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긴 생각] 여든 세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항상 슬픈 것, 모든 것은 일순간에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는 것이다.” 

러시아의 국민 시인이자 소설가,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andr Pushkin, 1799-1837)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시(詩)다. 시상(詩想)은 어디서 왔을까? 푸시킨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고향이다. 푸시킨 집 앞마당은 네바 강이다. 그 강가를 거닐며 흐르는 강물을 마음에 새긴 사색(思索)의 결과이다. 러시아 수학자 마코브(Markov, 1856-1922)는 푸시킨의 시를 통해 모음, 자음, 구절의 문맥과 유연성 등을 통해 수학 이론인 ‘마코브 체인’을 발견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 동상. 사진=픽사베이.
알렉산드르 푸시킨 동상. 사진=픽사베이.

마코프 체인(Markov Chain)은 연속되는 모음과 자음이 서로 연관이 있는 확률 공간에서 계속 이어지는 구조다. 우리나라 민요 ‘아리랑’에도 마코프 체인이 담겨있다. 아리랑에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이요’가 반복적으로 이뤄진다. 1985년 미국 유학 시절에, 미국 교회를 갔는데, 미국사람들이 찬송가(讚頌歌)로 아리랑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왜 아리랑을 찬송가로 부르냐는 질문에 담당 목사는 ‘멜로디가 아주 부르기 좋은 노래’라고 답했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 혼(魂)의 정수(精髓)로, 서민들의 애환과 해학에 우리의 핏줄을 느낄 수 있는 세마치 민요다. 아리랑에 ‘아’(我)는 참된 나(眞我)를, ‘리’(理)는 알다, ‘랑’(朗)은 즐겁다로 풀어볼 수 있다. 따라서 아리랑(我理朗)은 ‘참된 나(眞我)를 찾는 즐거움’,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나를 찾기 위해 깨달음의 언덕을 넘어간다는 의미다.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곧 ‘피안의 언덕’을 넘어간다는 뜻.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뜻은 진리를 외면하는 자는 얼마 못 가서 고통을 받는다는 뜻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다음은 푸시킨의 일화다. 모스코바 광장에서 구걸 맹인에게 써 준 단 한 구절, ‘겨울이 왔으니, 봄도 멀지 않으리.’ 이 구절을 본 시민들은 기쁜 마음으로 깡통에 헌금을 했다. 혹독한 겨울 모스크바 찬바람도 곧 지나갈 것을 믿으면서.

푸쉬킨이 살아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터에 갔다면, 무엇이라 썼을까? 필자는 2018년 1월18일에서 21일까지 논문 발표 차 눈이 펑펑 쏟아지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일주일을 지낸 적이 있다. 깨끗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였다. 특히 우크라이나 빵은 일품으로 굉장히 단백하고 고소했다. 밀 생산이 세계 1위국. 그 우크라이나 전쟁터에 푸시킨이 갔다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아마도 맹인 걸인에게 써 준 말 그대로 일 것이다. 

‘Winter has come, Spring is Not Far Away!’
‘지금은 전쟁 중이지만, 곧 휴전이 되고 일상 생활로 돌아갈 날이 머지 않으리!’

참고문헌:
1. 이문호, 푸쉬킨과 태극, 영일, 2013년, ISBN 978-89-6835-009-2
2. 이문호-박대철, 세마치 아리랑에 담긴정보, 정보과학회지 논문, 2013년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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