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제주자연체험파크, 걱정했던 문제 드러나기 시작했다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제주자연체험파크 사업이 승인을 받기도 전에 공사를 시작해 논란이 일고 있다.

며칠 전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산1번지에 들어서는 제주자연체험파크 사업부지에서 나무와 덩굴들을 베어낸 사실이 드러났다. 아직은 사업승인이 나기 전이라 불법으로 사전공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자 제주시와 자치경찰대가 조사에 들어갔다.

사업자인 (주)도우리는 경계측량을 하기 위해 시야를 가리는 나무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라는 해명이다.

하지만 현장을 둘러본 마을 주민과 환경단체는 훼손 면적이 3만㎡에 이르고 베어진 나무도 수백 그루가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경계측량용이라 하기에는 훼손 면적이 너무 넓고 잘린 나무도 많다. 나무를 베어낸 곳이 시설물이 들어설 곳이다 보니 불법으로 사전공사를 했다는 의심은 더욱 커진다.

제주시나 제주자치경찰은 단순 실수로 덮어 둘 일이 아니다. 피해 규모와 동기를 정확히 조사하고 그에 따른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가리키는 문제는 단순히 사전공사로 일부 나무가 잘려나간 데 있지 않다. 사업 시작부터 걱정했던 문제가 수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자연체험파크는 곶자왈 가운데서도 멸종위기식물이 가장 많이 서식하고 생태 가치가 뛰어난 곶자왈을 훼손하며 들어서는 대규모 사업이다. 처음부터 사업 타당성을 두고 논란이 있었으니 꼼꼼한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한 보전 노력은 부족했다.

곶자왈사람들은 제주자연체험파크 관련 사업자가 나무를 자르는 등 사업 승인 전 불법적으로 훼손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곶자왈사람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곶자왈사람들은 제주자연체험파크 관련 사업자가 나무를 자르는 등 사업 승인 전 불법적으로 훼손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곶자왈사람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자연체험파크는 제주도문화재인 제주 동백동산과 이어진 곶자왈 지역으로 세계적 멸종위기식물인 제주고사리삼을 비롯한 다양한 희귀동식물이 서식하는 곳이다. 보전가치가 동백동산에 못지않다. 자연체험파크란 이름과 달리 자연은 파괴되고 콘크리트 시설물이 들어선다. 사업부지는 74만4480㎡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21만1453㎡가 관광휴양시설과 숙박시설과 주차장 등으로 파헤쳐진다.

사업은 부지선정부터 문제를 안고 출발했다. 마을 설명회에서도 제주고사리삼을 비롯한 자연환경 파괴를 걱정하는 반대 목소리가 있었다. 환경영향평가 협의기관인 한국환경연구원(KEI)은 곶자왈을 비롯한 자연환경보전에 미치는 악영향이 큰 만큼 사업부지가 부적절하다는 검토 의견을 내기도 했다. 환경영향평가심의과정에서도 제주고사리삼을 비롯해 보전이 필요한 다양한 식물들이 잇따라 추가로 발견돼 동식물상 조사와 보전방안이 부실하다는 비판이 일어왔다.

논란에도 환경영향평가동의안은 도의회를 통과하고 이제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최종 승인절차만 남았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불법훼손 사례는 제주자연체험파크 사업이 일단 멈춤해야 하는 이유를 여러 갈래로 말해주고 있다.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했음이 다시 확인됐으며 도의회 동의 조건도 지켜지지 않았다. 사업자가 내세운 환경보전 노력도 헛약속임이 드러났다.

먼저 이번 나무가 베어진 곳을 보면 사업부지 중 시설이 들어설 곳이다. 시설부지임에도 크고 작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을 만큼 식생이 좋다. 그러다 보니 사업으로 사라지는 나무들은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사업승인도 나기 전에 나무 베기는 도의회가 제시한 환경영향평가 동의 조건을 어기는 행위다. 도의회 동의 조건에는 훼손 수목 가운데 20% 이상을 이식해 재활용하고, 훼손 수목 중 일부는 조경녹지 내 다공질 녹화시설(나무더미 쌓기 시설 등)로 2차 재활용하도록 했다. 이식계획도 없이 사전에 나무를 베어냄으로써 동의 조건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법정보호식물이나 희귀식물들이 훼손된 것이다. 훼손현장 조사에서 환경부 멸종위기야생생물인 개가시나무가 가지가 잘린 채 발견됐다. 또 다른 희귀 양치식물인 버들일엽 군락지도 추가로 발견됐다. 이번에 시설부지 내에서 새로 발견된 개가시나무나 버들일엽은 지난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없던 개체로 동식물상 조사가 부실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시 구좌읍 제주자연체험파크 조성사업 예정 부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시 구좌읍 제주자연체험파크 조성사업 예정 부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공사과정에서 동식물 보호 조치도 지켜지지 않았다. 도의회 동의안은 공사과정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보전 가치가 있는 식물들을 보호하기위해 '공사 시 및 운영 시 멸종위기야생생물 등의 법정보호종의 서식 등이 관찰될 경우 서식지의 보존 및 서식환경 조성 등의 저감방안을 이행'하도록 조건을 달았다.

그럼에도 이번 훼손 과정에서 개가시나무를 비롯한 법정보호식물 조사도 없었고 당연히 보호 조치도 없이 가지들이 잘려나갔다. 하마터면 나무 자체가 잘려지고 파쇄돼 존재 자체를 몰랐을 수도 있다. 공사과정에서 제주고사리삼을 비롯한 또 다른 식물들이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업 후 공사를 하면서 발견되는 희귀 동식물이나 튜물러스를 비롯한 특수 지형 등을 따로 보전하겠다는 사업자 말을 믿기도 어렵다. 처음부터 잘못 자리 잡은 사업부지와 부실을 눈감고 밀어붙인 승인 과정이 낳은 문제가 이제 막 드러나기 시작했다.

부실한 평가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식물과 습지와 튜물러스 등 제주 자연 파괴 우려는 더욱 커졌다. 

사업승인 과정에서 마을간 돈이 오가며 공정성에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더욱이 사전공사 혐의로 사업자가 법 위반에 따른 책임과 함께 자연환경 보전 의지는 신뢰를 잃었다.

마을간 갈등 해소나 환경보전 문제, 사업추진 능력 등 승인 전에 꼼꼼히 살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이제 제주자연체험파크 사업을 위한 마지막 열쇠는 제주도지사에 있다. 이제 곧 선거가 있으니 다음 도지사가 결정해야 한다. 

새롭게 선출될 제주도지사는 최종 사업 승인권자이자 제주자연환경을 지키는 의무자로서 책임있는 결정이 필요하다. 

(사)곶자왈사람들이 6.1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지사 후보들에게 제주자연체험파크 사업승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후보는 '기타'로 답변해 찬반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다만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와 제주도의회가 내린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사업자, 시민단체, 지역주민, 행정기관, 전문가 등이 결합해 사업의 방향과 정책을 함께 만들어가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민의힘 허향진 후보도 '기타'라며 의견을 유보했다. 무소속 박찬식 후보와 녹색당 부순정 후보는 개발사업 승인에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도민들도 다가오는 6.1 지방선거에서 제주 자연을 위한 선택이 필요하다. / 김효철 객원논설위원,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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