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의 칼럼과 에세이사이] (8) 고충석 제주대학교 명예교수·전 총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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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를 시행한 지도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 시작은 2006년, 김태환 지사가 주도했다. 그러나 실은 중앙정부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암암리에 계획한 측면이 많다. 중앙정부는 늘 제주도에 독자적인 자치권을 부여했다고 공치사를 한다. 기초자치단체를 없앤 것도, 영리병원을 도입하려고 한 것도 다 그러한 시도의 하나라고 항변한다. 심지어는 해군기지도, 제2공항도 제주도의 자기 결정권의 산물이라고 중앙정부는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제주특별자치도 아젠더 중에는 중앙정부가 지향하는 정책적 의도를 제주를 통해 실험해보려는 의도가 분명한 것들이 꽤 있다. 이런 점에서 제주도는 큰 틀의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주도적이지 못했고 변방의 목소리를 낼 뿐이었다. 제주도가 주체가 아니고 객체로 입장이 뒤바뀐 경우는 참 많았다. 4.3도, 해군기지도, 제2공항도, 과거 제주개발특별법도 등도 다 이런 시각에서 이해한다면 무리한 해석일까. 그야말로 제주도의 의지가 아니고 중앙정부의 의지가 관철된 결과물들이다. 그래서 대규모 제주개발 사업에 대해서 지역주민의 저항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제주도는 제2공항 문제로 심각한 갈등이 내연되고 있다.

어떻든 과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제주의 미래가 중요하다. 이 시점에서 가장 긴급한 것은 그간 추진해온 제주특별자치도의 명암을 자세히 분석하는 일이다. 이번 도지사 선거에서 이런 일들에 대한 시시비비가 제대로 조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참 애석한 일이다. 미래는 과거에 대한 엄격한 성찰 없이는 한 발자국도 진보할 수 없다. 나는 과거 여러 차례 제주특별자치도의 문제점을 언론을 통해 지적해왔다. 여기서는 두 가지만 지적하려고 한다. 

첫째, 제주특별자치도를 추진했던 김태환 지사는 2007년 제주지방해양수산청, 제주지방중소기업청, 제주지방국토관리청, 제주 환경출장소, 제주지방국토관리청, 제주지방노동위원회, 광주지방노동청 제주지청, 제주보훈지청 등 7개의 특별행정기관을 중앙부처에서 제주도로 이관해왔다. 또 제주도에만 특별하게 자치경찰제도를 도입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이 일은 김 지사가 자신의 공을 내세우려다 악수를 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특별행정기관의 제주도 이양 문제가 거론할 당시 나는 제주대학교 총장 자격으로 지역혁신 위원장을 겸하고 있었다. 도지사의 이러한 시도에 대해서 나는 공개적으로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 기관들이 제주도로 이관·통합될 경우, 앞으로 제주도가 상당한 재정적 손실 등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관 여부는 전략적 측면에서 시간을 두고 이해관계를 따져본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점을 회의 석상에서 여러 차례 피력했다. 체포권이나 수사권이 부여되지 않은 자치경찰제 도입도 실익은 없고 예산만 낭비하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크니 제주도가 앞장서서 먼저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특별행정기관 이양을 둘러싼 논의가 이루어지는 와중에 하루는 김태환 도지사가 제주대학교 총장실로 나를 찾아왔다. 중앙부처의 특별행정기관 이양 작업은 본인이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이니만큼 반대하는 발언을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간곡한 부탁을 하러 온 것이었다. 김 지사의 요청은 못마땅했지만, 도에 재정적 신세를 지고 있는 제주대학교의 처지나 도민의 대표인 지사의 입장을 고려하여 더는 반대 발언을 이어가기도 쉽지 않았다. 김 지사는 이 일을 절체절명의 당면과제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오늘날 어떻게 되었나. 특별행정기관이 제주도로 이관된 이후에도 과거 특별행정기관이 가졌던 권한, 인원, 재정 등이 계속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가? 시쳇말로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예산 하나만 살펴보더라도 특별행정기관 이관 10여 년을 평가해보면 특별행정기관업무는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인력 운용의 비효율성 등으로 특별행정기관 이관이 도민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없다는 지적이 대세이다.

실제 특행기관 재정에 필요한 국비 지원이 2015년 1,719억 원에서 2020년 1,119억 원으로 지속해서 감소하였고 운영 면에서도 순환보직으로 인한 담당자들의 전문성 수준이 매우 빈약한 실정이다. 중앙기관과의 업무 연계성 등도 매우 약화하였다는 주장이다. 제주 이관 전 137명 수준이었던 7개 특행기관 직원 수가 26명이나 늘어났지만 이에 따른 국비 지원은 오히려 줄었다. 그래서 제주도의회에서도 특별행정기관을 정부에 반납해야 한다는 논의가 무성하게 일고 있다.

그간 제주계정이니 뭐니 하면서 재정적 대응책을 마련해봤지만 속수무책이다. 결론적으로 이관에 따른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측면은 이관이 논의될 때부터 이미 예상됐던 일이었다. 도지사나 순진한 자치 근본주의 신봉자들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지방자치라고 해서 지방 관련 권한이나 기능은 조건 없이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이 선(善)인가하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구조적으로 재정이 부족한 지방의 입장에서는 권한 이양이 유불리를 따지는 전략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 단체자치적 전통이 매우 강한 우리나라 지방자치 구조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재정권이 담보되지 않은 자치권 이양은 모래성을 쌓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제주도는 1~7단계 제도개선 작업을 통해 최근까지 5천 건에 가까운 권한을 중앙정부로부터 이양받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일은 자랑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양적인 이양 건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핵심은 어떤 권한을 이양받았느냐이다. 이양된 권한들의 정책적 영향을 분석해보면 거의 자투리 권한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주도에 경제사회적인 파급효과를 가져다줄 덩어리가 큰 권한은 여전히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다. 
권한을 이양했으면 거기에 따른 인력과 재정 등의 후속 조치도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 조치라는 것이 양반집 서자 대하듯 소홀하기 그지없었다. 구호로는 연방제 수준의 자치권 운운했지만, 그것은 입에 발린 말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예를 한가지 들어보자. 제주도는 도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주특별법 6·7단계 제도개선을 통해 카지노 갱신허가제 도입과 카지노 지도·감독에 관한 특례, 카지노 감독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특례 등을 이양해줄 것을 문체부에 요구했다. 문체부는 이러한 권한들이 전국적인 허용 사안이라는 견해를 들어 거절한 상태에 있다. 이것은 표면적 이유이고 진짜 이유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 허가권과 지도. 감독권을 가진 문체부에서 자신들의 권한 축소를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숙원사항이었던 제주도의 면세 지역화도 같은 이유로 표류하고 있다. 예컨대 포르투갈 마세리아나, 태국의 파타야에서는 이 지역에서 창출되는 국세를 지방세화하고 있고 말레이시아 랑카위섬은 전체를 면세 지역화하고 있다. 실제로 고도의 자치권 보장을 캐치 프레스 내건 제주특별자치도에 이 정도의 재정적 자주권도 부여하지 않은 행위는 중앙정부 스스로가 자기를 부정을 하는 꼴이다. 중앙정부는 기존의 권한, 특히 인허가 같은 알짜배기 권한은 절대로 지방에 넘기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권한에 있어서는 중앙정부는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의지가 강고한 성을 구축한다. 지방분권작업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제주의 미래와 관련해서 매우 중차대한 과제들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진정성이나 현실성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시금석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특별행정기관은 중앙정부에 반납하든지 아니면 제주계정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설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앙정부도 인허가 등의 권한 이양에 대해서는 담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제주특별법의 제정 목적은 제주국제자유도시의 과감한 추진을 위한 것이었다. 제주국제자유도시 추진은 산업정책과 연관된 사항들이 주종을 이룬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정책 권한을 일괄적으로 제주도로 이양하는 문제를 검토해볼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입법사항이기 때문에 제주 도지사나 국회의원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이번 도지사 선거나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서 이런 문제들이 전혀 쟁점화되지 못하고 있다. 참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선거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만시지탄은 있지만, 이제라도 이 문제들에 대한 후보자 간 토론이 잘 이루어져서 제주특별자치도의 정명(正明)을 찾아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은 지도자가 어떤 시대적인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느냐를 봐야 한다. 거기에 정치인으로서 희망이 있고 나아가서 제주의 희망도 담보할 수 있다.

고충석은? 

現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7대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초대 총장, 제주발전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조언을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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