄기획하고 있다. 현재 제주대학교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을 밟으며 제주음식 공부에 열중이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 어멍의 마음으로 제주음식을 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